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꿈꾸는 소녀’, 운명이 찾아와 ‘내가 마음에 들었니’라고 묻는다면[MD칼럼]

2023. 1. 14.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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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명동의 씨네톡]

한강의 ‘서시’ 1연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나에게 말을 붙이고/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오래 있을거야/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박혁지 감독의 ‘시간을 꿈꾸는 소녀’는 ‘서시’를 떠올리게 한다. 이 영화는 4살 때부터 꿈을 통해 사람들의 미래를 보며 무녀가 될 운명을 타고났지만, 자신이 원하는 꿈을 이루고 싶은 수진의 선택과 삶을 따라간다. 수진은 운명의 구심력과 원심력 사이에서 분투한다. 수진이 운명으로부터 더 멀리 달아나려고 노력할수록, 운명은 더 가까이 다가와 속삭인다. “내가 마음에 들었니.”

‘서시’의 운명은 생의 마지막에 이르는 죽음을 은유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걸어가야 하는 길이라고 생각하자. 수진은 태어날 때부터 선택권을 빼앗겼다. 자신의 삶이 아니라, 타인의 삶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살아갈 수 있다. “왜 하필 나야? 내가 왜 무당으로 살아야돼?”라고 원망을 쏟아내도 소용이 없다. 고향 홍성의 산골짜기를 떠나 서울의 대학에 진학해 4년간 열심히 공부하고 광고기획자로 취직을 하려고 해도 운명의 끈은 수진을 놓아주지 않는다. 이 영화엔 신비로운 장면이 담겨있다. 수진이 아침 일찍 신당에서 기도를 올리고 집으로 돌아갈 때, 신당의 문이 스르륵 열린다. 마치 신당의 장군상이 수진의 뒷모습을 응시하는 듯한 모습이다. 어디로 도망가려 해도 갈 수 없는 운명의 기운이 스며 나온다.

박혁지 감독의 데뷔작은 ‘춘희막이’(2015)인데, 본처와 후처로 만난 두 할머니가 46년간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다. 그는 ‘춘희막이’ 후반 작업을 진행할 무렵, 불현듯 ‘꼬마 무당’으로 TV에 소개됐던 수진을 떠올렸다. ‘그 꼬마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을 안고 찾아갔다. 무속의 삶을 살고 있지만, 속세의 삶을 동경했던 수진의 고3 시절부터 7년의 세월을 담아냈다. 두 할머니의 모질고 질긴 운명을 다큐멘터리로 만드는 순간에 수진을 떠올린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춘희막이’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운명에 관한 이야기라면, ‘시간을 꿈꾸는 소녀’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그가 ‘춘희막이’ 후속작으로 수진의 삶을 다루려 했던 이유는 어떤 힘에 이끌려 ‘그렇게 살아가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의 이야기’에 매혹됐기 때문이 아닐까.

이 영화의 제목은 다양한 의미를 품고 있다. 예지몽으로 타인의 시간을 미리 내다보는 수진의 운명을 뜻하지만, ‘다른 시간’을 꿈꾸는 소녀의 마음도 드러난다. 무당은 신과 인간 사이의 중개자인데, 수진은 신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평범하게 살기를 원했다.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지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삶의 반복이다. 주어진 운명을 선택했다는 건 다른 운명을 개척해나갈 기회를 놓쳤다는 뜻이다. 마음에 드는 운명이라는 게 있을까. 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삶을 꿈꾸었던 수진은 무당의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그는 이것이 내 운명이라면 좀 더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자고 다짐한다.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수진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았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과 함께 살아갈게. 다른 시간을 꿈꾸며.”

[사진 =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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