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전세사기 판 깔아준 셈”…피해자 열에 일곱이 20~30대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열린 전세사기 피해자 2차 설명회에 참석한 피해자들은 사기꾼들이 보증보험의 허점을 악용해 대규모 사기 행각을 벌였다면서 제도를 근본적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작년 11월까지 보증보험 가입 시 시세 산정이 어려운 신축 빌라 등 공시가격의 150%를 집값으로 인정해줬다. 신축 빌라의 공시가격이 2억원이라고 한다면, 3억원까지 시세로 쳐서 HUG가 보증해줬다. 시세 수준으로 전셋값을 높일 여지가 생긴 것이다.
이에 일부 임대인인들은 이런 비율에 맞춰 보증금을 올렸다. HUG 보증보험에 가입 가능하다고 세입자를 안심시키며 매맷값 3억원 주택을 전세 3억원에 내놨다.
이 방식은 집값이 오른다면 크게 문제가 없다. 그러나, 하락기에는 전세보증금이 시세보다 더 높은 ‘깡통전세’ 문제를 야기한다. 깡통전세는 통상 주택담보대출금과 전세보증금을 합친 금액이 주택매매가격의 80%가 넘는 주택을 일컫는다.
주택시장 침체로 인해 주택 가격이 하락해 주택 구매자가 집값 하락과 은행 대출에 대한 이중 부담을 지게 되고, 그 부담을 이기지 못해 은행 대출금 이자를 연체하다가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경우 보증금을 돌려 받지 못하는 세입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문제가 감지되자 국토부는 보증 비율을 140%로 낮췄다.
피해자 A씨는 “HUG에서 시세를 공시가의 150%까지 인정해주며 시세를 조작하게 해준 것 아니냐”며 “전세 사기는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에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성토했다.
국토부는 이달 말 시세 조작이 함부로 일어날 수 없도록 신축 빌라 시세를 제공·확인할 수 있는 ‘안심전세 앱’을 내놓을 예정이다.
시장에서는 140%의 비율도 여전히 높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또다른 전세사기 피해자 B씨는 주택 1139가구를 보유하다가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사망한 ‘빌라왕’ 김모 씨가 임대인 보증보험 가입 의무를 지키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등록임대사업자의 보증보험 가입은 작년 8월 법 개정을 통해 의무화됐지만, 김씨는 자신이 보증보험에 의무 가입하는 등록임대사업자라고 세입자들을 안심시키고는 실제로는 가입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 결과 드러났다.
B씨는 “임대인 보증보험을 가입하지 않은 김씨는 개인 임대사업자 지위로 계속해서 주택을 매매하고 임차 계약을 했다”면서 “명백한 불법인데 왜 나라에서 이걸 놔뒀으며, 제재가 이뤄지지 않았느냐”고 지적했다.
또 다른 피해자들은 국토부, 법무부, 국세청, 경찰청 등 범정부 차원의 피해 대책을 요구했다. 조속한 전세대출금 연장과 불법·탈법 공인중개사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촉구하는 피해자도 있었다.
전세를 사는 도중 임대인이 집을 매도할 경우 임차인에게 먼저 알리고, 임차인이 임대차 계약을 종료할 수 있는 선택권을 줘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경찰청에 수사 의뢰한 전세사기 사건 106건의 피해자 중 30대가 50.9%, 20대가 17.9%를 차지했다. 피해자 열명 중 일곱명이 20~30세대(68.8%)인 셈이다. 40대는 11.3%, 50대는 6.6%를 차지했다.
피해자는 거주 지역은 수도권에 집중됐다. 서울지역 피해자가 52.8%, 인천 34.9%, 경기 11.3%였다.
국토부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법원·법무부 등 관계기관 협의를 통해 전세보증금 반환 절차를 최대한 앞당기겠다고 약속했다.
이날부터 임차보증금 반환 보증보험 가입자에 대해서는 사전심사제도가 도입됐다. 기존에는 임차권 등기가 완료된 후에야 HUG에 대신 보증금을 돌려달라는 보증이행을 청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사전심사를 통해 임차권 등기 이전에도 보증이행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럴 경우 보증금 지급 기간이 1∼2개월가량 단축된다.
정부는 또 임대인이 사망한 경우 임차권 등기 명령을 신청하는데 필요한 여러 절차를 간소화하는 개선작업에 들어가겠다고도 했다.
아울러 피해자들의 전세자금대출 만기 연장과 저리 대출을 지원하기로 했다. 경매가 진행돼 거주할 곳이 없는 피해자들은 우리은행에서 가구당 최대 1억6000만원을 연 1%대 이율로 대출받을 수 있도록 했다.
긴급 임시 거처도 이용할 수 있다. 현재 전세사기 피해자 10가구가 HUG의 강제관리주택에 입주한 상태다.
전세사기 피해 방지를 위해 신축 빌라 시세, 위험 매물 정보 등을 담은 ’안심전세 앱‘을 이달 중 출시될 예정이며, 오는 4월부터 세입자들은 전세 계약 후 임대인 동의가 없어도 임대인이 미납한 국세가 있는지 열람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전세계약 전 세입자가 임대인의 체납 사실과 선순위 보증금 확인을 요청할 때 의무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도록 제도 개선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이달 중 전세사기 피해 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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