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겨울' 생존법…덩치 키우고 비용 줄인다

日키옥시아·美WD 합병 논의…성사되면 삼성 '낸드 1위' 위협
줄줄이 감산·투자축소…'인위적 감산 없다' 삼성 동참 여부 주목

(서울=연합뉴스) 김아람 기자 = 경기 침체로 반도체 업황이 최악으로 치닫는 가운데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이 혹한기 생존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수요 급감에 어려운 사업 환경이 이어지면서 합병으로 규모의 경제를 꾀하거나, 감산과 비용 절감을 시도하는 움직임이 한창이다.

'뭉쳐야 산다'…낸드 2위·4위 '합종연횡' 추진

15일 블룸버그통신과 업계에 따르면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 2위 업체인 일본 키옥시아와 4위 미국 웨스턴디지털(WD)이 최근 합병 논의를 재개했다.

폭넓은 협력 관계를 맺어온 두 회사는 2021년에도 합병을 논의한 적이 있다. 그러나 가치평가 이견과 일본 정부의 승인 불확실성 등으로 무산된 바 있다.

지난해 말 다시 시작한 두 회사 간 합병 논의는 현재 초기 단계이며, 하나의 상장사로 합병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낸드에 주력하는 키옥시아와 웨스턴디지털의 합병 추진은 최근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얼어붙은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스마트폰과 PC 등 IT 제품 수요 둔화로 낸드 가격이 내려가면서 낸드 업체 매출도 급감했다. 낸드 가격 하락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블룸버그는 "이런 환경에서 기업들은 삼성전자와 경쟁하려면 힘을 합쳐야 한다는 압력을 받을 것"이라며 "메모리 산업을 지배하는 삼성은 최첨단 생산 시설 건설에 필요한 비용을 감당할 더 많은 자원을 보유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세계 낸드 시장에서 큰 차이로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가 집계한 작년 3분기 낸드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가 31.4%로 1위다. 이어 키옥시아(20.6%), 자회사 솔리다임을 포함한 SK하이닉스(18.5%), 웨스턴디지털(12.6%) 순이다.

키옥시아와 웨스턴디지털이 합병에 성공하면 단순 점유율 합산 상으로는 삼성전자를 제치고 낸드 1위로 뛰어올라 글로벌 반도체 업계 지형을 바꿀 가능성도 없지 않다.

'줄여야 산다'…감산·감원·투자축소

업황 악화에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잇따라 감산 또는 투자 축소에 나섰다.

급격한 수요 감소와 재고 증가로 인한 수익성 부진을 해소하고자 공급자 입장에서 대응에 들어간 것이다.

SK하이닉스는 작년 3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지난해 10조원 후반대였던 투자 규모를 올해 50% 이상 감축하기로 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생산 증가를 위한 웨이퍼 캐파(생산능력) 투자를 최소화하고, 수익성 낮은 제품을 중심으로 생산량을 줄여 수급 균형을 앞당겨 맞춘다는 계획이다.

미국 마이크론도 올해 메모리 반도체 생산을 20% 줄이고 설비 투자도 30% 이상 축소한다. 또 직원의 10%를 줄이기로 했다.

인텔도 감원 등을 통해 3년간 최대 100억달러의 비용을 줄일 예정이다. 엔비디아와 퀄컴도 실적 악화에 따른 채용 동결 계획을 내놓았다.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1위 기업으로 메모리 업황 둔화기에 그나마 선방한 대만 TSMC도 경기 침체의 영향을 피하지 못했다.

TSMC는 고객사 주문 감소를 고려해 올해 설비 투자 목표액을 작년의 363억 달러에 못 미치는 320억∼360억 달러로 잡았다.

다만 삼성전자는 단기 수급을 위한 인위적 감산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중장기 관점에서 수요 회복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설비 투자도 중장기 수요 대응을 위해 적정 수준의 투자를 계속해서 지속 가능한 이익 기반을 다진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작년 4분기 잠정 영업이익 69% 급감에 올해 상반기 반도체 적자 가능성도 불거지면서 삼성전자도 감산 움직임에 동참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rice@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