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 저녁 뉴스’ 세계에 살고 싶은 중국인들
“중국 병균 덩어리들이 몰려온다!” “전세계의 민폐 바이러스!” “중국발 항공기 전면 금지하라!”
2022년 연말, 중국 방역 전면 해제 뒤 출입국 자유화 조치가 전해지자 관련 뉴스에 달린 댓글들이다. 한국행 비행기표를 검색하며 한껏 부풀어 있던 심장이 금세 쫄아들었다.
2022년 12월26일 밤 11시쯤,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에서 긴급 ‘속보’를 발표했다. 코로나19 명칭을 ‘신형 코로나19 바이러스 폐렴’에서 ‘신형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으로 변경하고 ‘을류 전염병 관리 조치’로 전환한다는 내용이었다. 2023년 1월8일부터는 중국 입국자에 대한 모든 격리와 건강코드 신청 절차가 폐지된다는 ‘빅 뉴스’도 발표됐다. 중국인의 국외 출국과 여행 금지 빗장이 풀리자 전세계 언론은 ‘중국인들이 몰려온다’고 떠들어댔다.
3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병균 취급
중국발 이탈리아 도착 비행기에서 절반 정도의 승객이 코로나19 양성자로 밝혀졌다는 뉴스가 전해지자 인터넷 여론이 발칵 뒤집어졌다. 각국 정부는 속속 중국발 입국자를 규제하기 시작했다. 한국 언론들은 “중국이 3년 만에 빗장을 풀자 전세계가 거꾸로 중국에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시작된 중국에서 다시 전세계를 마비시키는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될 수 있다”는 내용의 보도가 연일 쏟아졌다.
2022년 12월31일, 한국 정부가 ‘중국발 입국자 규제’ 정책을 발표했다는 뉴스 속보가 들려왔다.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세계가 다시 3년 전으로 되돌아간 듯한 기시감이 들었다. 3년 전처럼 중국은 다시 코로나19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포기했다고 보는 게 맞는다), 세계는 그런 중국을 향해 ‘진실과 투명성’을 요구하며 부분적인 빗장을 걸고 있다. 3년 전처럼 수많은 인터넷 악플러가 중국과 중국인을 향해 여전히 ‘병균 덩어리’라는 댓글 공격을 하고 있다. 중국 정부도 자국을 향한 세계의 규제에 “미국 중심의 국가들이 중국을 정치적으로 고립시키려는 음모”라고 으르렁거렸다.
나는 지난 3년간 오매불망 기다리던 ‘희망’이 어쩌면 영영 물 건너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조금 전까지 잔뜩 들떠서 비행기표를 검색하던 나는 갑자기 모든 것이 심드렁해지고 ‘웃기기’ 시작했다. 중국은 그리고 세계는 3년 전과 마찬가지로 단 한 치도 ‘도덕적으로’ 나아진 게 없는 듯했다. 더 나쁜 정치가와 더 악랄해진 악플러만 성장하고 번식했다. 나처럼 아이들과 함께 3년 만에 한국에 갈 수 있게 됐다고 ‘꿈에 부풀어 있던’ 지인이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한국에 가면 ‘중국발 병균 덩어리’ 취급받겠어요. 우린 3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병균 취급을 당하네요. 에휴!”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를 살았던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어제의 세계>에서 “인류가 도덕적으로 향상될 수 있는가 하는 점에서 지극히 회의적”이라고 썼다. 츠바이크는 1942년 2월, 히틀러의 유대인 탄압을 피해 망명지이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근교의 한 산장에서 아내와 동반자살을 했다. 그는 ‘유서’ 말미에 이렇게 썼다. “모든 나의 친구들에게 인사를 보내는 바입니다! 원컨대, 친구 여러분들은 이 길고 어두운 밤 뒤에 아침노을이 마침내 떠오르는 것을 보기를 바랍니다.” 그는 아마도 인류가 도덕적으로 향상될 수 없고 그 때문에 자신은 이 생에서 절대로 아침노을이 떠오르는 걸 볼 수 없으리라고 절망해서 자살했을 것이다. 츠바이크는 자살하기 직전까지 그가 살았던 시대의 모든 ‘자화상’을 담담하게 묘사하는 <어제의 세계>를 썼다.
어떤 것에도 웃을 수 있는 사람들
비행기표 검색을 멈추고 집 근처 798 미술관 거리로 산책하러 갔다. 바람이라도 쐬면 정신을 좀먹는 우울한 ‘병균’이 좀 사라질까 싶어서다. 오랜만에 간 798 미술관 거리에서 우연히 중국 유명 화가 웨민쥔의 전시회를 보게 됐다. 전시회 주제는 ‘행복’(Eudaimonia)이다. 전시회를 보면서 골똘히 생각했다. 웨민쥔은 왜 3년간의 코로나19 방역 정책이 종식된 연말과 새해에 하필 ‘행복’이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열었을까.
웨민쥔은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중국 화가 중 한 명이다. 그를 비롯해 팡리쥔과 장샤오강, 왕광이 등은 1980년대 이후 전세계에 가장 많이 알려진 중국 정치 팝아트 분야의 대표 화가다. 그중 웨민쥔과 팡리쥔은 중국 미술계에서 ‘냉소주의적 현실주의’ 화풍의 개척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웨민쥔과 팡리쥔의 그림에는 공통적으로 ‘대머리 남자’가 등장한다. 두 화가가 그리는 ‘대머리 남자’들의 표정은 확연히 다르다.
웨민쥔의 그림에 단골로 나오는 ‘대머리 남자’들은 친근한 외모로, 모두 다 눈을 질끈 감은 채 입이 찢어져라 활짝 웃고 있다. 팡리쥔이 그린 ‘대머리 남자’들은 건달 냄새를 풍기는 불량스러운 외모로, 대부분 하품하거나 심드렁하고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웃고 있어도 진짜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강요된 억지웃음이거나 (세상을 향한) 냉소에 가까운 조롱을 띠고 있다.
웨민쥔은 자신이 그린, 항상 바보처럼 과장되게 웃는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사람들이 웃는 것을 그린다. 그것이 과장된 큰 웃음이든 절제된 웃음이든, 아니면 미친 듯한 웃음이든 죽을 듯한 웃음이든. 혹은 사회에 대한 비웃음이든. 내 그림 속 사람들은 어떤 것에도 웃을 수 있다. (…) 나는 이들의 웃는 모습을 통해 아무 생각도 없이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며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표현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이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다.”
팡리쥔도 자기 작품 속 ‘대머리 건달’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상실했고 위기에 처했다. 그들은 비정상적 사회에서 모든 게 막막해져서 건달처럼 변한 사람이다. 내가 그린 작품 속 사람들이 비정상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사회와 시대가 비정상적이다. 나는 또한 (천안문 시위 등을 잔인하게 진압한) 그들이 한 일에 결코 동의하지 않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를 통과하면서 중국 사회에 만연한 정치적·사회적 우울감과 비정상적인 세태를 표현하고 싶었던 그들의 작품은 말 그대로 ‘시대의 자화상’이 됐다. 그것은 웨민쥔의 표현대로 ‘이 시대 슬픈 중국인의 자화상’이다.
‘제로 코로나’ 정책 위에 행복한 웃음꽃이 피기를
‘행복’ 전시회를 연 웨민쥔이 2022년 말과 2023년 새해에 표현하고 싶었던 중국인들의 자화상은 무엇이었을까. 그림 속 사람들은 여전히 바보처럼 과장되게 눈을 감은 채 억지로 강요된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하지만 하나 더 추가된 표정은 그들의 얼굴 위로 다양한 꽃이 활짝 피었다는 것이다. 꽃으로 가려진 표정은 우는지 웃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울든지 혹은 억지로 웃든지 그들의 얼굴에는 이제 ‘꽃’이 피어 있다.
웨민쥔은 꽃으로 뒤덮인 새로운 ‘자화상’을 통해 은연중에 과거에 자신이 냉소하고 조소했던 사회·시대와 화해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들이 모두 억지로 강요된 웃음을 짓는 바보가 아니라 정말 꽃처럼 활짝 웃는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3년간 중국 정부의 폭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몸과 마음, 온 영혼에 상처를 입은 중국인들의 슬픈 자화상 위에 한 송이 행복한 웃음꽃이 피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예술에 무지몽매한 나는 혼자서 맘대로 웨민쥔의 그림을 해석했다.
집에 돌아와 다시 비행기표를 검색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중국중앙텔레비전>(CCTV) ‘7시 저녁 뉴스’(新聞聯播)를 봤다. 2022년 마지막 날 ‘7시 저녁 뉴스’와 2023년 새해 첫날 방송된 ‘7시 저녁 뉴스’에 나오는 중국의 모습은 그야말로 지상낙원이었다. 뉴스에 등장하는 중국과 중국인은 모두 다 국가와 민족의 부흥과 발전을 위해 불철주야 분투하고 노력하는 ‘위대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중국 국가주석과 고위 당정 관료들은 항상 인민의 이익을 위해 사심 없이 일하는, 역시나 위대한 인민의 심복들이다.
뉴스 속 세상에는 절대로 중국을 싫어하거나 혐오하는 반중·혐중 인사도 없고 악플러도 없다. 세계인은 모두 중국을 사랑하고 중국 지도자와 중국의 발전을 극찬한다. 나는 갑자기 그 뉴스 속 지상낙원에 들어가 살고 싶어졌다. 중국인들은 마치 가짜뉴스와도 같은 ‘7시 저녁 뉴스’를 보며 자주 이런 농담을 한다. “매일 ‘7시 저녁 뉴스’ 속에서 살고 싶다”고. 또 뉴스 속 세계와는 딴판인 진짜 현실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7시 저녁 뉴스’ 속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비웃는다. ‘7시 저녁 뉴스’에는 ‘우리가 살고 싶은 시대와 세계’가 매일 펼쳐진다.
2012년 광둥성 대학입시 작문 주제는 ‘내가 살고 싶은 시대는…’이다. 매해 대학입시 ‘빵점 작문’ 내용을 공개하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는 그해의 ‘빵점 작문’이 공개돼 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주요 내용이 이렇다. “나는 공민이 법에 따라 자신의 대표를 선출하는 정치적 민주가 보장된 시대에 살고 싶다. 나는 민중이 진정한 언론자유를 누릴 수 있는 시대에. 민중이 알고 싶은 것을 공개적으로 투명하게 알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된 시대에. 뉴스 보도는 있지만 (중국중앙텔레비전에서 전국에 동시 방송되는 ‘저녁 7시 뉴스’처럼) 전국에 똑같은 내용이 보도(聯播)되지 않는 시대에. 민중이 무엇을 봐야 하고 무엇을 보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하는 정부 부처가 없는 시대에. 민중이 자신이 좋아하는 문화와 오락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된 시대에 살고 싶다.”
전국에 똑같은 내용이 보도되지 않는 시대
나도 새해에 새로운 소망이 하나 생겼다. ‘저녁 7시 뉴스’ 속 세계에 살고 싶다는 소망이다. 그곳에선 더 이상 ‘중국발 병균 덩어리’ 취급을 안 당해도 되고,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언어로 국민을 기만하고 속이는 ‘나쁜 정치인’도 영원히 볼 수 없으며, 얼굴에는 항상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는 진심으로 ‘행복한’ 사람들과 영원히 같이 살 수 있을 것이다. 새해에 나는 그런 세계에서 살고 싶다.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박현숙의 북경만보: 베이징에 거주하는 박현숙씨가 중국의 숨은 또는 드러나지 않은 기억과 사고를 읽는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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