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오늘, 종로 체육관에 모인 청년들 [청계천 옆 사진관]
변영욱기자 2023. 1. 14.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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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년 전 이 번 주 사진 중에 가장 눈에 띈 사진입니다서울 종로의 청년회에서 실내운동경연을 했다고 합니다.
1934년도에 들어서 라이카가 오늘날 쓰는 35미리카메라를 출시하면서 비로소 1/300초의 고속 스피드 촬영이 가능했다는 게 정설입니다(박주석, "한국 사진사" 저자). -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선수들의 윗옷에 크게 쓰여진 영어 알파벳 S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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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사진] No. 1
▼ 100년 전 이 번 주 사진 중에 가장 눈에 띈 사진입니다
서울 종로의 청년회에서 실내운동경연을 했다고 합니다. 악단이 분위기를 띄운 후 유도 야구 철봉 종목의 실력을 겨루었는데 저녁 7시 45분부터 3시간 가량 행사가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부언
모두들 생업에 바빴던 시절 탓이었을까요? 밤 8시에 가까운 시간에 모여 밤 11시까지 운동회를 했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게다가 전기가 부족한 시절 실내에 조명을 밝혔다는 건 어떤 사정이 있었을 겁니다. 낮에 바쁘게 일하고 밤에 모여 축제를 즐긴 건 아니었을까요?
신문의 특성상 사진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딱 한 장이 실립니다. 그런데 왜 스포츠 경기 경연대회를 했는데 스포츠 액션이 아니라 삼각탑을 만드는 묘기 사진을 신문에 썼을까요? 유도의 한판승 순간이나 블로킹을 뚫고 슛을 성공시키는 선수의 모습은 스포츠 사진의 묘미일텐데 말이죠. 아마도 카메라 기술력 때문이었을 겁니다.
당시 실내에서 스포츠 선수들의 움직임을 포착할 만큼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야구장이나 축구장에서 사진기자들이 이른바 스포츠 액션을 포착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셔터 스피드는 1/500 초 보다 빠릅니다. 1/2000초 정도로 셔터 스피드를 설정해 놓고 촬영하기도 합니다. 1초를 500 조각으로 나눈 순간 또는 1초를 2000 조각으로 나눈 순간의 표정을 잡는다는 의미입니다.
100년 전 사진가들은 실내에서 그렇게 빠른 순간을 포착할 수 있는 카메라를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당시 최고 사양이었던 코닥 베스트 포켓 카메라에는 1/25초와 1/50초와 B셔터 그리고 T셔터 등 4단계의 셔터 단계만 있었습니다. 가장 빠른 셔터 스피드라고 해야 1/50초라는 겁니다. 스포츠 액션의 순간을 포착하기엔 너무 느렸던 겁니다. 벌브 플래시를 터뜨려야 순간을 포착할 수 있는데 그런 방식은 선수들의 시선을 방해하기 때문에 경기 중에는 사용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선택한 방식이 삼각탑 묘기가 정지되는 순간으로 행사를 표현했을 겁니다.
1934년도에 들어서 라이카가 오늘날 쓰는 35미리카메라를 출시하면서 비로소 1/300초의 고속 스피드 촬영이 가능했다는 게 정설입니다(박주석, “한국 사진사” 저자).
-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선수들의 윗옷에 크게 쓰여진 영어 알파벳 S입니다. Sports의 약자였을까요? 이 복장은 며칠 후인 1923년 1월 26일자 신문에 다시 실립니다.
선수들 가슴의 알파벳 “S“자가 어떻게 보면 영화 슈퍼맨의 망토와 비슷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100년 사진에서 뭐가 보이시나요? 댓글에서 여러분의 시선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백년 사진]을 시작하며 |
도처에 사진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불과 70년 전에는 라이카 카메라 한 세트를 살 돈이면 서울 강북의 작은 집 한 채를 살 수 있을 정도로 사치품이었지만 이제는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가족과 풍경을 멋지게 찍어낼 수 있는 일상 용품이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20대부터 시작한 사진기자라는 직업이 어느덧 30년에 가까운 경력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사진기자라는 직업을 택했던 이유가, 세상에 대한 기록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일신우일신 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막연하지만, 계속 탐구하고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은 멋진 직업 말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으실 겁니다. 저도 그 시간이 온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과거로 여행을 떠나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지금 찍고, 고르고 신문 지면과 인터넷을 통해 독자들과 공유하는 사진의 원형을 찾아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중간 중간 어떤 진화 과정을 거쳐 오늘의 모습으로 변했는지도 살펴보고 싶습니다. 1842년에 발명된 사진술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1800년대 후반이라지만 대중매체인 신문에 실리기 시작한 것은 1900년대 들어서입니다. 일제시대 민간 신문이 처음으로 탄생한 것이 1920년이니 많은 사람들이 사진으로 다른 사람들의 소식과 다른 나라의 모습을 보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일 것입니다. 지금 사무실의 제 컴퓨터를 통하면 100년 전으로 시간 여행을 쉽게 떠날 수 있다는 걸 문득 깨달았습니다. 불과 20년 전만이라고 해도 아마 옛날 사진을 찾으려면 국회 도서관 수장고에 일일이 열람신청을 했어야 했고, 그렇게 발견한 보물을 인터넷에 올리기 위해 스캐너라는 장비의 도움을 받아야 했을 것입니다. 이 모든 수고를 덜 수 있도록 놀랍도록 간편한 PDF 방식을 개발한 누군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100년 전 동아일보 지면이 모두 디지털 파일로 저작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동아일보 데이터베이스에는 2023년 1월 현재 약 200만 장의 인화된 사진과 약 400만 장의 디지털 사진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그 중 오늘과 소통할 수 있는 사진들을 찾아 독자 여러분들과 나눠보려 합니다. 누구보다 진지하게 글 한자 한자를 선택하고 사진 한 컷 한 컷을 정성들여 찍고 선택했던 한국 신문의 아버지들의 흔적을 찾아 시간 여행을 떠나보고자 합니다. |
▼ 100년 전 이 번 주 사진 중에 가장 눈에 띈 사진입니다
서울 종로의 청년회에서 실내운동경연을 했다고 합니다. 악단이 분위기를 띄운 후 유도 야구 철봉 종목의 실력을 겨루었는데 저녁 7시 45분부터 3시간 가량 행사가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부언
모두들 생업에 바빴던 시절 탓이었을까요? 밤 8시에 가까운 시간에 모여 밤 11시까지 운동회를 했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게다가 전기가 부족한 시절 실내에 조명을 밝혔다는 건 어떤 사정이 있었을 겁니다. 낮에 바쁘게 일하고 밤에 모여 축제를 즐긴 건 아니었을까요?
신문의 특성상 사진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딱 한 장이 실립니다. 그런데 왜 스포츠 경기 경연대회를 했는데 스포츠 액션이 아니라 삼각탑을 만드는 묘기 사진을 신문에 썼을까요? 유도의 한판승 순간이나 블로킹을 뚫고 슛을 성공시키는 선수의 모습은 스포츠 사진의 묘미일텐데 말이죠. 아마도 카메라 기술력 때문이었을 겁니다.
당시 실내에서 스포츠 선수들의 움직임을 포착할 만큼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야구장이나 축구장에서 사진기자들이 이른바 스포츠 액션을 포착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셔터 스피드는 1/500 초 보다 빠릅니다. 1/2000초 정도로 셔터 스피드를 설정해 놓고 촬영하기도 합니다. 1초를 500 조각으로 나눈 순간 또는 1초를 2000 조각으로 나눈 순간의 표정을 잡는다는 의미입니다.
100년 전 사진가들은 실내에서 그렇게 빠른 순간을 포착할 수 있는 카메라를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당시 최고 사양이었던 코닥 베스트 포켓 카메라에는 1/25초와 1/50초와 B셔터 그리고 T셔터 등 4단계의 셔터 단계만 있었습니다. 가장 빠른 셔터 스피드라고 해야 1/50초라는 겁니다. 스포츠 액션의 순간을 포착하기엔 너무 느렸던 겁니다. 벌브 플래시를 터뜨려야 순간을 포착할 수 있는데 그런 방식은 선수들의 시선을 방해하기 때문에 경기 중에는 사용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선택한 방식이 삼각탑 묘기가 정지되는 순간으로 행사를 표현했을 겁니다.
1934년도에 들어서 라이카가 오늘날 쓰는 35미리카메라를 출시하면서 비로소 1/300초의 고속 스피드 촬영이 가능했다는 게 정설입니다(박주석, “한국 사진사” 저자).
-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선수들의 윗옷에 크게 쓰여진 영어 알파벳 S입니다. Sports의 약자였을까요? 이 복장은 며칠 후인 1923년 1월 26일자 신문에 다시 실립니다.
선수들 가슴의 알파벳 “S“자가 어떻게 보면 영화 슈퍼맨의 망토와 비슷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100년 사진에서 뭐가 보이시나요? 댓글에서 여러분의 시선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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