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이면 4배 보상”...손실이 뻔한데도 왜 리셀시장 뛰어들까 [생생 유통]
한화솔루션이 본격적으로 리셀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리셀은 한정판 제품을 구매한 뒤 되파는 상행위를 말한다. 쉽게 말하면 중고 거래지만 희소성 높은 제품을 골라 다시 팔기 때문에 리셀이라는 용어로 재정의해 통용한다. 리셀은 과거 산업화 시대 통용되던 대량생산·대량소비 시대와는 문맥상 맞지 않는 소비 행태다.
‘최대한 표준화된 제품을 많이 만들어 싸게 시장에 내놓고 이를 통해 시장 점유율을 높인 뒤 훗날 가격결정권을 행사해 초과 이익을 거둔다.’ 헨리 포드 이후 셀 수 없이 많은 기업인은 이 명제를 염두에 두고 매출 확대에 골몰했는데, 리셀은 이와 정확히 반대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조금 어렵다면 휴대폰을 떠올려 보자.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휴대폰은 이상하게 2년만 지나면 버튼이 눌리지 않고 전화가 끊긴다고. 만약 어떤 엔지니어가 10년 가도 끄떡없는 스마트폰을 만든다면 스티브 잡스는 당장 그를 해고했을 것이다. 당장 내년이면 아이폰 신제품을 내놔야 하는데 모두가 고장 나지 않는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면, 신제품은 도대체 누가 산다는 말인가.
한화솔루션의 자회사 엔엑스이에프(NxEF)가 지난달 리셀플랫폼 ‘에어스택(AIRSTACK)’을 내놨다. 네이버 크림과 무신사 솔드아웃이 양분하던 시장에 과감히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앞서 한화솔루션은 2021년 12월 지분 100%를 투자해 자회사 NxEF를 설립하면서 중고품 거래 시장에 진출을 선언했다. 에어스택은 단순한 중고품 거래를 넘어 리셀플랫폼까지 사업 영역을 넓힌 것이다.
해답은 최근 딜로이트가 발간한 보고서 ‘글로벌 명품 산업 2022 : 열정의 새 물결’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보고서는 전 세계 명품 시장이 이미 코로나19 사태 이전으로 회복했고 프랑스 브랜드가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는 내용으로 채워졌지만, 정작 딜로이트가 중요하게 보는 지점은 따로 있었다. 바로 명품 시장이 점차 친환경 추세로 전환하고 있다는 것. 이를 설명하기 위해 딜로이트는 가치사슬로 보는 유통구조를 세 가지 형태로 제시했다.
명품 업체들 또한 마찬가지다. 폴 매카트니의 딸이자 저명한 디자이너 스텔라 맥카트니는 순환 경제 확산을 위해 순환 경제 프로그램(Circular Economy-Program)을 운영하고 있는 리셀플랫폼 ‘리얼리얼(Real Real)’과 협력하고 있다. 스텔라 맥카트니는 리얼리얼에서 판매를 시작하면서 재구매 시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100달러 할인 쿠폰을 제공하는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 참여한 명품업체로는 버버리와 구찌가 있다. 이 밖에 발렌시아가와 프라다 같은 이탈리아 명품 업체는 물론 전 세계 최대 명품업체 LVMH와 리치몬트까지 중고 명품시장에 발을 들이고 있다. 신제품을 내놔서 매출을 늘려야 하는 업체들이 나서서 중고 명품 유통을 지원하고 나선 것이다. 스마트폰을 예로 들면 애플은 매해 아이폰 신제품을 내놔야 하는데 한쪽에서는 애플의 이름을 달고 구형 아이폰을 유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니 놀라운 일이긴 하다.
다시 한화솔루션으로 돌아오면, 과연 왜 이들은 중고 거래 시장에 눈독을 들일까. 물론 친환경 운동이 대세로 자리 잡으면 잡을수록 비즈니스 기회가 많을 것으로 보고 진출을 선언했을 수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이보다는 좀 더 큰 그림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화솔루션은 다양한 사업 부문을 소유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석유화학 기업이다. 일회용품 소재부터 태양광 패널까지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다. 그만큼 자원의 재활용과 순환모델 구축에 많은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한화솔루션이 그리는 솔루션은 자원의 포괄적 순환모델 구축에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제는 친환경이라는 명제 아래 생산과 유통의 경계가 급속히 허물어지고 있지만 유통업계는 여전히 소극적인 것 같다. 백화점과 아울렛 매장, 심지어 온라인 쇼핑몰까지 모두 생각해 봐도 친환경 유통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생산과 유통 전반을 포괄해 지속이 가능한 성장을 도모하는 과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한화솔루션 같은 제조업체뿐만 아니라 이제는 유통업체들도 어떻게 하면 순환모델에 편입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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