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그토록 좋던 ‘뺑뺑이’…어른 되면 왜 어지러울까

한겨레 2023. 1. 14.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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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우아영의 키작은 과학][한겨레S] 우아영의 키작은 과학
어린이의 균형감각
아이들은 뱅뱅 돌며 놀아도 왜 어지럼을 호소하지 않을까? 사진은 한 놀이터에서 어린이들이 흔히 ‘뱅뱅이’라고 하는 놀이기구 ‘회전무대’를 타고 노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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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과 유치원, 초등학교까지 한꺼번에 겨울방학에 들어가는 연말이 되면 전국의 키즈카페가 미어터진다. 유치원 방학 첫날, 아이들 노는 모습을 멍하니 쫓던 중 놀이기구 하나가 새삼스레 눈에 들어왔다. 흔히 ‘뺑뺑이’라고 부르는 회전무대 기구였다. 보기만 해도 어지러워지는 그 기구를 타면서 아이들은 까르륵까르륵 웃는가 하면, 기구 안에서 몇 분을 내리 앉아 있기도 하고, 기구에서 내려오고 난 뒤에도 헤실헤실 웃고 다녔다.

그러고 보니 봄 즈음 놀이동산 회전컵을 타고는 엄마인 나는 한동안 속이 메슥거려 정신을 못 차리고 아이만 깔깔거리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 30여년 전, 놀이터 회전무대 손잡이를 잡고 신나게 발을 구르던 어린 내가 떠올랐다.

 어른이 회전컵 타면 어지러운 이유

왜 어린이들은 뺑뺑이를 그토록 사랑하는데, 어른들은 뺑뺑이 생각만 해도 그저 어지럽고 메스꺼운 걸까. 혹시 나이가 들면서 생리학적 변화가 생겼거나, 균형감각을 느끼는 귓속의 전정기관이 해부학적으로 달라졌기 때문은 아닐까.

균형감각은 귀에서부터 출발한다. 귀 안에는 반고리관이라고 부르는, 서로 직각으로 위치해 있는 3개의 반원형 터널이 있다. 그 터널 안에는 액체가 들어차 있고, 터널 안쪽 면에는 유모세포라고 부르는 미세한 털들이 나 있다.

뛰거나 빙글빙글 돌면 이 액체가 거친 파도처럼 출렁거리고, 유모세포는 그 물결을 따라 바닷속 미역처럼 이리저리 흔들린다. 그 신호가 뇌로 전달돼 몸이 움직이고 있다는 걸 인지하게 된다. 반대로 움직임을 멈추면 귓속의 액체가 다시 호수처럼 잔잔해지면서 유모세포도 흔들림을 멈춘다. 뇌는 몸이 멈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문제는 이 과정이 칼로 자른 듯 완벽하게 전환되지 않는 데에서 생긴다. 회전무대처럼 빠르게 도는 놀이기구를 오래 타고 있으면 반고리관 안의 액체가 빠르게 휙휙 돌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회전무대에서 내려오면 몸의 근육은 그 순간 바로 움직임을 멈출 수 있지만 액체는 그렇지 못하다. 빠르게 회전하던 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호수처럼 잔잔해지는 데에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는 동안에도 유모세포는 계속 출렁거리면서 뇌에 ‘움직이고 있다’는 신호를 보낸다. 뇌는 그 신호를 받으면서, 동시에 근육으로부터 몸이 움직이고 있지 않다는 신호도 받는다. 그렇게 상반되는 정보가 충돌한 결과, 몸은 멈춰 있지만 대신 주위 세상이 회전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어린이의 몸에서는 이 과정이 어른과 얼마나 다르게 진행될까? 아쉽게도 이를 콕 집어 실험한 연구는 찾을 수 없었다. 현기증이나 메스꺼움을 유발하는 실험기구에 아이를 실험 참가자로 흔쾌히 보낼 수 있는 양육자는 아마 많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이런 종류의 실험을 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어린이는 동의능력이 없다고 보기 때문에 이런 실험은 연구 윤리상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전문가의 의견을 통해 실마리를 찾아볼 수는 있다. 제임스 필립스 미국 워싱턴대 의대 현기증 및 균형 센터장은 공영 라디오 <케이엔케이엑스>(KNKX)와의 인터뷰에서 “어른들은 자연의 물리 법칙을 이해하고 있으며, 눈과 근육에서 오는 서로 다른 정보가 어떻게 결합되는지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다”며 “반면 어린이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몸의 균형감을 파악할 때 뇌는 귀의 전정기관뿐만 아니라 눈이나 다른 근육에서 온 신호도 모두 통합한다. 여기에 물리 법칙, 즉 중력과 질량이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는지에 대한 이해가 더해져 신체의 균형감각이 만들어진다. 중력장 안에서 사람이 걷거나 뛸 때 온몸의 각 부위로부터 어떤 정보가 도달할지 두뇌가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감각 통합’을 어른의 신체는 익숙하게 해내는 반면 어린이의 신체는 그렇지 못하다. 그 때문에 어른이 감지하는 감각 충돌을 어린이는 감지하지 못한다. 발달이 미숙하고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이상한 걸 이상하다고 여기지 못한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여러 감각 정보가 서로 충돌할 때 어른의 두뇌는 그간 쌓인 경험에 따라 무언가 잘못된 상황이라고 인지하고 메스꺼움을 느끼는 반면, 어린이의 두뇌는 오히려 이런 상황을 탄력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어린이가 회전무대를 즐길 수 있는 건 감각 통합에 미숙한 덕에 생기는 뜻밖의 이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

 빙글빙글 돌면서 아이들이 배우는 것​

한편 뺑뺑이를 타는 행동 자체가 어린이가 전정감각을 발달시키고 감각 통합을 배워가는 과정이 된다. 회전을 하면 전정감각뿐만 아니라 시각과 청각, 그리고 ‘고유감각’이 함께 작동한다. 고유감각이란 자기 몸이 어디에 위치해 있고 어떻게 운동하는지 아는 걸 뜻한다. 어린이는 회전을 반복하면서 자기 몸의 중심이 어디인지 파악하고, 좌우 신체의 움직임을 더 잘 조정할 수 있게 된다.

양육자는 보통 아이가 빙글빙글 돌며 뛰다가 넘어지거나 기구에서 떨어질까 봐 전전긍긍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이런 놀이를 한 뒤에 어린이는 발걸음이 더 느려지고 교실에서 집중을 더 잘했다고 한다. 또 전정감각은 충동 조절 능력이나 줄글을 읽어내는 집중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전문 치료사는 어린이가 감각 통합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 빙글빙글 회전하거나 몸을 흔드는 활동을 장려하곤 한다.

세상 모든 어린이는 언젠가 어른이 되기에 늘 일시적인 존재로 여겨지곤 하지만, 어린이를 어린이라는 존재 그 자체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가끔 초능력자처럼 느껴진다. 어른이 갖지 못한 능력을 가진 특별한 존재. 이를테면 뺑뺑이를 한 시간 동안 탈 수 있는 초능력이랄까. 이런 초능력자들이 뺑뺑이를 10분도 견뎌내지 못하는, 재미없고 시시한 비초능력자 어른들에게 맞춰진 세상에서 살아가느라 얼마나 답답하고 힘이 들까.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고 싶다면 키즈카페로 직행하면 된다. 마블 유니버스의 퀵실버처럼 날쌔게 움직이는 작은 사람들 틈에서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다.

과학칼럼니스트

육아를 하며 과학 관련 글을 쓴다. 과학 전문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저서로 <아기 말고 내 몸이 궁금해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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