윤 대통령 말이 꼬이는 이유, 반정치적 정치인의 자기모순
‘정치를 부정하는 정치인’ 윤 대통령의 좌충우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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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입니다. 그런데 국민은 국회의원을 국민의 대표로 좀처럼 인정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내가 직접 찍어서 뽑은 국회의원’은 300명 중에 한 사람뿐이거나,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매우 비논리적이지만 정서적으로는 그럴듯한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드는 괴물이 있습니다. ‘반정치주의’입니다.
반정치주의는 본래 쿠데타 세력과 기득권 세력의 이념이었습니다. 민주주의를 직접 공격할 수 없는 쿠데타 세력과 기득권 세력이 정치와 정치인들을 공격해 그 반사이익으로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 유포시킨 것입니다.
반정치주의를 악용했던 이들
1961년 박정희 소장이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5·16 혁명’ 포고문에 이런 대목이 있었습니다.
“군부가 궐기한 것은 부패하고 무능한 현 정권과 기성 정치인들에게 이 이상 더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맡겨둘 수 없다고 단정하고, 백척간두에서 방황하는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반정치주의를 불법 쿠데타의 명분으로 삼은 것입니다. 1980년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쿠데타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쿠데타 세력이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모든 정치인의 정치 활동을 전면 금지한 것이었습니다. 쿠데타는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행위입니다. 정치와 상극입니다. 박정희·전두환 대통령은 당선 뒤에도 정권 유지의 수단으로 반정치주의를 활용했습니다. 대통령인 자신은 정치를 초월해서 국민을 위해 일하는 존재로 포장하고, 잘못된 일은 여야의 정쟁이나 국회 탓으로 돌렸습니다.
쿠데타로 집권한 군 출신 대통령들의 반정치주의에 재벌·관료·언론 등 기득권 세력도 차례차례 가세했습니다. 반정치주의가 기득권을 지키는 데 유용한 도구라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로를 거쳐 반정치주의는 기득권 세력 전체의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았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박정희 쿠데타 이후 수십년 동안 유포된 반정치주의에 우리 국민 다수가 자신도 모르게 감염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정치는 무조건 나쁜 것이라는 주장, 국회가 아예 필요하지 않다는 비현실적 주장 등이 대표적입니다.
반정치주의의 가장 큰 폐해는 정치를 망가뜨리는 것입니다. 정치는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는 시스템입니다. 정치가 망가지면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정치가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비선출 권력, 기득권 세력이 공동체를 장악하게 됩니다.
반정치주의 폐해를 둘러싼 논쟁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대통령입니다. 대통령은 선거로 선출된 공직자입니다. 가장 중요한 정치인입니다.
그런데도 대통령에 당선되는 순간 정치를 초월한 존재로 둔갑합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당선된 대통령들이 대개 다 그랬습니다. 의회주의자였던 김영삼 대통령도 김대중 대통령도 반정치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도 그랬습니다. 뭔가 잘못된 일은 여야의 정쟁이나 국회 탓으로 떠넘겼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정도가 예외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권의 잘못을 당이나 국회로 떠넘기지 않았습니다. 당정 분리 원칙을 세우고 당에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정 관계가 삐걱거리는 바람에 정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퍼졌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의 당정 분리를 반면교사로 삼았습니다. 당정 회의를 어느 정권보다 많이 했고 민주당의 의견을 국정에 반영했습니다. 민주당 전·현직 의원들을 청와대와 행정부에 대거 기용했습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도 ‘여의도 정치’는 싫어했습니다.
‘심각’ 수준의 윤 대통령 태도
윤석열 대통령은 어떨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증세가 매우 심각한 반정치주의자인 것 같습니다. 선거로 당선된 정치인이면서도, 정치를 싫어하고 정치를 부정합니다. 그렇다 보니 논리가 꼬입니다.
2021년 6월29일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문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산업화와 민주화로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위대한 국민, 그 국민의 상식으로부터 출발하겠습니다. 그 상식을 무기로 자유민주주의와 법치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공정의 가치를 기필코 다시 세우겠습니다.”
“정치는 국민들이 먹고사는 현안을 해결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일입니다. 우리 현안을 해결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데 공정과 법치는 필수적인 기본 가치입니다. 이러한 가치를 바로 세우는 것이 국민을 위한 정치의 시작입니다.”
자유민주주의, 법치, 공정을 자신의 이념과 정치적 가치로 내세운 것입니다. 2022년 5월10일 대통령 취임사 마지막 대목도 “자유, 인권, 공정, 연대의 가치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 국제사회에서 책임을 다하고 존경받는 나라를 위대한 국민 여러분과 함께 반드시 만들어 나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유, 인권, 공정, 연대가 대통령 윤석열, 정치인 윤석열의 이념이요, 정치적 가치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1월3일 국토교통부와 환경부 업무 보고에서 이상한 말을 했습니다.
“과거 정부가 부동산 문제, 환경 문제를 어떤 정치와 이념의 문제로 인식을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은 국민이 힘들고 고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중략) 정치와 이념에서 출발할 것이 아니라 전문성과 과학에 기반해서 일을 해야 될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과 환경을 정치와 이념의 문제로 인식했기 때문에 국민이 힘들고 고통을 받았다는 얘깁니다. 정치와 이념은 나쁜 것, 전문성과 과학은 좋은 것이라고 대비시켰습니다. 자신은 정치와 이념이 아니라 전문성과 과학의 수호자라는 뜻입니다.
1월9일 보건복지부·고용노동부·여성가족부·식품의약품안전처·질병관리청 업무 보고 머리 발언에서도 이상한 말을 했습니다.
“이게 선출된 정부가 하는 일이긴 합니다만, 절대로 이런 일들은 정치나 선거나 진영이나 이런 데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되고, 정말 국민만 생각할 줄 아는 그런 데에서 우리 국민의 세금을 정말 아주 효과적으로 써야 된다는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 복지 문제에 대해서도 저는 정치 복지가 아닌 약자 복지라는 것을 강조해왔습니다만, 원래 이 복지라는 개념 자체가 정치적 아니겠습니까?
여러 가지 정치적 상황에서 20세기 이후에 어떤 정치의 영향을 받아가면서 복지라는 것이 커져왔고, 또 복지가 정치에도 영향을 많이 미쳤고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복지에서 그 사회에서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 누구냐 하는 것을 찾아서 최우선적으로 그 사회에서 가장 힘든 그런 사람들이 우리 헌법에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저는 복지의 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국민을 위한 이런 시스템이 되려고 하면 거기에 대해서 철저한 과학적 접근이 필요하고, 여기에 이념, 정치, 선거 이런 것들이 개재돼 가지고는 정말 국민을 복되게 하기 위한 그런 국가의 역할이 되기 어렵다 하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유연성과 공정성, 또 이와 관련된 노사 법치주의, 그리고 산업 현장에서의 안전 문제, 이런 것이 이것을 업그레이드시키고 잘못된 것을 상식적으로 전환하는 것이, 이게 다 국민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어떤 정치적 목적이나 이런 것이 아니고.”
업무 보고가 끝난 뒤 마무리 발언은 더 이상했습니다.
“아무리 법이라는 것이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라 하더라도 현대 국가에서 전문적인 연구를 충분히 해 가지고 거기에 기초해서 정치적인 타협을 해야 되는 거지. 예를 들면 어떤 케이스가 대법원에 올라가면 대법원에 법관이 13명이에요. 그러면 올라가자마자 대법관끼리 표결을 하는 게 아닙니다. 충분히 연구하고 자료 조사하고 또 회의도 하고 이렇게 해 가지고 그래도 이게 전원 합의로 결론이 안 날 때만 표결에 들어가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정치적 타협이라든가 의석수의 표결 이런 것은 그건 마지막 상황에서 하는 것이지, 충분한 숙의와 과학적인 어떤 조사 이런 것들이 바탕이 되어야 그게 바로 문명국가고 그게 바로 지성주의에 기초한 민주주의 아니겠습니까.”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윤석열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한 것인지 이해하시겠습니까? 저는 무슨 뜻인지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국정은 나처럼 국민을 위해서 전문성과 과학성을 기반으로 해야지, 다른 정치인들처럼 정치적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과거 박정희·전두환 시절 독재자들의 반정치주의 논리와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선거로 선출된 정치인이고, 복지는 정치의 산물이며, 법을 제정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타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과 논리가 배배 꼬이고 있는 것입니다.
선거 유불리만 따지는 정치 해서야
윤석열 대통령의 이런 오류는 정치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데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선거 유불리라는 좁은 개념을 정치의 전부인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행정, 국정, 정책 등 대통령이 하는 모든 행위가 바로 정치입니다. 대통령은 가장 중요한 정치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더는 정치와 이념을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정치적 가치, 즉 이념은 바로 정치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반정치주의를 더 확산시키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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