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름 만둣집 앞에선 늘 설렌다, 찰떡같은 쫀쫀함에 [ESC]
아삭한 채소 식감에 구수한 맛
차가운 계절 더 맛있는 솔 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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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음식이 있다. 발음만으로도 입안까지 꽉 차는 풍성한 기분, 만두가 그렇다. 명절 상차림부터 기념할 만한 특별한 기념일의 밥상에까지 빠지지 않는 우리의 솔 푸드가 바로 만두다. 누구나 냉장고에 냉동 만두 하나씩은 쟁여 두고 있지 않나? ‘현대인의 구황 식품’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을 정도니, 한국인의 만두 사랑은 유별나다.
평양만두냐 딤섬이냐
어린 시절 명절의 추억은 늘 만두에서 시작해서 만두로 끝났다. 이북 평안도 출신인 외할머니는 설 때마다, 그리고 누군가의 생일마다 만두를 빚었다. 끊임없이 소를 넣고 빚고 쌓아 올리고 삶아내는 그 과정은 정말 끝이 없도록 반복됐다. ‘이 힘든 일을 뭐하러 하나’ 투덜댔던 어린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돈 주고도 못 사 먹는 그 만두의 기억은 그야말로 아련하다.
엄마가 물려받아 아직도 명절이면 만두를 빚지만 역시 예전의 그 맛은 아니다. 매번 빚어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할머니는 이따금 서울 장충동 ‘평양면옥’의 만두로 아쉬움을 달랬다. 성인 남자 손바닥만큼 크고 두툼한 만두피 속에 두부와 숙주, 돼지고기 소, 파가 잔뜩 든 평양 만두는 할머니가 만든 그 만두 맛과 흡사했다. 간을 적게 해 심심한 염도에 씹을 때마다 터져 나오는 돼지고기 육즙, 서걱서걱 씹히는 파의 향이 더해져 계속해서 “한 입만 더”를 외치게 된다.
성인이 되고선 안주 삼아 만두를 먹기 시작하면서, 먹고 마시고 놀기를 일삼는 친구들끼리 ‘만두 로드’ 기행을 기획했다.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일종의 장기 프로젝트로 전국 각지의 맛있는 만둣가게를 지도 애플리케이션에 공유하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경기도 오산 오색시장의 소문난 만둣집을 다녀왔는데, 허름한 외관과는 달리 그 맛은 고급 중식당과 비교해도 손색없었다. 사실 만둣집 외관이 좀 허름해야 맛있지 않나? 오색시장의 ‘초언니만두전문점’은 정통 중국식 만두를 낸다. 매장에 들어서면 산더미 같이 쌓인 만두소가 먼저 반긴다. 눈앞에서 척척 빚어내는 광경을 보고 있으면 만두 안 좋아한다는 사람도 속절없이 주문할 수밖에 없을 테다. 처음 방문한 이라면 대표 메뉴이자 가장 기본 메뉴인 ‘샤오룽바오’와 ‘수정새우만두’를 주문할 것. 하늘하늘한 얇은 피 속에 육즙이 가득 들어 있는 샤오롱바오는 숟가락 위에 올린 뒤 피를 터뜨려 육즙부터 먹자. 입속에 홀랑 넣었다가는 입천장과 혀가 그 뜨거움에 놀랄 테다. 함께 나오는 초생강을 곁들여 먹으면 돼지고기의 고소한 맛에 상큼함까지 더해져 더욱 기가 막힌다. 투명하고 도톰한 피에 통통한 새우를 싸서 만든 수정새우만두는 찹쌀 피의 쫀득함과 새우의 탱글탱글한 식감이 궁극의 균형을 이룬다. 과장을 살짝 보태자면 찰떡을 먹는 것같이 쫀쫀한 식감이다. 샤오룽바오 한 점에 소맥 한 잔, 입가심으로 초생강을 입에 넣고 또 수정새우만두 한 입이면 어쩔 도리 없이 즐거울 수밖에. 돌아가는 길에는 돼지고기 소가 듬뿍 들어 있는 ‘성젠바오’를 포장해 갈 것. 만두 밑 부분은 굽고 윗부분은 증기로 쪄서 바삭함과 부드러움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메뉴다.
허름할수록 맛있는 집이라고 한다지만, 고급 중식당에서 맛보는 만두는 또 어떨까?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있는 롯데호텔 월드의 오래된 중식 노포 ‘도림’이 딤섬을 위주로 한 ‘도림 더 칸톤 테이블’로 올 1월 새롭게 돌아왔다. 정통 광둥식 딤섬을 표방하는데, 일반적인 중식당에서는 만나기 쉽지 않은 딤섬 메뉴가 눈에 띈다. 특히 창펀은 만들기도 까다롭고 호불호도 많이 갈리는 딤섬 종류라 취급하는 식당이 많지 않은데 이곳을 방문한다면 꼭 주문해 보기를 권한다. 부들부들한 쌀 피 안에 새우와 야채가 듬뿍 들어 있어 식감이 무척 뛰어나다. ‘블랙 죽순 새우 교자’, ‘트러플 모둠 버섯 교자’처럼 고급 식재료를 사용한 이색적인 딤섬도 눈에 띈다.
중식 만두를 즐겼다면 이제 국내 정통파로 돌아올 때다. 서울 강남구에는 의외로 소문난 만두 노포가 많은데, 강남구 신사동의 ‘목로평양만두국’과 ‘설매네’, ‘뉴만두집’은 평양 만두 좀 먹어본 이들 사이에서 무척 유명한 곳들이다. 만둣국을 상호에 내세운 ‘목로평양만두국’은 만둣국뿐 아니라 버섯만두전골, 찐만두와 군만두까지 거의 모든 종류의 만두를 취급한다. ‘평양식 만두는 이런 것이다’라는 걸 보여주듯 크기가 압도적이다. 일반적인 평양 만두보다는 피가 얇고 두부가 가득 들어 담백하고 구수한 맛이 난다.
인근에 있는 ‘설매네’ 역시 결이 비슷하다. 탕평채, 보쌈, 칼국수 등 다양한 메뉴를 판매하는데, 만둣국이 이 집의 인기 메뉴다. 만둣국을 주문하면 투박하게 빚어낸 크고 둥그런 만두 5점이 따뜻한 국물에 담겨 나온다. 김 가루나 다른 양념을 넣지 않은, 깔끔하고 개운한 맛이 일품이다. 요즘 같은 추운 계절에 딱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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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쫄면에 뜨끈한 만두 한 입
‘뉴만두집’은 젊은이의 거리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 무슨 만둣집이냐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숨은 고수에서 ‘알려진 고수’로 유명하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에 2017년부터 현재까지 무려 7년 동안이나 실릴 정도니 알 사람은 다 아는 만두 맛집인 셈이다. 만두전골과 만둣국, 빈대떡, 고추전과 비지가 메뉴의 전부다. 만둣국에는 맹맹해 보이는 국물에 만두 6알이 전부인데 그릇을 한 바퀴 저으면 그릇 밑바닥에서 고춧가루 양념이 올라온다. 심심해 보이는 국물인데, 먹다 보면 매콤한 맛이 올라와 중독적이다. 만두 한 알 정도는 맑은 국물에 풀어 먹어도 좋겠다. 만두 자체에 살짝 간이 되어 있어 조미료 역할을 한다. 기회가 된다면 막걸리도 함께 주문해서 마실 것. 발끝까지 따뜻해진다는 말을 직접 체감하게 된다.
인천 중구의 신포국제시장은 먹거리 천국으로 유명하다. 차이나타운과 가까워 두 곳을 한꺼번에 즐기는 미식 투어를 하는 관광객도 많다. 공갈빵, 빠오즈 같은 중국식 만두도 이 시장에서 만날 수 있지만 그 유명한 ‘신포 만두’의 발상지가 바로 이곳이다. 신포우리만두는 전국 곳곳에 자리 잡은 프랜차이즈이기도 하고, 마트 냉동식품 코너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을 정도로 대중적이다.
신포 시장의 ‘신포우리만두본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쫄면의 발상지’로 더 유명한데, 가게 간판에 내건 만큼 만두 맛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 딱 ‘분식집 스타일’ 만두인데, 속 재료가 살짝 비쳐 보일 정도로 얇은 피에 소가 잔뜩 들어 입맛을 돋운다. 쫄면과 모둠 만두야말로 사실 분식집 궁극의 조합 아닌가? 특별한 맛은 아니어도, 방금 쪄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는 그 자체만으로도 맛이 없을 수가 없다.
간단하게 한 끼를 해결하기에도, 술 한 잔 기울이기에도, 국에 넣어도 라면에 넣어도 그냥 먹어도 곁들여 먹어도 맛있는 만두. 이렇게 추운 계절, 한 입 베어 무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주는 귀한 존재, 만두. 서양 사람들에게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가 있다면 우리에겐 뜨끈한 만두가 있다.
백문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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