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연구원 인건비 15년만 인상...“기준만 올랐다” 곳곳 ‘구멍’
인건비 기준 올라도 실 임금은 최저시급에도 못미쳐
”국가연구개발사업만은 학생연구원 노동 인정해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한 해가 저물어 가던 지난달 20일 국가연구개발혁신법(R&D혁신법) 시행령 개정을 발표했다. 새 개정안은 올해 3월부터 대학 실험실에서 연구 활동을 하는 학생 연구자의 인건비 기준을 월 30만∼50만원씩 올리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번 시행령 개정에 따라 학부생의 인건비 기준은 월 100만원에서 130만원, 석사 학생 연구원은 월 180만원에서 220만원, 박사과정 연구원은 월 25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오른다.
대학원생과 학부생들은 모처럼 인건비 기준 상향을 대체로 반기고 있다. 대학 실험실에서 연구 활동을 하는 대학원생과 학부생의 인건비 기준을 마지막으로 올린 건 2008년으로 학생 연구자 인건비 기준이 오르는 건 15년 만이다. 하지만 일부에선 여전히 제도의 구멍이 있어 세심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조선비즈는 2022년 KAIST 대학원 총학생회의 실태조사 결과를 단독 입수해 2022년 대학원생의 실제 인건비와 만족도를 2021년 결과와 비교했다.
◇ KAIST 실제 인건비 올랐지만... 여전히 개선 요구 높아
KAIST는 R&D혁신법 개정에 앞서 지난해 3월 자체적으로 학사 연구원 월 인건비 기준을 120만원, 석사 연구원은 210만원, 박사 연구원은 300만원으로 올렸다.
KAIST 대학원 총학생회는 기준 인상 이후 학생들의 의견을 묻기 위해 지난해 11월 21일부터 12월 4일까지 인터넷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전체 대학원생 약 7000명 중 1649명이 설문에 응답했다.
조사 결과 KAIST 대학원생들의 인건비에 해당하는 교내수입은 월 평균 160만 2000원으로 인건비 기준을 인상하기 전인 2021년 135만 2000원과 비교해 18.5% 가까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원 생활에 대한 만족도를 묻는 질문에 ‘그렇다’와 ‘매우 그렇다’라고 답한 비율이 58.83%로 나타났다. 전년도에는 ‘그렇다’ 이상을 답한 비율이 55.53%인 것과 비교해 소폭 올랐다.
하지만 이런 답변에도 불구하고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잦아들지 않고 있다. 실제로 2021년 실태 조사에서 대학원생들은 인건비 상한선과 하한선 인상을 포함한 경제적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가 34.41%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인건비 기준이 인상됐고 실제 인건비가 일부 올라간 지난해에도 경제적 환경 개선에 대한 목소리는 높게 나타났다.
최동혁 KAIST 대학원 총학생회장은 “지난해 실태조사에서 ‘대학원 총학생회에 바라는 점’을 묻자 인건비 기준 상향보다도 인건비 하한선을 인상해달라는 의견이 가장 많이 보였다”며 “학생들은 인건비가 오른 것에 대해 만족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크다”고 말했다.
◇ 기준은 올랐지만, 인건비는 그만큼 오르지 않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해 ‘학생인건비 통합관리제(풀링제)’로 학생인건비를 관리하는 대학은 60개, 정부 출연연구기관 3곳으로 나타났다. 풀링제는 인건비의 유용을 막기 위한 제도로, 교수와 학생 사이의 협의를 통해 연구 과제의 참여율(현 인건비계상률)을 정하고 참여율을 인건비 기준과 곱해 인건비를 계산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A교수 연구실에 3개의 연구 과제가 있다고 가정하고 연구실 소속 B 박사과정생이 첫 번째 연구 과제에서 5%, 두 번째 연구 과제에는 10%, 세 번째 과제에서 30% 참여율을 보인다면 모두 135만원을 받게 된다. 박사과정 학생 연구원의 월 인건비 기준인 300만원에 과제 총 참여율(45%)를 곱한 금액이다.
하지만 이 같은 인건비 기준은 학생 연구자가 받아야 할 인건비를 계산할 때 적용되는 기준일 뿐 실제 지급액은 아니다. 포스텍에서 석박사통합과정에 재학 중인 학생연구원인 김모씨는 “국가연구개발사업 연구개발비 사용기준에는 연구 과제에 아무리 많이 참여하더라도 인건비 기준의 100%를 초과할 수는 없다는 규정이 있다”며 “인건비 기준이 최저 지급액을 보장하는 하한선이 아니라 되려 상한선이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도 “학생수에 비해 연구 과제 수가 한정적이다보니 참여율을 100% 다 채우는 건 어렵다”며 “참여율을 모두 채우면 기준에 따라 인건비도 고스란히 오르겠지만 현실에선 어려운 이야기”라고 말했다.
◇실제 인건비 월 125만원...인건비 기준 매우 못미쳐
이미 시행령 개정 전에도 학생연구원이 실제 받는 인건비는 인건비 기준보다 낮다는 지적은 이어졌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 따르면 2021년 3월부터 8월까지 국가연구개발사업 학생인건비는 1인당 평균 747만 3007원으로 월 기준 125만 원 정도로 나타났다. 이는 2021년 당시 학생인건비 기준 석사 180만원, 박사 250만원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소속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0월 공개한 ‘2021년 대학원 인건비 실태조사’ 결과에서는 대학의 학생연구원 월평균 인건비 지급액은 석사과정 63만원, 박사과정 99만원으로 더 낮게 나타났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KAIST에서도 인건비 기준보다 훨씬 낮은 실제 인건비는 해묵은 문제로 지적됐다. KAIST가 석사 월 80만원, 박사 월 110만원의 하한선 기준을 별도로 적용하는 이유다.
2013년 미래창조과학부(현 과기정통부)도 이런 점을 들어 연 1억원 이상의 과제에 대한 실지급액을 석사 과정 연구원은 월 80만원, 박사과정은 월 120만원 이상으로 유지하도록 했다.
◇대학원생의 ‘뜨거운 감자’ 인건비... 인건비 하한선도 조정해야
학생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국가연구개발사업에서만큼은 학생 연구자의 근로를 정식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연구 과제를 수행하고 교수 수업을 돕는 조교를 하며 연구노동자와 학생의 역할을 병행하는 독특한 근로 환경을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학생이라는 이유로 노동자로서 기본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임금과 휴가, 산재보험 가입, 노동 기본권 등에서 공백을 없애달라는 게 이들의 요구다.
실제로 KAIST 대학원 총학생회에 따르면 지난해 인건비 기준이 올랐는데도 대학원생 인건비는 월 160만원 수준으로 작년 최저시급으로 계산한 월급 191만4440원보다 30만원 이상 차이가 난다. 석·박사과정 대학원생들이 대부분 밤낮없이 일하고, 인건비로 등록금을 내는 경우를 고려하면 최저 시급과 더 멀어진다. 실질적 상한선 역할을 하는 인건비 기준은 물론 인건비 최소 금액을 보장하는 하한선도 대폭 개선되어야 하는 이유다.
포스텍 석박통합과정에 다니는 김모씨는 “국가연구개발사업에 참여하는 학생 연구자의 근로를 인정한다면, 인건비를 최저 시급 수준에 맞추고 물가 인상률을 반영하는 방식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며 “인건비 기준이 꼭 필요하다면 현실에 맞춰 조정하는 기준도 함께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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