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민·현빈 '교섭', 국민 지켜야 할 공무원의 자세에 대해 묻다(종합)[Oh!쎈 리뷰]
[OSEN=김보라 기자] “테러 집단과 같은 테이블에 앉는 것은 외교에서 최악의 패를 보여주는 거다.” 아프가니스탄에 단체 입국한 한국의 선교단 23명이 탈레반 무장단체의 인질이 되는 극한의 피랍사건이 발생하지만, 외교관 재호(황정민 분)는 테러범들과의 대면 협상은 절대 없다는 입장을 확고히 한다.
반면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국가 사정에 능통한 국정원 요원 대식(현빈 분)은 기본적인 규칙과 법칙에 따르기보다 어떠한 방법을 쓰든 지금 당장 대한민국 국민의 목숨을 구하는 게 먼저라는 주장을 내세우며 크게 대립한다.(※이 기사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두 공무원은 사건을 해결하려는 방식에서 평행선을 달리며 갈등하지만,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에 있어서 서로의 도움을 받으며 점차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기존의 가치와 이념을 고수한 명분적인 삶을 살아야할지, 아니면 가변적 상황에 따라 개인과 자국의 실리에 기반한 선택을 해야할지 깊이 생각해보게 만든다.
임순례 감독의 ‘교섭’(제공배급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작 영화사 수박·원테이크 필름)은 최악의 피랍사건으로 탈레반의 인질이 된 한국인들을 구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한 외교관 재호와 현지 국정원 요원 대식의 교섭 작전을 그린 영화.
코로나가 전세계적으로 크게 유행했을 초기 단계인 2020년 여름 요르단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코로나 팬데믹 사태 이후 해외 촬영에 나선 첫 번째 한국영화로서 제작단계부터 높은 관심을 모았던 바. 어려운 상황에서도 요르단 촬영을 진행했기에 국내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경이로운 풍경을 스크린에 담았다. 스마트폰이나 TV로는 느낄 수 없는 압도적 풍광이어서 극장 관람을 추천한다.
임순례 감독이 영화 ‘리틀 포레스트’(2018) 이후 5년 만에 선보이게 된 ‘교섭’은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 선교 활동을 하러 떠났던 23명의 교인들이 아프가니스탄 무장단체 탈레반에 피랍됐던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삼은 작품이다. 당시 무장세력에 피랍된 23명은 개종 목적의 선교가 아니라 의료 봉사에 나선 이들이었다고 하지만, 해외 위험지역에 선교를 하러 갔다는 사실만으로도 일부 기독교인을 향한 비판은 피할 수 없었다. 영화 속 피랍인들과 재호·대식·카심(강기영 분) 등 주요 인물들은 감독이 사실을 기반으로 상상을 발휘해 창조한 캐릭터다.
영화는 2001년 발생한 9·11 테러 사건과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보복성 공격, 그리고 지속적으로 자살테러와 게릴라전을 벌이는 탈레반에 대한 배경을 설명하면서 시작한다. 서사는 단순하고 복잡하지 않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자살폭탄 테러의 한복판에 내던져진 느낌을 안긴다.
극단적인 무슬림들이 사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선교 및 봉사활동을 하겠다는 기독교인들이 무모하게 입성하면서 벌어진 사건을 영화의 소재로 삼았지만, 스토리를 종교 간의 대립으로 풀어내지는 않았고 국민을 위해 맡은 바 업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하는 공무원의 의무와 책임감, 선택에 대해 이야기했다.
외교부 소속 정재호 실장은 원래 규칙 안에서만 움직이는 원칙주의자다. 이에 초반엔 자국민을 구하는 데 매뉴얼을 중시하지만 결국 그 무엇보다 인간의 생명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어떻게 해서든 납치된 사람들을 구하려고 애쓴다. 비록 그들이 스스로의 선택으로 억류되는 위기에 처했더라도 사람의 목숨은 소중하다고 믿는다.
‘교섭’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당연히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하고, 그들을 위기에서 구출해내야 할 책임은 정부, 공무원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재호와 대식 캐릭터를 통해 강조한다.
외교관으로 변신한 황정민은 진중하면서도 용기 있는 얼굴을 보여주며 변신을 꾀했다. 캐릭터를 위해 비주얼에 변화를 준 현빈의 자동차 액션과 바이크의 날렵한 움직임이 이룬 액션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한층 더했다.
강기영은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 속에서도 평정심과 여유를 잃지 않은 대조적인 모습을 유연하게 그렸다. 배우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매력을 증명했다. 또한 몸에 폭탄을 단 이슬람인들의 극단적 테러는 보는 이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으며 압도적인 스케일을 실감케 한다.
‘교섭’은 액션부터 스토리까지 긴장과 평정심을 넘나들며 설 연휴 대목에 개봉하는 상업영화의 균형감을 잃지 않았다. 상업영화치고는 비교적 짧은 러닝타임과 인상적인 설정들로 가득 채웠음에도 과하다는 느낌은 없다. 다만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막상 깔끔하게 떨어지는 여운과 감동, 카타르시스는 크지 않다.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 ‘남쪽으로 튀어’(2013), ‘제보자’(2014), ‘리틀 포레스트’(2018) 등의 영화를 연출해 온 임순례 감독의 신작이다. 황정민은 ‘와이키키 브라더스’ 이후 임 감독과 20여 년 만에 재회해 호흡을 완성했다.
1월 18일 극장 개봉. 러닝타임 1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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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영화 포스터, 스틸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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