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서평생활] 경제뉴스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장슬기 기자 2023. 1. 14.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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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서평생활] 경제 뉴스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이상민 지음/ 빨간소금 펴냄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이 책을 가장 잘 소개한 글은 최경영 KBS 기자의 추천사다.

“이렇게 가정해봅시다. 언론사 기자들에게 1억 원 이상의 연봉을 줍니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완벽히 독립된 환경을 조성해줘요. 데스크도 관여하지 않습니다. 언론사 기자들은 자신이 마음먹은 기사를 얼마든지 쓸 수 있어요. 권력이나 광고주의 눈치를 보지 않고…그렇다고 하더라도 언론사의 보도는 완벽히 객관적으로 세상의 진실을 보여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무지하고 정보는 광범위한데 정보를 쥐고 있는 정부, 기업 등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정보를 가공해서 내놓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입맛대로 가공된 정보에는 현혹되기 쉽죠. (중략) 정부가 내놓는 보도자료에는 아예 이 숫자는 어떻게 해석하라고 설명이 되어 있지요. 처음 관련 보도자료를 접하는 기자들조차도 이 해석을 반박할 지식이나 정보가 없습니다. 그러니 정부가 내놓는 숫자와 해석을 그대로 쓰게 되지요. 다 똑같이. (중략) 그래서 배워야 합니다. 언론, 특히 숫자가 나오는 경제 기사를 읽는 법은 배워두면 유용합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이 쓴 '경제 뉴스가 그렇게 어렵습니까?'는 경제 기사 읽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미디어오늘에 지난 2020년 1월부터 격주로 연재한 '이상민의 경제기사비평' 원고 등을 중심으로 경제 기사 안에 등장하는 부정확한 용어를 바로잡고 경제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면서, 왜 특정 관점이나 잘못된 정보를 근거로 해당 기사들이 작성됐는지 분석했다.

▲ 경제 뉴스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이상민 지음/ 빨간소금 펴냄

기사를 읽으며 먼저 확인해볼 것들

정부에서 어떤 통계를 발표했다고 하자. 같은 통계자료를 두고 긍정적인 뉴스도 나오고 부정적인 뉴스도 나온다. 특정 기사를 보고 취업자 수에 대해 판단하는 건 위험하다. 저자는 이때 바이라인(by-line, 기사 작성자)부터 확인할 것을 제안한다. '온라인 뉴스팀', '디지털 뉴스팀' 등 기자 실명이 아닌 바이라인은 일단 거를 것을 주문한다. 기자 이름도 못 내걸고 쓴 '조회수'를 위한 기사에서 얻을 게 없기 때문이다.

경제 기사를 제대로 읽는 출발은 용어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일이다. 보통 언론에서 '양도세'는 양도(매각)라는 거래에 부과하는 세금(거래세)처럼 표현한다. 하지만 양도세의 본말은 '양도소득세'로 거래세가 아니라 소득세다. 소득이 생길 때 그곳에 세금을 부과하는 소득세이기 때문에 양도소득세의 경우 양도 차익 소득이 발생하지 않으면 세금이 없다. 취득세처럼 거래 단계에서 일괄 부과하는 거래세가 아니란 뜻이다. 즉 양도세 강화를 '거래세 강화'로 해석하면 틀린 기사가 된다.

저자는 실제 언론보도를 사례로 들면서 해당 기사가 왜 편협한 관점의 기사인지 혹은 잘못된 기사인지 짚어내고 어떻게 보도를 했어야 했는지도 제시한다. 시민단체 활동가와 국회 보좌진을 거치면서 언론사 내부 사정이나 기자들의 행태까지 꼬집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통계를 제멋대로 다루는 언론

“언론은 통계를 다룰 때 조심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체감과 통계가 다르면 통계를 우선시해야 한다. 만약 통계보다 체감이 더 옳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통계의 문제점과 한계를 정확하게 짚어내야 한다.(102쪽)”

통념과 통계를 구분하는 자세도 거론했다. 불평등은 커지고 있을까? 통계청 '가계 금융 복지 조사'를 보면 지니계수는 꾸준히 좋아지고 있다. 지니계수는 소득 불균형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다. 소득 불평등은 개선되고 있다. 하지만 자산 불평등은 악화되고 있다. 지니계수 변화만으로 불평등이 개선되고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최근 강력범죄 관련 보도가 많아진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해당 보도는 다른 소식보다 기억에 잘 남는다. 하지만 경찰청 범죄 통계를 보면 전체 범죄 건수도 줄고 있고 살인 등 강력범죄도 줄고 있다. 이번 겨울에도 미세먼지 관련 소식이 들려온다. 체감상 미세먼지가 자주 나타나는 것 같지만 환경부 월별 대기오염도를 보면 전국 미세먼지 농도는 낮아지고 있다.

▲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의 지난 2020년 8월19일자 미디어오늘 기고

저자는 “체감과 다른 통계 수치를 다루는 데에는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하다”며 “그렇다고 통계 전체를 다루지 않고 통계를 취사선택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2003~2020년 서울 아파트 가격은 연평균 3.7% 상승해 17년간 83% 올랐다. 최근 2~3년간 두배는 올랐을 것 같은 느낌과 차이를 보이는 통계다.

저자는 특히 같은 기간 강남구 아파트 상승률은 79%에 그쳐 서울 평균에 미치지 못했고, 강북구 아파트 가격은 95% 상승했다면서 “이러한 통계적 사실을 전한 언론이 있었을까”라고 물었다. 체감, 이에 더해 편견에 기반해 언론이 통계를 있는 그대로 전하지 못한 셈이다. 결국 기자도 사람이고 주관적 체감을 기사에 반영해 현실을 왜곡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기업 관점 vs 소비자·시민 관점

언론이 누구의 관점에서 기사를 쓰고 있는지를 짚어주는 부분도 있다. “재벌 오너의 경영권 다툼이 진흙탕 싸움으로 번진다”는 뉴스는 완벽하게 틀린 문장이라고 한다. 한국 재벌 총수들 주식 지분이 보통 1~5% 수준이니 오너(주인)일 수 없고 지배주주라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특정 법인의 주식을 한주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도 많아서 그냥 '재벌 총수'가 맞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언론에서 자주 쓰는 '경영권' 역시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며, 저자는 '지배력'이 옳다고 정정한다. “경영권을 쓰면 무언가 보호를 받아야 할 '권리' 같은 잘못된 뉘앙스를 풍긴다. 특히 적자생존의 시장 원리를 강조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경영권'을 써서는 안 된다.(170쪽)”

마치 과거에는 '사치품'이라고 쓰던 걸 최근에는 '명품'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저자는 4장 제목을 “기업보도는 소비자의 눈으로 읽자”라고 지었다. 상당수 언론보도가 기업 경영인들 관점에서 작성되고 있고 관행처럼 굳어진 것은 거대 광고주이자 상세하며 친절한 취재원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언론에서 한진그룹 일가 집안 사정에 대해 '남매의 난'이라며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누구의 관점일까?

“언론이 왜 남의 가정을 걱정할까? 남의 집 사생활은 걱정하지 말고 기업과 이사의 공적 역할에 집중하자. 과연 경영인이 한 가족으로 똘똘 뭉쳐 '좋은 게 좋은 거지'라며 경영하는 게 좋을까?(중략) 경영인이 상대방을 견제하면서 상대방 잘못을 들추는 것은 기업의 투명성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두산 '형제의 난' 때도 대부분 언론은 진흙탕 싸움이라며 부정적으로 표현했지만 형제의 난을 통해 두산 총수 일가가 326억 원의 비자금을 횡령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170~171쪽)”

이러한 관점의 전환은 독자들이 다른 기사를 읽는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이진우 삼프로TV 대표는 책 추천사에서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경제 뉴스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경제 뉴스를 얼마나 조심스럽게 읽어야 하는지는 잘 알게 될 것”이라며 “현미경 같은 책”이라고 했다. 류이근 전 한겨레 편집국장은 추천사에서 “그는 비판하는 언론을 비판한다”며 “게으름에 빠져 쉽게 기사 쓰지 말라는 경고와 같다”고 했다. 동시에 기자들이 어떻게 기사를 써야할 지 알려주는 길잡이가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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