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구슬땀… 설 연휴 잊은 골프 스타들의 해외훈련 러시
지난해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투어에서 처음으로 대상을 수상하며 새로운 '필드 대세'로 떠오른 김수지는 오전 5시 이전에 일어나 워밍업에 들어간다. 아침식사 후 오전 6시 30분 연습 라운드 티오프를 한다. 점심 먹고 오후 1시부터는 연습 및 레슨을 하고, 오후 5시 30분 이른 저녁식사를 한다. 오후 7시부터는 빈 스윙과 서킷 트레이닝으로 하루를 마무리한 뒤 잠자리에 든다.
연말연시 달콤한 휴식시간을 가졌던 국내 남녀 프로골프 선수들이 2023시즌 대비를 위해 본격적인 훈련에 나섰다. 코로나19 여파로 국내에 머물렀던 지난 2년과 달리 이번에는 대부분 추위를 피해 따뜻한 해외로 향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에 집중됐던 훈련지가 올해 들어서는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 지역으로 몰리는 양상.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선수들이 모여들어 훈련 여건이 나빠진 반면, 동남아 지역은 가까운 데다 해외 입국자의 격리 조치가 해제된 영향이라는 게 골프업계 분석이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캠프 차린 김수지
김수지는 스윙코치인 이시우 빅피쉬아카데미 원장의 지도를 받고 있다. 이번 캠프에는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투어에서 뛰는 고진영과 KLPGA 간판 박현경 등 20명 가까운 남녀 선후배 선수도 이미 참가했거나 합류할 예정. 이시우 원장은 "오전에는 기온이 17도 전후이고 햇볕도 강하지 않아 다른 훈련 지역보다 날씨와 환경이 좋다. 식사, 숙소, 연습장, 코스가 모두 리조트 안에 있어 훈련 여건이 뛰어나다. 운동 외에는 할 게 없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2022년에는 미국을 찾았다.김수지는 "장기 레이스인 만큼 체력 훈련은 기본이다. 쇼트게임과 함께 스윙도 집중적으로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누구보다 겨울 훈련의 중요성을 잘 안다. 지난해 비거리를 늘리려고 겨우내 주 4~5일 근력 강화에 매달린 끝에 드라이버 헤드 스피드가 시속 5마일 가까이 증가했다.
2020년 드라이버 평균 비거리가 226야드로 87위였던 김수지는 2021년 243야드(22위)를 찍은 뒤 2022년에는 246야드(16위)까지 늘렸다. 드라이버를 20야드 가까이 더 보내면서 두 클럽까지 짧게 잡고 다음 샷을 하게 돼 코스 공략이 한결 편해졌다. 2022년 김수지는 평균타수 1위(70.47타)에 오르며 27개 대회에서 2승을 포함해 17차례나 톱10에 드는 꾸준한 페이스를 보였다. 이 원장은 김수지에 대해 "전체적으로 클럽 페이스가 처져 들어와 왼쪽으로 공이 돌아가는 구질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는 연습을 많이 주문했다"며 "스윙 궤도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형 루키 유해란은 태국에서 훈련
대형 루키 유해란(22·다올금융그룹)은 태국에서 성공적인 LPGA투어 데뷔 꿈을 키운다. 1월 16일부터 2월 18일까지 태국 카오야이의 마운틴 크리크 골프장에서 초등학생 때부터 고교 시절 국가대표가 됐을 때까지 지도해준 염동훈 코치와 함께한다.유해란은 "한국에서 접하기 힘든 버뮤다 잔디를 충분히 경험할 것 같다"며 "쇼트게임과 퍼트를 중점적으로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염동훈 코치는 "유해란은 장타가 강점이라서 100야드 이내 웨지게임과 퍼트에 집중할 예정"이라며 "체중이 발뒤꿈치 쪽에 남으면서 웨지 샷에서 스핀양 컨트롤이 어려워지는 단점도 보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해란 역시 체력을 강조했다. "LPGA투어에 건너가면 대회 수가 한국보다 더 많은 데다, 이동거리도 길고 시차까지 있어 컨디션 관리가 중요하다. 체력 보강에 최우선순위를 두려 한다." 유해란은 지난해 12월 LPGA투어 퀄리파잉 시리즈를 당당히 1위로 합격한 뒤 연말연시에도 전문 트레이너와 1주일에 6번 근력 강화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유해란은 지난해 12월 2023시즌 KLPGA투어 해외 2개 대회에서 우승을 나눠 가진 이정민(31·한화큐셀), 박지영(27·한국토지신탁)과 함께 훈련한다. 30대 챔피언의 기쁨을 누린 이정민은 긴 클럽으로 갈수록 테이크백을 할 때 상체가 스웨이되면서 백스윙이 짧아지는 단점을 보완할 계획. 최근 모처럼 일본 스키 여행을 다녀온 이정민은 "골프 퍼포먼스를 위한 라운드 전후 스트레칭 트레이닝과 휴식도 중요한 것 같다. 부상 방지를 위해 균형을 잘 맞추려 한다"고 말했다.
겨울 훈련은 재도약의 발판이자 절치부심의 무대가 되기도 한다. 토끼띠 최혜진(24)은 2018년부터 KLPGA투어 대상을 3년 연속 차지한 뒤 2022년 LPGA투어에 뛰어들었으나 아쉽게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래서 계묘년 검은 토끼해를 맞아 LPGA투어 첫 정상을 향한 의지가 뜨겁기만 하다.
LPGA투어에서 상금 랭킹 6위(약 26억1500만 원)에 오르고도 무관에 그치며 신인상도 날린 최혜진은 1월 23일 태국으로 출국한다. LPGA투어 루키 시즌 막판에 체력적으로 힘든 느낌을 받았다는 그는 국내에 있는 동안 골프 전문 트레이닝센터에서 근력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으며, 태국에서는 퍼트 보완을 과제로 삼았다. 최혜진은 "미국은 잔디 종류가 다양해 공이 굴러가는 느낌이나 터치 감각을 익히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2022년 LPGA투어에서 최혜진의 그린 적중률은 76.54%로 3위에 오른 반면, 평균 퍼트 수는 30.32개로 80위에 머물렀다.
2023년 30세가 된 '남달라' 박성현(솔레어)도 부활을 다짐하고 있다. 1993년에 태어난 박성현은 "지난해까지는 만 나이로 20대였는데 올해 진정한 30대가 됐다. 아기 같은 마음을 버리고 좀 더 성숙하고 어른스럽게 골프를 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2017년 LPGA투어에 데뷔해 화려한 경력을 쌓으며 세계 랭킹 1위까지 질주하던 박성현은 2020년부터 어깨 부상 등 여파로 오랜 슬럼프에 빠졌다. 2019년 월마트 NW 아칸소 챔피언십에서 통산 7승째를 거둔 뒤 정상에서 멀어졌다. 2022년 5월 274위까지 추락했던 세계 랭킹은 현재 200위.
2023년 메이저대회를 포함해 3승을 목표로 잡은 박성현은 3월 23일 개막하는 LPGA투어 드라이브 온 챔피언십에 새해 첫 출전한다. 출국을 앞두고는 1월 9일 어메이징크리와 의류 후원 계약식을 갖기도 했다.
다승왕 박민지는 美 LA에 캠프
2021년과 2022년 2년 연속 시즌 6승을 거두며 다승왕 2연패를 달성한 박민지(25·NH투자증권)는 1월 10일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로 떠났다. 3월 8일 귀국 예정인 그는 이번 시즌 LPGA투어 진출을 앞두고 현지 적응력을 높이기 위해 미국에 캠프를 꾸렸다. 박민지는 "올해는 LPGA 대회에 많이 참가할 생각"이라며 "한국과 미국을 오가려면 그 어느 때보다 체력이 중요하기에 겨울에 운동량을 늘려야 한다"고 의욕을 보였다. 1월에는 전문 트레이너와 체력적인 부분에 중점을 둔 뒤 2월부터는 기술 훈련을 병행할 계획이다.2022년 KLPGA투어 1승을 올리며 상금 10위(약 6억2000만 원)로 마친 기대주 홍정민(21)은 포르투갈을 훈련지로 잡아 눈길을 끌었다. 1월 3일까지 2월 28일까지 머물게 된 포르투갈 포르티망은 유럽 대륙에서 골프 훈련에 적합한 환경으로, 겨울철이면 프로골퍼가 많이 몰려든다. 기온은 섭씨 10~15도. 미니투어가 개최돼 유럽 남자 유망주들과 함께 라운드할 기회도 있어 실전 감각을 끌어올리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
프로골퍼는 한 해 농사가 겨울에 결정된다고 한다. 설 연휴도 기꺼이 반납하며 연초부터 땀을 흘리는 이유다. 2023시즌은 봄에 막을 올리지만 출발 총성은 이미 울렸다.
김종석 부장은…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동아일보 스포츠부장을 역임한 골프 전문기자다. 1998년부터 골프를 담당했고 농구, 야구, 테니스, 배드민턴 등 주요 종목을 두루 취재했다.
김종석 채널A 성장동력센터 부장 (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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