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이 권하는 세상, 정치 양극화에 빠지다
<시사기획 창>(한국방송1)은 신년기획으로 2부작 다큐멘터리 <알고리즘 인류>를 방송했다. 1부 ‘현실을 삼키다’ 편에선 중독경제의 실상을 다루었고, 2부 ‘민주주의가 위험하다’에서는 정치 양극화를 다루었다.
1부는 소셜미디어(SNS)에 긴 시간을 보내는 일상을 비추며 시작한다. 한해 온라인쇼핑 규모가 200조원에 이른다. 온라인쇼핑이 이처럼 급성장한 것은 소비자 개인의 특성을 정교하게 파악해 끈질기게 달라붙는 광고 덕분이다. 플랫폼과 앱은 사용자가 더 많은 시간을 머물게끔 설계되어 있다. 유튜브는 한번 관심을 보인 영상과 관련 있는 영상을 끊임없이 추천한다. 그 속에서 발생하는 광고, 구독, 판매 등의 수익은 고스란히 빅테크 기업의 몫이다. 김병규 교수의 책 <호모 아딕투스>에서 설명하듯, 20세기 초는 제품을 만드는 기술이 귀해서 물건을 만들면 팔리던 제품경제의 시대였다. 20세기 후반은 생산기술이 흔해지고 소비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경쟁했던 관심경제의 시대였다. 지금은 소비자에게 디지털 중독을 일으켜 돈을 버는 중독경제의 시대다. 여기서 중독은 단지 비유가 아니다. 뇌에는 보상을 받을 때 활성화되는 보상회로가 있어서 자극을 받으면 쾌감을 느끼고, 그 자극을 다시 얻고자 한다. 보통 보상회로 자극에는 시간과 노력이 들지만, 스마트폰은 아주 쉽게 자극을 주어 중독을 일으킨다.
왜 스마트폰 사용이 보상회로를 자극할까. 스탠퍼드대 의대 중독치료센터 소장이자 <도파민네이션>의 저자인 애나 렘키는 말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서로 공감하고 소통할 때 즐거움을 느끼도록 진화되었고, 소셜미디어를 통한 공감과 소통도 뇌에서 도파민을 분비시켜 중독을 일으킨다고. 애나 렘키가 예전에는 의사들이 담배 광고에 나왔었다고 지적하며 “어떻게 담배의 중독성을 모를 수 있었냐고 의아해하지만, 100년 뒤에는 지금 인류가 스마트폰을 아이들에게 아무런 제약 없이 사용하게 했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될 것”이라 말한다. 유튜브 ‘닥터프렌즈’의 ‘의학의 역사 마약 편’에서 아이들에게 아편을 ‘진정 시럽’으로 먹였던 흑역사를 보았을 때만큼 아찔하다.
소셜미디어는 공감과 소통뿐이 아니라, 공격과 혐오도 부추긴다. 이 역시 진화론적으로 설명된다. 집단 내 힘을 합쳐 다른 집단을 공격하던 부족이 살아남았고, 그 과정에서 쾌감을 느끼도록 인간이 진화했는데, 소셜미디어가 그런 쾌감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프로그램은 유럽 중세의 풍습을 재현하는 마을을 보여주면서 마녀사냥이 극에 달했던 시기가 중세의 한복판이 아니라, 근대 과학의 발견과 개혁적인 성취가 일어났던 16세기 르네상스 전후 200년간이었음을 짚는다.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속도의 변화를 겪으며 공격성이 높아진 결과였으며, 이는 오늘날 디지털 마녀사냥이 일어나는 기전과 유사하다. 인공지능에 의한 알고리즘은 중독과 별점 테러 등 피해를 낳지만, 비윤리적인 결과에 대해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그런데 알고리즘이 낳은 더욱 심각한 폐해는 따로 있다. 바로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린 것이다.
프로그램은 2부에서 펠로시 집 괴한 침입 사건, 의사당 점거 사건, 트럼프를 지지하는 극우 음모론 단체 ‘큐어논’ 등 미국의 사례를 훑는다. 공화당 지지 지역 주민들이 주류언론을 ‘가짜뉴스’라고 불신하면서 유튜브를 통해 정치 뉴스를 접한다고 인터뷰하는 대목은 섬뜩하다. 한국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과 한국은 강력한 대통령제와 거대 양당으로 굴러가며, 언론 신뢰도가 낮은 등 유사점이 많다. 승자 독식의 선거 구도에서 51:49의 싸움이 되어버려 ‘잘못을 저질러도 지지세력만 결집하면 된다’는 팬덤 정치가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성향에 맞는 뉴스를 소비하면 왜 안 되는 걸까. 확증편향이 강화되어 믿고 싶은 것만 찾아보며, 나만의 세계에 갇히는 ‘필터버블’ 현상에 빠진다. 그 결과 정치는 양극화되고, 기본적인 사실조차 외면하면서 진영이 다른 사람과는 전혀 대화가 되지 않는다. 지지 정당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증오하고, 인간 이하로 보는 ‘비인간화’가 일어난다. 거대 양당은 이를 해소하기는커녕, 편 가르기와 혐오를 부추긴다. 표가 나오기 때문이다. 최근 프랑스, 스웨덴, 이탈리아 등에서도 극우 포퓰리즘 세력이 약진하였다. 디지털 민주주의의 출현이라며 환호했던 20년 전의 감격이 무색해졌다.
이러한 문제를 깨달은 일부 나라들은 디지털 문해 교육을 강화하고, 통신사업자와 정보통신 서비스 제공자에게 모니터링 및 가짜뉴스 삭제 의무를 부과해 해결을 시도 중이다. 미디어 공간이 공론장의 기능을 회복하고, 위기에 빠진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 인류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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