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와인] ‘포도알을 모아 만든 모자이크’ 마르셀 다이스 컴플렌테이션
흔히 미국을 ‘용광로(melting pot)’ 같은 국가, 캐나다를 ‘모자이크(mosaic)’를 추구하는 나라라고 말한다.
두 나라 모두 이민자(移民者)로 이뤄졌지만, 미국은 다양한 구성원을 모두 녹여 ‘하나의 미국’을 만들어냈다. 반면 캐나다는 구성원들이 가진 각양각색 개성을 그대로 인정해 새로운 모습을 창출했다는 주장이다.
이들 국가 지도자들처럼 와인 생산자들도 매년 수확철이 다가오면 비슷한 고민을 한다. 규모는 훨씬 작지만, 포도밭을 한 국가라고 가정하면 따져봐야 할 사항이 비슷하다.
포도 생산지 기후는 매년 변한다. 어느 해는 비가 많이 오기도, 때로는 지나치게 가물기도 한다. 강수량과 일조량 뿐 아니라, 산불과 전염병 같은 자연 재해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이들은 이렇게 시시각각 변하는 세계에서도 매년 비슷한 품질로 와인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온갖 대소사 속에서 어떻게든 국정을 이끌어 가야 하는 리더의 역할이 주어지는 셈이다.
이 때 대다수 와인 생산자들이 여러 포도 품종을 섞는 블렌딩(blending)을 통해 예년과 비슷한 품질을 이끌어 낸다. 한 가지 포도 품종으로 와인을 만들 때 생길 수 있는 결점을 여러 가지 품종을 섞어 보완하는 식이다.
생산자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은 구역 별로 나뉘어진 밭에서 포도를 품종에 따라 나눠서 키운다. 이 쪽 밭에서는 카베르네 소비뇽 품종을, 저 쪽 밭에서는 샤르도네 품종 포도를 키우는 식이다.
이렇게 따로 키운 포도는 수확 후 각자 발효를 시킨 다음, 숙성 과정이나 병입 직전에야 섞는다. 섞는 품종 역시 지역 별로 엄격히 제한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철광석과 석회석, 코크스 등을 정해진 순서에 맞춰 투입하는 용광로와 비슷하다.
반면 극히 일부 생산자들은 이런 방식을 인위적이고 형식적이라고 거부한다. 이들은 구역별로 포도를 나눠서 키우는 대신 한 포도밭에 여러 품종 포도를 같이 심어 키운다.
포도밭이 화훼 농장이라고 치면, 개나리와 진달래 같은 온갖 꽃을 고랑 별로 나눠서 관리하고 따로 거두는 대신 한꺼번에 씨를 모아 밭에 뿌리는 식이다.
지금에서야 화이트 와인 품종과 레드 와인 품종을 칼로 자르듯 구분해 키우지만, 산업화 이전 프랑스와 포르투갈, 오스트리아 일부 지역에서는 화이트 와인 품종과 레드 와인 품종마저 같은 밭에서 재배했다. 이들에게 무릇 포도밭이라 하면 그저 ‘품종과 상관없이 여러 포도로 그리는 모자이크’와 같았다.
특히 프랑스에서도 외진 산골에 속하는 알자스 같은 지역에서는 한 포도밭 안에서 최대 100여 종에 달하는 포도 품종을 함께 키우기도 한다. 알자스는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의 단편 소설 ‘마지막 수업’으로 유명한 프랑스와 독일 사이 국경 지대다.
얼핏 과학적이지 않고, 심지어 비효율적일 것 같은 방식이지만, 이 방식은 효과가 입증됐다.
여러 품종을 같은 밭에서 키우면, 함께 자라는 여러 품종 포도들은 경쟁하듯 깊게 뿌리를 내린다. 그 과정에서 이전보다 많은 영양분을 흡수하면서 따로 자랄 때보다 건강한 포도알맹이를 맺는다.
같은 밭에서 한 품종이 다른 품종에 접목되면서 자연스럽게 개량종이 나오기도 한다.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포도들이 한 군데서 어우러지면서 생물학적 다양성이 높아지는 이치다.
마르셀 다이스 와이너리는 이 알자스 지방에서도 유난히 여러 포도를 섞는 방식을 선호한다. 와인을 마실 때 으레 어떤 품종으로 만드는지 확인하던 버릇은 마르셀 다이스의 와인을 마실 때는 할 필요가 없다. 대신 어떤 밭에서 키운 포도를 사용했는지에 집중하면 된다.
마르셀 다이스 컴플렌테이션은 한 밭에서 자란 13가지 포도 품종을 섞어 만들었다. 와인 이름에 들어가는 ‘컴플렌테이션(Complantation)’은 이렇게 한 밭에서 여러 포도를 키우는 방식을 뜻한다.
이 와인에 들어가는 주된 포도는 피노 블랑이나 리슬링 같은 화이트 와인 품종이지만, 피노 누아 같은 레드 와인 포도 품종도 일부 섞였다.
여러 개성을 가진 구성원들이 모여 건강한 사회를 이루는 것처럼 다이스는 와인을 여러 포도 품종으로 만든 모자이크 같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여러 포도를 한 밭에서 함께 키울 뿐 아니라, 재배부터 양조 과정에 이르기 까지 포도 품질을 평준화할 수 있는 화학비료나 농약,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다. 중세 시대 와인을 만들던 방식 대로, 자연에 대한 인위적인 개입 없이 땅과 포도 개성을 살린다는 취지다.
이 와인은 2022 대한민국 주류대상 화이트 와인 구대륙 3만~6만원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 우리나라에는 신세계 L&B가 수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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