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속 지급된 한전 성과급은 정말 그들의 인건비일까
한전도 모르는 경영평가성과급 재원
1985년 두배 넘게 올린 상여금이 근간
성과급 조성할 때 불용예산도 활용해
정부보조금과 간접 지원 받는 한전
대규모 적자에도 인건비 타령
"공기업의 성과급 재원은 인건비에서 떼어낸 것이다." 실적이 좋지 않은 공기업이 성과급을 받아도 되느냐는 비판에 직면할 때면 늘 등장하는 반박입니다. 30조원이 넘는 영업적자(2022년 실적 전망치)가 예상되는 한국전력공사를 둘러싸고 '경영평가성과급을 지급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나오자 역시나 같은 반박이 나옵니다. 그럼 이 주장은 사실일까요? 더스쿠프가 그 근거를 캐봤습니다.
"적자가 쌓이는데도 한전은 성과급을 챙겼다." 이런 비판만 나오면 한전 직원들은 이렇게 반박합니다. "당연히 받아야 할 돈을 경영평가성과급이라는 명목으로 받는 것뿐이다." 한전 내부의 이런 주장은 과연 사실일까요?
■ 성과급은 고정급인가 = 답을 찾기 위해 한전 성과급의 구조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한전 성과급의 명칭은 두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한전 내부에서 진행하는 성과평가를 통해 차등 지급하는 '내부평가급(기본급의 200%ㆍ자체성과급)', 다른 하나는 정부 경영평가를 통해 차등 지급하는 '경영평가성과급(기본급의 300%)'입니다. 경영평가에서 D등급이나 E등급을 받으면 경영평가성과급은 못 받습니다.
예산을 편성할 때는 기획재정부의 지침을 따라야 합니다. 이 지침을 근거로 한전은 자체 재원의 일부를 기본급과 각종 수당, 내부평가급, 경영평가성과급 등 인건비 예산으로 책정합니다. 여기서 경영평가성과급 은 '예비비'로 분류합니다. 왜일까요.
예비비는 '예측할 수 없는 예산지출로 인한 부족을 충당하기 위한 것'이고, 성과는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예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정급이 아니라는 얘기죠. 내부평가급도 원래는 예비비였지만 지금은 '내부평가급' 예산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고정급이 아닙니다.
■ 성과급 재원 미스터리 = 그럼 한전 성과급의 재원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예산 지침을 제공하는 기재부 측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정부투자기관(정부가 50% 이상 출자한 한전과 같은 공기업)의 성과급 500% 중 200%(내부평가급)는 자체 인건비 예산에서 전환한 것이고, 300%(경영평가성과급)는 기존에 고정적으로 받던 성과급 재원 일부가 포함돼 있다."[※참고: 일반적인 비율은 내부평가급과 경영평가성과급이 각각 250%입니다.]
하지만 '자체 인건비' 예산의 어떤 항목이 내부평가급으로 전환됐는지, '고정적으로 받던 성과급'이 무엇인지, 얼마만큼의 재원이 '고정적으로 받던 성과급'이었는지, 나머지 재원은 또 어디서 가져온 것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기재부 관계자는 "너무 오래된 일이고, 기관마다 달라서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건 한전 측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전 관계자는 "500%의 성과급 중 200%에 속하는 내부평가급이 인건비에서 전환됐다는 건 한전의 공식 입장이지만, 300%에 속하는 경영평가성과급의 재원이 직원 인건비에서 나왔다는 건 한전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면서 "너무 오래된 일이어서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기재부와 한전의 말을 종합하면 '내부평가급 재원은 기존의 상여금과 같은 인건비에서 나온 게 맞지만, 경영평가성과급 재원은 정확히 어디서 나온 것인지 모른다'는 겁니다.
심지어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성과연봉제나 경영평가제도를 연구하는 학자들조차 성과급의 재원에 관해 정확하게 알고 있는 이가 거의 없습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출신의 한 대학 교수는 "공공기관 성과급 재원에 관한 연구도, 이를 연구하는 학자도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지금껏 수많은 언론이 "한전 성과급 재원은 인건비에서 떼어낸 것"이라는 기재부와 한전 직원들의 주장을 받아들였지만 사실 그 근거는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성과급 500% 기준선 = 자! 이쯤에서 그 근거를 하나씩 따져볼까요?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경영평가제도는 '공공기관운영에관한법률'이 제정된 이후인 2008년에 자리 잡았습니다. 그래서인지 2008년 기재부 예산편성 지침에는 이미 경영평가를 받던 정부투자기관을 제외한 공기업과 공공기관들의 재원 마련 방안이 적혀 있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공기업 직원의 경영평가성과급 재원은 한도액의 2분의 1을 기존 인건비에서 전환해 인센티브 예비비에 계상한다. 자체성과급이 있는 기관은 자체성과급 재원에서 우선 전환한다. … (경영평가성과급 재원의) 부족분은 자체수입 초과달성, 경상경비 절감, 인력 감축 등 경영개선으로 발생한 여유 재원 또는 기타 불용예산을 전용할 수 있다."
이 내용은 "(경영평가)성과급 재원은 우리 인건비에서 나왔다"고 하는 한전 직원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잠시 '(경영평가성과급 재원의) 부족분은 여유재원이나 기타 불용예산을 전용할 수 있다'는 부분만 기억하고, 다음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조세재정연구원이 2010년 발간한 '공공기관 경영평가제도 변천과정 연구'라는 연구보고서를 보실까요.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가 공기업과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경영실적에 따른 인센티브를 지급하기로 한 건 꽤 오래전인 1973년부터입니다. 당시 경영성과에 따라 기본급의 200% 이내에서 상여금을 지급하기로 했는데, 실제로는 경영성과와는 무관하게 거의 모든 기관이 200%를 받았습니다.
그러다 1985년부터 공통의 기본상여금을 지급하면서 지급률에 차등을 뒀는데, 그 과정에서 기본상여금을 상향 조정하고, 전체 상여금의 상한 역시 500%로 조정했습니다. 현재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성과급 비율이 500%인 이유입니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한 사실을 담고 있습니다. 성과급에 차등을 두면 어떻게 될까요. 어떤 직원은 기존엔 아무렇지 않게 받았던 성과급을 덜 받는 일이 생길 겁니다. 연봉이 줄어들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거죠.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정부는 사실상 다음과 같은 배려를 해줬습니다. '전체 성과급을 200%에서 500%로 인상해주고, 그 안에서 차등이 생기도록 했다.' 성과급 예산 자체를 늘렸다는 건데, 그래서 '내부평가급' 200%, 경영성과평가급 300%란 체제가 갖춰진 겁니다.
결과적으로 공기업과 공공기관들은 정부 방침에 따라 기본상여금 예산을 기존의 두배로 늘린 후, 거기서 경영평가성과급 재원을 마련했습니다. 받던 것은 그대로 받고 '더 받을 수 있는 근간'이 생긴 겁니다.
경영성과평가급 300%가 '인건비'에서만 나온 것도 아닙니다. 앞서 언급했듯, 경영평가성과급 재원이 부족하면 '여유재원이나 기타 불용예산'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경영평가성과급 차등 지급을 두고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직원들이 반발했다는 기사를 찾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혹자는 이런 주장도 합니다. "어찌 됐든 성과급 예산은 한전 자체 재원이다. 정부에서 보조해주는 건 없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한전은 간혹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기도 하고, 한전 채권 매입 등 간접 지원도 받습니다.
한전은 2020년 1188억원, 2021년 1396억원의 정부보조금을 받았습니다. 최근 채권시장이 얼어붙자 정부는 금융회사에 한전 채권 매입을 적극 독려하기도 했죠. 성과급 예산이 한전 자체 재원이니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라는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얘기죠.
상여금 올려주고 성과급 재원 마련
누군가는 또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한전이 민영화해서 흑자를 많이 내면 성과급을 많이 가져가도 되는 것이냐?" 하지만 모든 기업이 흑자를 낸다고 성과급을 지급하는 게 아닙니다. 경영진 입장에선 성과급이 근로계약서에 명시돼 있지 않다면 성과급은 줘도 그만 안 줘도 그만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한전 임직원들은 약간의 흑자를 내도, 심지어 적자를 내도 줄기차게 성과급을 받아갔습니다. '자신들의 인건비를 받아가는 것'이란 부실한 근거를 내세우면서 말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지금과 같은 대규모 적자 시기에 '내 돈이니 양보할 수 없다'는 주장이 과연 타당한지 검증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한전만의 문제가 아니라 공기업과 공공기관 모두의 문제입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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