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에도 출근하는데, 수당 한 푼 받은 적 없어”
"근로계약 편법 쓰거나 대놓고 안 지키는 경우도”
“매년 설 연휴에 출근해 일했지만, 회사에서 수당 한 푼 받은 적이 없습니다.”
소규모 제조업체에 다니는 직장인 A씨의 하소연이다. 공휴일이나 명절, 연휴 출근도 다반사이지만 휴일근로수당은 그림의 떡이다. 단순 노무직인 그의 월급은 실수령액 기준 200만 원 미만이다. 평일에도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근로시간(오전 9시~오후 6시) 초과는 태반이었지만 연장·야간근로수당을 받아본 기억은 없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쉬는 명절에 일하면서도 이에 상응한 대가를 받지 못한 셈이다.
정부는 지난 2020년부터 관공서의 공휴일을 근로기준법상 유급휴일로 정한 개정 근로기준법을 시행해왔다. 공휴일 유급휴일은 개정 근로기준법 시행령에 따라 근로자 수 기준 △2020년 300인 이상 △2021년 30~299인 △2022년 5~29인 사업장으로 적용 범위를 넓혀왔다. 해당 사업장에서 근로자가 공휴일이나 대체공휴일에 근무하면, 사업주는 1일 8시간 이내는 50%, 8시간 초과는 100%의 휴일근로수당을 포함한 임금을 추가 지급해야 한다.
그럼에도 A씨가 이 법의 적용을 받지 못한 이유는 뭘까. 그의 사업장 근로자가 3명뿐이라는 데 힌트가 있다. 5인 미만 사업장이어서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아닌 것이다. 평일에도 ‘더 일하고 덜 받는’ 근로조건에 놓인 이들이 남들 다 쉬는 공휴일에 더 열악한 근로조건을 감당하는 '사각지대'에 놓인 셈이다.
"5인 이상 사업장인데도 유급휴일수당 안 줘"... 비밀은?
하지만 5인 이상 사업장이라고 해서 다 공휴일 유급휴일을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택배회사 지사에서 근무 중인 B씨는 해당 택배사 전체가 공휴일엔 쉬기 때문에 이번 설 연휴에도 일하지 않는다. 하지만 B씨가 일하는 택배지사는 공휴일에 근로자들이 연차를 쓴 것으로 처리해, 유급휴일수당을 주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사업주는 노동법 위반 대상이 아니다. 이 회사의 근로계약 형태 때문이다. 이 회사에서 정식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는 3명뿐이다. 나머지 근로자의 고용형태는 프리랜서다. 사업주가 사실상 편법을 써 근로기준법 적용이 되지 않도록 해 공휴일 유급휴일 적용을 회피한 것이다.
사업주가 대놓고 공휴일 유급휴일을 지키지 않는데도 근로자들이 이를 문제 삼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개정 근로기준법 시행령의 공휴일 유급휴일 규정을 잘 모르고 있어서다. 식품 회사 직원인 C씨는 회사에서 근로자들이 공휴일에 연차를 쓴 것으로 처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최근 알게 됐다. 이 회사는 근로자가 연차를 모두 소진한 경우, 다음 해 연차를 당겨서 공휴일에 연차를 쓴 것으로 처리하는 일까지 벌이고 있다.
하지만 C씨보다 입사가 빠른 이 회사 근로자들은 아무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2020년부터 확대 시행해온 공휴일 유급휴일을 적용받는다는 사실을 잘 몰랐기 때문이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 보호받지 못한다’는 법언에 해당하는 경우다.
설 연휴 일하고도... 휴일근로수당 못 받는 직장인이 더 많아
이처럼 근로현장에서 지켜져야 할 공휴일 유급휴일의 빈번한 비준수 사례는 최근 나온 설문조사에서도 확인된다. 노동인권단체인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에 의뢰해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9월 2~8일 온라인으로 실시한 ‘직장인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법정 공휴일에 유급휴일로 쉬고 있다’는 응답은 전체의 63.6%에 그쳤다. 그 외에는 ‘평일과 동등하게 일하고 있다'(휴일근로수당 불지급)는 응답(22.2%)이 ‘근무하지만 휴일근로수당을 받고 있다’는 응답(14.2%)보다 훨씬 많았다.
정규직보단 비정규직이 더했다. 일용직의 경우 ‘평일과 동등하게 일하고 있다’(휴일근로수당 불지급)는 응답이 64.6%로, 정규직을 의미하는 상용직(7.3%)보다 8배 이상 많았다. 프리랜서와 아르바이트 시간제 근로자는 절반가량(각각 52.2%, 46.1%)이 이같이 답했다. 임시직(23.6%), 파견용역(16.7%)이 그 뒤를 이었다. 근로조건이 열악한 쪽이 ‘더 일하고 덜 받는’ 모순이 공휴일에 더 극명해지는 셈이다.
하지만 이들은 지방고용노동청 신고 등 적극적인 문제 제기로 권리구제를 받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보인다.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의 공휴일 유급휴일 정책 인지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 조사에서 일용직, 프리랜서, 아르바이트 근로자의 절반가량(각각 56.3%, 50.7%, 47.8%)이 관련 정책을 ‘모르고 있다’고 답했다. 파견용역, 임시직이 이 같은 응답을 한 경우도 각각 41.7%, 39.3%로 높은 편이었다. 반면 상용직은 3명 가운데 1명 정도(31.7%)만 이같이 답했다.
직급 낮을수록 "공휴일 유급휴일 몰라"... "인지도 제고, 시행령 개정해야"
직급이 낮을수록 공휴일 유급휴일 정책 인지도도 떨어졌다. 이 조사에서 일반사원급, 실무자급은 각각 43.4%, 36.1%가 공휴일 유급휴일 정책을 ‘모르고 있다’고 응답했다. 반면 중간관리자급, 상위관리자급은 각각 32.3%, 26.5%만 이같이 답했다.
노동계는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근로기준법 시행령 개정으로 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공휴일 유급휴일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근로기준법이 5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된다고 해도, 이는 상위법인 헌법상 기본권에 해당한다는 논리다. 헌법 32조 3항은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고용노동부가 근로자와 사업주의 공휴일 유급휴일 정책 인지도를 적극 제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국가가 지정한 공휴일과 관련해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명백한 차별을 받고 있다”며 “헌법이 규정한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근로조건을 만들려면, 당장이라도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근로기준법 시행령을 개정해 공휴일 유급휴일을 5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은 이어 “이를 알고도 지키지 않는 사업장도 많기 때문에 고용노동부는 관련 근로감독을 강화해야 하고, 노동자가 공휴일 유급휴일 정책을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정책 인지도를 높이는 데도 힘을 쏟아야 한다”고 했다.
김청환 기자 ch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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