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자 쇄담] 호주오픈하면 생각나는 남자
그의 복귀를 기다린다
[쇄담(瑣談) : 자질구레한 이야기]
시즌 첫 테니스 메이저 대회인 호주오픈이 오는 16일부터 약 2주간의 열전에 돌입한다.
호주오픈은 공교롭게도 한국에선 설 명절에 걸쳐 개최돼 유독 주목을 받는다. 가족 중에 테니스를 좋아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설 모임 때 ‘호주오픈’이 언급될 가능성이 높다.
5년 전에 호주오픈은 가족 모임뿐만 아니라 온 나라를 들썩이게 했다. 호주오픈하면 유독 떠오르는 남자 정현(27) 때문이다.
◇기죽지 않았던 청춘
5년 전 1월 25일자 본지 1면엔 “당당한 22세 정현에 빠져들다”라는 기사가 실렸다.
정현이 2018년 1월 24일에 한국인 최초로 테니스 메이저 대회(호주오픈·프랑스오픈·윔블던·US오픈) 단식 4강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정현 이전의 최고 기록은 이형택(47)의 2000년 및 2007년 US오픈 16강 진출이었다.
비록 정현은 4강전에서 지난해 은퇴한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42)에게 발바닥 물집 부상으로 인해 기권패했지만, 그는 당시 한국에 ‘정현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다. 세계 강호를 만나도 기죽지 않고, 20대 청년이 가진 패기와 당당함을 전 세계에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때 20대들은 “왜 스포츠 스타가 ‘국민 영웅’이 될 수 있는지 실감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16강에선 여전히 세계 최고의 테니스 선수로 군림하고 있는 노바크 조코비치(36·세르비아·세계 5위)를 격파했는데, 이는 아직까지도 조코비치가 호주오픈에서 경험한 마지막 패배다. 조코비치는 이후 2019~2021년 3년 연속 호주오픈 정상에 올랐고, 2022년엔 백신 미접종 문제로 대회에 아예 출전을 하지 못했다. 이번 호주오픈에서 통산 10회 우승에 도전한다.
개인 스포츠로서 세계적 인기를 누리는 테니스에서 정현이 이때 한국에 불러일으킨 반향은 그 어떤 이벤트보다도 컸다. 2018년 4월에 그는 세계 19위까지 오르는 등 한국 테니스 역사를 새로 썼다.
◇부상 악몽에 신음
2014 인천 아시안게임 테니스 남자 복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병역도 해결됐던 그의 커리어는 이제 막 상승세를 타는 듯 했다. 하지만 정현은 부상이라는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2019년부터 정현은 고질적인 허리 부상에 신음하며 대회 출전에 어려움을 겪었다. 대회 출전이 적으니 세계 랭킹은 자연스럽게 내려앉았다.
정현은 지난 2020년 9월 프랑스오픈 남자 단식 예선 2라운드 패배 이후 허리 부상 치료 및 재활 훈련에 전념해 약 2년 동안 공식 출전 기록이 없었다.
그런 그가 지난해 9월 약 2년 만에 코트에 다시 섰다. 당시 정현은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남자 프로테니스(ATP) 투어 유진투자증권 코리아오픈에서 권순우(26·당진시청·세계 84위)와 짝을 이뤄 복식에 출격했다. 이때 그는 몸 상태에 대해서 “지난 2년 동안 재활만 했던 것은 아니고 복귀를 시도했다가 다시 허리 통증이 재발해 계속 (복귀가) 미뤄졌다”며 “지금은 일단 연습 때는 아팠던 곳이 없었지만, 실전에선 또 어떨지 모르겠다”고 조심스러워했다.
둘은 대회 준결승전까지 오르는 등 선전했다. 정현은 이후 컨디션에 따라 챌린저 대회 단식에 출전하겠다고 했다. 챌린저는 ATP 투어보다 한 단계 낮은 등급의 대회다. 그러나 그는 이후 훈련 도중 허리 통증이 재발해 출전 계획을 철회했고, 그렇게 2022시즌을 마쳤다.
◇정현의 근황
현재 정현은 사실상 ‘비활동(Inactive) 선수’로 분류돼 단식 세계 랭킹이 없다.
한 테니스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정현은 독일에서 재활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독일엔 여러 유수의 재활 훈련 센터가 있는데, 이는 정현의 복귀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다가오는 호주오픈 본선에 출전하는 한국인 선수는 정현과 작년에 짝을 이뤄 복식에 출전했던 권순우가 유일하다.
5년 전 호주오픈에서 세계를 놀라게 했던 정현의 건강한 복귀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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