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차 팔때 ‘흑백’ 아니면 후회?…남들보다 손해보는 車색상 [세상만車]

최기성 매경닷컴 기자(gistar@mk.co.kr) 2023. 1. 14.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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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논리가 판치는 車세상
10대 중 8대 이상 무채색
유채색, 중고차 가격 하락
벤츠 E클래스와 제네시스 G80 [사진출처=벤츠, 현대차]
설·추석 연휴나 휴가철 방송사 헬리콥터나 드론으로 내려다본 도로 풍경은 온통 ‘흑백’이다.

TV는 흑백에서 벗어나 컬러로 넘어온 뒤 HD·풀HD·UHD를 지나 자연색에 가까운 뛰어난 화질을 제공하는 8K 시대에 접어들었다.

도로 풍경을 볼 때만큼은 8K 컬러TV도 흑백TV가 된다. 검은색, 흰색, 회색 등 무채색으로 칠해진 차량들이 도로를 점령해서다.

간혹 빨간색·노란색·파란색 버스나 승합차가 보이고 빨간색 리어램프가 ‘컬러감’을 살려주지만 무채색 차량 때문에 금방 묻혀 버린다.

신형 그랜저 [사진출처=현대차]
근엄한 사장은 물론 나이 들면 빨강이 좋아진다는 아빠도, 핑크홀릭 엄마도, 빨간 스포츠카가 로망이라는 오빠도 차를 살 때는 흑백논리에 빠진다. 사장차, 아빠차, 엄마차, 오빠차 모두 무채색 선호도가 높다.

요즘 나온 차들은 색감이 다양해져 흑백만 대접받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그러나 통계를 보면 여전히 무채색이 대세라는 게 나타난다.

사실 무채색 차량은 100년 넘게 인기를 끌고 있다. 1950년대부터 유채색 차량들이 영향력을 키웠지만 여전히 대세는 무채색으로 나왔다.

◆대량생산, 무채색 시대 열다
모델T [사진출처=포드박물관]
20세기 초반까지 자동차에 색을 입히는 컬러 개념은 뚜렷하지 않았다. 아름다움보다는 잘 달리게 만드는 기능에 관심이 높았기 때문이다.

1900년대 자동차를 보면 철판, 나무, 가죽, 고무 등이 가진 원래 색상이 그대로 차체 컬러를 형성했다.

자동차에 컬러 개념이 도입된 것은 대량생산과 관련 있다. 1913년 헨리 포드는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자동차 대량생산(포디즘)을 도입해 세계 최초 국민차 ‘모델T’를 생산했다.

모델T는 1915년 이전까지는 차체를 검은색으로만 칠했다. ‘멋’보다는 구하기 쉽고 빨리 말라 작업하기도 편했으며 비포장도로에서 타기에도 부담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 도장기술이 발전하지 않은 당시에는 한가지 색만으로 칠해야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었다. 검은색은 차를 대표하는 색상이 됐다.

검은색 모델T은 이후 도전에 직면했다. 경쟁브랜드 쉐보레는 1924년부터 7가지 색상을 구비한 자동차로 검은색에 식상해진 소비자 마음을 사로잡았다. 1930년에는 캐딜락 라살에 투톤 컬러가 처음 도입됐다.

1969년 출시된 포드 브롱코 [사진출처=포드]
자동차 색상은 도장 기술이 발전한 1950년대에 ‘컬러 혁명’이라 불릴 정도로 다채로워졌다. 원색은 물론 분홍색과 금색도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인기를 끌었다. 할리우드 영화 산업에도 영향을 줘 영화 ‘핑크 캐딜락’과 ‘황색의 롤스로이스’ 등이 제작됐다.

글로벌 자동차회사들도 출신지에 따라 선호하는 색상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기계공학이 발달한 ‘쇠의 나라’ 독일에서 태어난 벤츠, BMW, 아우디는 쇠 색깔인 은색에 공을 들였다. 독일 차량을 대표하는 ‘저먼 실버’가 등장했다.

은색은 차가우면서 에지(edge)를 살려주는 효과도 지녀 고성능 차량에 제격이다. 은빛 화살처럼 질주하는 벤츠 레이싱카를 ‘실버 애로우’라 부르기도 한다.

프랑스 자동차회사들은 냉정하고 평온한 이미지를 지닌 파란색을 레이싱카에 즐겨 사용했다. 이 색상을 ‘프렌치 블루’라고 부르기도 한다.

영국 자동차회사들은 녹색을 선호한다. 재규어는 ‘브리티시 그린’으로 차를 치장한다. 미니(MINI) 클럽맨 그린파크도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 색상으로 레이싱에 대한 영국의 열정을 표현했다.

미국에서는 하얀 바탕에 파란색 줄을 넣은 아메리칸 스트라이프를 포드 머스탱 등에 사용했다. 이탈리아 출신인 페라리는 빨간색 ‘이탈리안 레드’로 정열을 발산했다.

◆무채색으로 글로벌 대동단결
폴스미스 미니 [사진출처=미니]
나라마다 민족보다 선호하는 색상이 다르고 파란색, 빨간색, 녹색이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여전히 대세는 무채색이다.

매경닷컴이 14일 글로벌 자동차 보수용 페인트 기업인 엑솔타(AXALTA) 코팅시스템즈에서 입수한 2022년 글로벌 인기색상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다.

엑솔타는 1953년부터 매년 이 보고서를 발표한다. 자동차 색상 분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데다 신뢰성도 높다고 평가받는다. 자동차 업계가 컬러 정책을 결정할 때도 활용한다.

글로벌 인기색상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흰색 점유율은 34%에 달했다. 전년보다 1%포인트 줄었지만 여전히 대세를 형성했다.

검은색은 21%로 전년보다 2%포인트 증가했다. 회색은 19%로 전년과 같았고, 은색은 8%로 전년보다 1%포인트 감소했다.

무채색을 대표하는 흰색, 검은색, 회색, 은색 4가지 색상의 점유율은 총 82%에 달했다.

벤츠 S클래스(왼쪽)와 BMW 7시리즈 [사진출처=벤츠, BMW]
유채색 중에는 파란색과 빨간색이 그마나 선전했다. 지난해 점유율은 파란색이 8%, 빨간색이 5%로 변동이 없었다. 갈색 및 베이지색은 2%로 전년보다 1%포인트 감소했다. 녹색과 노란색은 1%로 전년과 같았다.

대륙별로 살펴봐도 무채색 대세를 파악할 수 있다. 북아메리카에서는 흰색(30%), 회색(20%), 검은색(19%) 순으로 나왔다. 다만 파란색(11%)이 은색(9%)을 이겼다.

유럽에서는 회색(27%), 검은색(22%), 흰색(21%), 파란색(11%), 은색(10%)이 인기를 끌었다. 역시 파란색을 제외하면 모두 무채색이 상위권을 휩쓸었다.

아시아에서는 무채색 대표 4가지 색상이 나란히 1~4위를 기록했다. 흰색(40%), 검은색(21%), 회색(15%), 은색(7%), 파란색(6%) 순이다.

한국은 북아메리카·유럽과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흰색(34%), 회색(24%), 검은색(16%), 파란색(9%), 은색(4%) 순으로 인기를 끌었다. 파란색이 선전했지만 무채색 대세에 그 의미가 퇴색됐다.

◆무채색도 다채롭게 진화
제네시스 G80 전동화 모델 [사진출처=현대차]
자동차업계는 흰색, 검은색, 회색을 앞세운 무채색이 나라에 상관없이 인기를 끈 이유는 ‘튀지 않는 매력’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자동차는 한번 사면 5년 이상 타기 때문에 개성을 표현한 화려한 유채색보다는 쉽게 질리지 않은 ‘무난한 무채색’을 고르는 경향을 보인다.

자동차 브랜드가 잘 팔리고 생산·관리도 쉬운 무채색 색상 위주로 외장 컬러를 선택하도록 암묵적으로 강요한 게 영향을 줬다는 주장도 있다.

무채색이지만 색상별로 ‘색다른’ 매력도 지닌 것도 무채색이 장수하는 이유로 꼽힌다.

벤츠 C클래스(왼쪽)와 BMW 3시리즈 [사진출처=벤츠, BMW]
흰색은 차를 깔끔하면서도 더 크게 보이는 효과를 지녔다. 흰색 선호도가 높아진 이유를 ‘애플 효과’에서 찾기도 한다.

흰색은 예전에는 냉장고나 화장실 타일 등과 연결됐다. 애플이 흰색을 제품에 많이 사용한 뒤에는 훨씬 가치 있는 색상으로 인정받고 있다.

은색이나 회색은 튀지 않고 차분한 느낌을 준다. 외관 디자인도 돋보이게 만든다. 까다로워진 소비자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디자인이 다채로워진 요즘 트렌드에 어울린다.

검은색은 안정감, 강직함, 무게감, 중후함 등의 이미지를 지녔다. 예나지금이나 대형차 구매자들이 선호하는 색상이다.

무채색의 ‘다채로운’ 진화도 대세를 연장시키고 있다. 유채색이나 펄 등을 결합해 비슷하면서도 다른 색상으로 변신한다.

검은색, 흰색, 회색 등으로 뭉뚱그려 표현하지만 저마다 다른 색감을 지닌다. 희다고 모두 흰 것은 아니고, 검다고 모두 검은 것은 아니다.

◆중고차 색상에 따라 355만원 차이
장한평 중고차매매단지에 고객들이 차를 살피고 있다. 2020.10.11<이승환기자>
무채색 선호는 신차 시장에서 중고차 시장으로 이어졌다. 현대차, 기아, 제네시스, 쉐보레, 쌍용차 등 국산차 브랜드가 내놓는 차량들은 주로 무채색으로 칠해졌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다.

벤츠 E클래스, BMW 5시리즈, 아우디 A6, 벤츠 S클래스 등 인기 수입 중고차도 무채색이 대세다.

중고차 특성도 무채색 선호도에 영향을 줬다. 중고차는 불특정 다수에게 판매하는 상품이다. 무난해야 잘 팔린다는 뜻이다.

튀는 유채색으로 칠해진 중고차는 ‘하자’ 상품으로 여겨진다. 대표적인 하자 중고차는 빨간색, 노란색, 녹색 등 유채색으로 칠해진 중·대형차다. 수요가 많지 않아 5% 정도 싼값에 팔리기도 한다.

겨울철 비수기에는 장기 재고가 될 가능성이 높아 가격이 더 많이 감가된다. 잇단 금리 인상으로 신차는 물론 중고차도 팔리지 않는 시기에는 가치가 더 폭락할 수 있다.

반면 흰색, 회색, 검은색 등 무난한 무채색으로 칠해진 차는 상대적으로 좋은 값에 판매된다.

국내 최대 규모 자동차 유통 플랫폼인 엔카닷컴 조사에서도 현대차 LF 쏘나타의 경우 흰색 차량이 하늘색 차량보다 355만원, 담녹색 차량보다 75만원 시세가 높게 나오기도 했다.

기아 스포티지 [사진촬영=최기성 매경닷컴 기자]
다만, 색상에 영향을 덜 받는 차종도 점차 많아지고 있다. 기아 모닝, 쉐보레 스파크, 현대차 캐스퍼 등 경차가 대표적이다.

깜찍한 이미지나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 유채색을 선택하는 소비자들이 다른 차종보다는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무채색 차량과 가격 차이도 적거나 없는 편이다.

SUV도 세단보다는 무채색과 유채색의 중고차 가격 차이가 예전보다는 크지 않은 편이다. SUV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공급보다 수요가 많아져 색상은 고려 대상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다.

단, 요즘처럼 중고차 불황기에는 판매에 유리한 무채색 차량의 가치가 좀 더 높게 매겨질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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