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손 내미니 고개까지 숙이라"…한일관계 누가 방치?

박상진 기자 2023. 1. 14.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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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 사이의 최대 현안이라고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와 관련한 토론회가 지난 11일 열렸다. 당초 토론회는 한일의원연맹과 외교부가 공동 주최로 진행한다고 했지만 야당 소속 의원들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하고 한일의원연맹 회장인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실과의 공동 개최로 변경됐다. 외교부의 무성의한 대응에 항의한다며 피해자 지원단체는 불참을 선언하기도 했다. 시작 전부터 적지 않은 진통을 겪고 제대로 된 모양새도 갖추지 못한 채 토론회는 진행됐다.
 

"한국기업 기부로 한국 재단이 배상"


토론 참석자로 나온 서민정 외교부 아태국장이 발표한 내용 등을 보면 그동안 언론에서 지속적으로 다뤄 온 일제강제동원피해자재단이 한일기업의 기부를 받아 피해자에게 대신 배상하는 '병존적 채무 변제' 방식이 거의 유력한 방안으로 보인다. 피해자지원재단은 일본 기업의 기부 없이 포스코 등 한국 기업이 우선 기부한 돈으로 피해자들에게 변제를 하게 될 것이다. 외교부는 일본에 이른바 '성의 있는 호응'을 계속 요청한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일본의 입장이 변화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외교부는 한국은 물론 일본 기업의 기부를 요구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일본 원고 기업들이 자신들 마음대로 기부를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사과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자신들이 벌여 온 담화 수준을 계승한다는 것 이상을 요구하는 것은 못 한다는 것이다.
 

외교부 "일본 정부 변했다"…무엇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일본 정부와 협의를 벌여온 우리 외교부 당국자들은 하나같이 문재인 정권 때에 비해 일본 정부가 변하고 있다는 점을 언론에 적극 어필해 왔다. 그전까지는 "모든 해결책은 한국에 있다"며 응대하지 않던 일본 정부가 더 이상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거나, 일본이 한국의 관계 개선 움직임을 긍정적으로 보고 진지하게 협의에 임하고 있다는 점을 기자들을 만날 때마다 이야기했다. 일견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일본이 한국의 관계 개선 의지를 인정하는 것과 정부 입장을 바꾼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우리 정부가 보인 적극적 모습에 대한 일본의 오모테나시(御持て成し, 손님을 환대하는 일본 특유의 관습)를 착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실제 이번 토론회에서 나온 정부 방안에 대해서도 일본 외무성은 기존 원칙을 고수하며 관망하는 수준 정도에 머물고 있다.
 

"위안부 합의 무효화…강한 불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사진=AP, 연합뉴스)

일본 정부의 이런 완강한 자세는 한국 정부에 대한 깊은 불신감에 자리하고 있다. 지난 2015년 이뤄진 위안부 합의가 사실상 무효화된 것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당시 외무상으로 합의를 주도하고 한국에 와서 합의문을 직접 발표하기도 한 기시다 총리는 이번에도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정치 생명 자체가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있다. 정권 지지율도 40%대를 넘지 못하고 있고 자신의 파벌(기시다파)이 여당 내에서 큰 힘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한일관계에서 소극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입장은 한편으로 이해가 가는 부분이지만 어디까지 한국 정부가 굽히고 들어와야 일본 정부는 움직일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일본, 한국이 내민 손 잡아야"


기시다 정권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한국 정부는 이번에 내놓은 강제동원 피해자 해결 방안이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다. 국내 여론이 좋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외교부 등은 국민들에게 욕먹을 것을 알면서도 피해자들의 나이 문제는 물론 한일 관계 방치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이런 방안을 내놓았다고 말한다. (실제 이 부분은 다시 한번 다뤄야 할 문제다) 적어도 한국의 민주화 이후 일본에 이렇게 우호적인 정권은 없었다고 본다. 일본에 있어서도 경색된 한일 관계를 풀 좋은 기회라는 이야기다. 상대가 내민 손은 안 잡으면서 손 말고 고개를 숙이라고 하면 손을 내민 사람만 어색한 상황이 된다. 그 이후 두 사람 사이가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은 뻔한 이야기 아닌가.

박상진 기자nji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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