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클릭하기] 영매로서의 언론, 그물로서의 언론

홍성일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2023. 1. 14.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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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형의 분석대상은 <한겨레 21> 의 심층탐사보도 "노동OTL" 연작 기사였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당시 기자들은 안산 공단, 마석 가구공단, 고깃집, 대형마트에 한 달 가량 취업해서 비정규직 빈곤 노동자의 삶을 경험하고 채집해 기사화하였다.

현장은 구체적이었고, 구체는 다양한 관계와 층위의 교차로였으며, 현장을 입체적으로 기술하기 위해 기자들은 관습적 글쓰기에서 탈피해 생생한 내러티브를 기사 안에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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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홍성일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최근 읽은 두 편의 논문은 경희대 이기형 교수의 <“현장” 혹은 “민속지학적 저널리즘”과 내러티브의 재발견 그리고 미디어 생산자 연구의 함의“>(2010)와 숙명여대 박사과정 임소현이 석사학위 논문을 정리하여 지도교수 양승찬과 함께 쓴 <한국 기자들의 '현장' 의미 인식에 대한 탐색적 연구>(2022)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두 논문 모두 '저널리스트에게 현장이란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살폈는데, 사뭇 다른 연구 결과를 보여준다.

이기형의 분석대상은 <한겨레 21>의 심층탐사보도 “노동OTL” 연작 기사였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당시 기자들은 안산 공단, 마석 가구공단, 고깃집, 대형마트에 한 달 가량 취업해서 비정규직 빈곤 노동자의 삶을 경험하고 채집해 기사화하였다. 이렇게 공들여 나온 기사는 여느 사회면 노동 관련 기사와는 질적으로 달랐다. 현장은 구체적이었고, 구체는 다양한 관계와 층위의 교차로였으며, 현장을 입체적으로 기술하기 위해 기자들은 관습적 글쓰기에서 탈피해 생생한 내러티브를 기사 안에 부여했다. 상상력을 더하자면, 현장에 사로잡힌 기자는 일종의 영매에 가까웠다. 현장을 담기위해 스스로를 비우고 카멜레온처럼 유연하게 자신의 색깔을 바꿔내야만 했다.

▲ 한겨레21의 '노동OTL' 시리즈 표지.

반면, 임소현·양승찬이 밝힌 기자들의 현장 인식은 이기형의 연구와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이들은 다수의 신문 기자와 인터넷 매체 기자에게 그들에게 현장이 어떤 의미를 갖느냐고 직접 물었는데, 답변 중 흥미로운 부분은 “사실성의 망”으로 유목화된, “기자들이 기사를 사실로써 보이게 하도록 하는 일련의 과정이 구축된 환경”이다. 주요 인터뷰이와 만날 때까지 버티는 “뻗치기”의 장소, 수많은 정보들을 수집·교차할 수 있는 출입처나 기자실, 전문가나 책임자의 “워딩”을 따올 수 있는 곳이 기자들이 떠올린 현장이었다. 물론 사건이 목격되는 곳, 단독과 특종이 발견되는 곳 역시 현장으로 답해지지만 관례화된 매체 관행 속에서 현장은 기자들이 미리 그린 추상 안으로 사실이 보강되고 확인되는 사후적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기자는 냉정한 수집가에 가깝다. 자신의 그림에 맞는 것들을 선별하는 감식안과 숙련된 직업관행이 기사에 현장성을 부여한다. 언제든지 사실을 잘 걷어 올리기 위해 부단히 그물을 손보아야 할 것이다.

영매와 수집가의 차이는 주간지와 일간지라는 매체 차이에도 기인한다. 매일 기사를 쓰는 일간지 기자가 현장에 사로잡혀 마감이 지연되면 그 또한 문제이고 주간지 기자가 사실 확인 나열만으로 긴 지면을 채울 수는 없을 노릇이다. 그럼에도 현장을 도구로 다룰 것인지 목적으로 다룰 것인지의 차이는 결정적이다. 말끔한 기사를 위해 도구화된 현장은 그 자체로 비현실적이다. 기자들이 구축한 “사실성의 망”은 대체로 현실에 힘을 발휘하는 힘 있는 사람들에게 향하는 바, 사회적 약자, 소수자, 비주류에게는 펼쳐지기 어렵다. 반면 현장이 목적이 될 때 기자들은 감당 불가능한 주변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대개의 현장은 불협화음으로 가득하다. 다양한 이해관계와 역사와 욕망들이 교차하는 현장은 상식적 현장의 개념을 붕괴시키는 초현실의 공간이다.

▲ 1월2일 오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들이 서울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승강장에서 지하철 탑승 시위를 벌이기 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1월2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탑승시위로 4호선 삼각지역에 큰 소란이 있었다는 보도를 접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현장에 내가 있었다. 아침 출근길부터 지상 도로와 지하 역사를 빼곡히 채운 중무장 경찰들을 마주했고 그들이 뿜어내는 위압감은 공포로 다가왔다. 지하철 무정차 통과를 반복적으로 알리고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라는 역 안내 방송은 흡사 전시상황을 방불케 했다. 하루 종일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팽배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대개의 보도는 무미건조하다. 당일 고지된 서울교통공사의 '불법시위'로 인한 무정차 통과 안전 안내 문자처럼 말이다. 비현실적인 보도 앞에서 초현실적인 현장이 감춰진다. 그렇게 말끔하게 마감된 현실이 누구를 위한 것일지 궁금하다. 그래서 다들 평안하신지. 이게 우리 언론의 최선인지 따지고픈 2023년 1월2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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