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높은 봉우리일수록 날카롭다'…김주형의 소니오픈 컷 탈락
[골프한국] PGA투어 새해 두 번째 대회 소니오픈에서 PGA투어닷컴에 의해 우승 가능성이 가장 높은 파워랭킹 1위로 지목됐던 김주형(21)이 14일(한국시간) 하와이 오아후의 와이알레이CC(파70, 7,044야드)에서 열린 1~2라운드에서 합계 1오버파 142타로 컷(2언더파) 탈락했다.
1라운드에서 선전한 최경주, 임성재도 컷 탈락했다. 김성현(8언더파) 김시우(6언더파) 안병훈(5언더파) 이경훈(4언더파) 등 4명의 한국선수가 3라운드에 진출했다.
대회 전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은 김주형의 컷 탈락을 보며 미국의 전설적인 골퍼 진 사라젠(Gene Sarazen, 1902~1999)의 명언이 떠올랐다.
'골프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만사가 순조롭게 진행될 때이다.'(The most dangerous moment in golf is when everything goes smoothly.)
사라젠은 1920년 PGA투어에 입문해 US오픈 2회, US PGA챔피언십 3회, 디 오픈과 마스터스 각 1회 등 7번의 메이저 우승을 포함해 PGA투어 38승 등 프로통산 48승을 올렸다. 벤 호건, 개리 플레이어, 잭 니클라우스, 타이거 우즈와 함께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5명 중의 한 사람이다.
지금에야 털어놓지만 폭주기관차 같은 김주형의 무서운 질주를 보며 우려가 없지 않았다. 지난해 7월 PGA로부터 특별 임시회원 자격을 받은 이후 그의 PGA투어는 잘 나가도 너무 잘 나갔다. 대회에서 거둔 탁월한 성적도 그렇지만 PGA투어의 전문가들과 선수들 그리고 미디어까지 주저 없이 그를 '미래의 세계 넘버원'으로 평가했다. 이런 분위기를 지켜보며 과연 그가 날카로운 칼날 위에서 오래 버텨낼 수 있을까 염려되었던 게 사실이다.
모든 생명 활동이 파동이듯 골프선수들의 활약도 예외일 수 없다. 장기간 정상을 지배할 것 같은 선수들도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곤 한다. 시기나 주기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골퍼에게 찾아오는 생체 및 감성 파동 때문이다.
높은 봉우리일수록 날카롭다. 정상에 오래 머물 수 없다는 뜻이다. 그리스 신화의 시지프스가 어렵게 바위를 산 정상에 올려놓으면 다시 바닥으로 굴러떨어지는 것도 날카로운 봉우리 때문이다.
김주형이 진 사라젠의 명언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창 잘 나가다 보니 잊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소니오픈에서 김주형이 경기하는 모습을 보며 어딘가 모르게 흥분한 듯하고 신중함이 덜한 느낌이 들었다. 그에게 쏠리는 스포트라이트의 영향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열렬한 팬의 한 사람으로서 PGA투어에서의 개화(開花)를 위해 그가 진 사라젠을 더 탐구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탈리아 시실리섬 출신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사라젠은 어릴 때부터 골프에 빠져들었으나 골프선수로서 대성하는데 두 가지 약점이 있었다. 165cm라는 단신의 핸디캡과 벙커샷 노이로제였다. 그는 왜소한 신체에도 불구하고 남다른 노력으로 장타자가 될 수 있었으나 벙커샷은 지독히도 못했다.
당시엔 지금 같은 웨지가 없었다. 물론 다른 클럽보다 짧고 클럽 페이스가 누운 클럽은 있었다. 즉 웨지 바닥에 바운스가 없는 클럽이었다. 벙커에 공이 들어가면 얇은 웨지 날(리딩 에지)로 모래를 아주 정교하게 쳐야만 하는데 이게 어려웠다. 조금 뒤를 치면 벙커 탈출에 실패하고 볼 뒤를 바싹 치려고 하다간 홈런이 나기 일쑤다.
그런 그가 벙커샷을 연구한 끝에 웨지 헤드 밑바닥에 쇠붙이(바운스)를 볼록하게 붙여 원하는 벙커샷을 만들어냈다. 사라젠은 이 바운스를 붙인 웨지로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벙커에 빠져도 다른 선수처럼 탈출에 급급해하지 않았고 홀에 가까이 붙이는 샷까지 선보이며 우승을 늘려나갔다. 그는 '바운스의 비밀'을 공개하지 않았으나 언론이 집요하게 추적한 끝에 그의 벙커샷 비밀이 바운스에 있음을 밝혀냈다. 바운스 발명 덕분에 그는 골프용품 업체와 계약을 맺었고 그 웨지는 날개 돋친 듯 팔렸다.
PGA투어의 전문가나 톱클래스 선수들이 동의하듯 김주형은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자신의 길을 찾아 노마드처럼 헤매며 기회의 문을 두들기는 집요함, 골프에 대한 열정, 타고난 교감능력과 언어구사력 등은 비교 대상을 찾기 힘들 정도다. 특히 동반자로부터 배우려는 자세는 그의 특장 중의 특장이다. 직전 대회인 센트리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에서 콜린 모리카와의 구도자 같은 플레이, 존 람의 무서운 집중력과 결기 등을 지나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기회에 김주형이 자신의 약점을 강점으로 변환시킬 줄 알며 만사가 순조로울 때가 가장 위험하다는 자각을 터득한 진 사라젠을 가슴에 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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