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오래 걸려도… 책임자들 모두 기억할게, 함께 노력할게”
유가협 “정부, 희생된 아이들에 책임 떠넘겨”
“정부가 하루빨리 이태원 참사의 책임자를 밝히고,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분노의 마음을 담아 참석했어요.”(대학생 박예소씨·19) “이상민·오세훈·경찰청장에 대해 수사하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윤석열 대통령은 잘못을 남에게 전가만 하는 건가요?”(김은주씨·45)
겨울비가 내린 14일 오후 서울 곳곳에선 윤석열 정부를 향한 시민들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모인 목적과 요구는 달랐지만, 시민들은 한목소리로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외면하는 정부를 비판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시민대책회의는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맞은편에서 ‘진실·책임·연대의 2023년 우리를 기억해주세요. 10·29 이태원 참사 3차 시민추모제’를 개최했다. 이날 3차 시민추모제엔 유가족 50여명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및 시민 약 300여명이 자리했다. 이종철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특수본(경찰청 특별수사본부)은 윗선에 대한 수사조차 시도하지 못하는 ‘셀프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전날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태원 사태 등으로 작년 4분기 경제지표가 나쁘게 나왔다’며 희생된 아이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유가족들의 심장은 다시 차갑게 식었다”며 “아이들이 떠난 지 100일이 되는 날 국민 100만명이 모여 유가족·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고 했다. 전날 특수본은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 이른바 ‘윗선’에 대해선 “구체적인 주의의무 위반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며 불송치 및 내사 종결했다.
유가족들은 보고 싶은 가족을 향한 애끓는 마음을 애써 표현했다. 159번째 희생자 이재현군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쓴 편지에서 “왜 제일 사랑하는 재현이에게 제일 많이 화를 냈을까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난다. 너 먼저 이렇게 가버리면 아빠는 남은 인생 너만 생각하며 살아야 하잖아”라고 말하며 흐느꼈다. 고 이상은씨의 이모 강민하씨는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너와 같이 있던 많은 친구의 미래를 앗아간 책임 있는 자들 모두 다 기억해둘게. 막중한 자리에서 사명을 다 하지 않은 자들이 책임지고 합당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여기 모인 유가족분들과 함께 노력할게”라고 말했다.
3차 시민추모제에 모인 시민들은 정부가 2차 가해를 막고 신속하게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했다. 전남대 민주동우회 회원 20여명과 함께 광주에서 이곳을 찾았다는 오창규(56)씨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마음으로나마 위로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오전 8시30분께 광주에서 출발해 추모제에 참석하게 됐다”며 “치유와 위로는커녕 유가족 가슴에 못을 박고 2차·3차 가해를 하는 정부를 보면서 분노가 일었다”고 했다. 이날 추모제의 사회를 맡은 안은정 다산인권센터 활동가는 “혐오 발언을 지속하는 신자유연대와 김상진에 대한 접근금지 가처분 인용촉구 탄원서에 이틀 만에 시민 3만7000여명이 동참했다”고 밝혔다.
같은 날 오후 3시께 진보단체들로 구성된 촛불승리전환행동(촛불행동)은 서울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11번 출구에서 행진을 시작해 오후 4시30분께부터 서울지하철 2호선 시청역 인근부터 숭례문 오거리까지 자리를 잡고 ‘김건희 특검·윤석열 퇴진 전국집중 촛불 대행진(23차)’을 진행했다. 이날 집회엔 주최 쪽 추산 3만명(오후 5시30분 기준)이 참여했다. 촛불행동은 “윤석열의 국정 파행과 정치난동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며 “무엇보다 10·29 이태원 참사 이후의 조처는 패륜의 극치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이날 인천·춘천·익산·대구 등 전국 46개 지역에서 모인 참가자들은 ‘2023년 윤석열 퇴진원년’, ‘정치보복·공안탄압 윤석열 퇴진’, ‘주가조작·허위경력·상습사기 김건희 특검’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윤석열은 퇴진하라”, “김건희를 구속하라”라는 구호를 외쳤다. 중학교 3학년·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 둘과 함께 집회에 참여한 김은주(45)씨는 “‘핵무장’ 발언 등 윤석열 대통령의 막말이 외교·안보를 흔들고 이것이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 도시가스비 등 물가도 너무 올라 자영업 하는 시민 입장에서 너무 힘들다”며 “아이들이 살기 좋은 세상이 올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참가했다”고 했다.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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