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셀럽 스트롱맨' 김정은에게 2023년은 어떤 해가 될까
스트롱맨. 우리말로 강한 남자. 강압적이고 거친 사람 같으면서도, 때로는 카리스마와 리더십이 배어 있을 것 같은, 부정과 긍정의 뉘앙스가 교차하는 수식어.
하지만, 정치학에서의 스트롱맨은 꽤나 부정적인 의미로 읽힌다. 겉보기에 흡입력이 있지만, 민주주의를 기회비용 삼아 자신의 정치적 근력을 키우는 정치 지도자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스트롱맨의 개념을 두고 논란이 인 적이 있다. 2012년 12월, <타임>이 아시아판 커버스토리로 박근혜 당시 대통령 후보를 선택하며 '스트롱맨의 딸'(The Strongman's Daughter)이라고 소개하자, 누구는 '강력한 지도자의 딸'이라고, 또 누구는 '독재자의 딸'이라고 번역하며 설전이 오갔다. 그러자 타임은 온라인판 제목을 '독재자의 딸'(The Dictator's Daughter)로 바꾸며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스트롱맨은 정치학자 브라이언 라이와 댄 슬레이터가 사용하면서 알려졌다. 처음에는 군사적 힘에 의존하는 독재 체제의 지도자를 의미했다. 민간 엘리트 중심의 일당 독재와는 구분되는 개념이었다. 하지만, 최근 포퓰리즘 정치가 수면 위에 오르면서 대중의 인기를 지렛대 삼아 강력한 리더십을 구축하는 권위주의적 정치인을 일컬을 때가 많아졌다. 심지어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에게도 이런 수식어가 뒤따르기도 한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가 대표적이다.
2022년은 그 어느 때보다 스트롱맨이 주목받던 한 해였다. 누구는 장기 집권의 포석을 놓는 데 성공했고, 또 누구는 전쟁을 일으키며 국제적 비난을 샀다. 자연히 국제 뉴스는 스트롱맨들에 대한 소식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2023년. 국제적으로 큰 선거가 없어 숨고르기에 들어가는 시기로 평가된다. 하지만, 스트롱맨에게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선거가 아닌 정치로 자신의 근육을 키울 수도 있고, 반대로 힘이 빠져버릴 수도 있다. 원하든 원치 않든, 그들은 올 한 해 시험대에 올랐다.
지난해 국제 사회를 뒤흔들었던 스트롱맨은 2023년 어떤 방식으로 국제 정치의 행위자로 나설 것인가. 나아가 세계의 정치 지형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
2023년, 국제 정치 한복판에 있는 스트롱맨 열전
민주주의와 스트롱맨. 전혀 어울릴 수 없는 두 키워드. 그런데 그 간극이 민주주의를 선도하고 있다고 알려진 미국에서 좁혀졌다는 건 역설적인 일이다. 2016년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자, 세계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민주주의는 스트롱맨을 잉태하고 심지어 양육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미국 차기 대선은 내년 11월에 있다. 내년 1월부터 당내 경선이 본격화되는 것을 감안하면, 올해는 대권 경쟁의 윤곽이 그려지는 해다. 연임에는 실패했지만, 다시 출사표를 던진 트럼프. 지난해 중간 선거에서 사실상의 패배 이후 그의 당내 입지가 좁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 언론 여론조사에서도 그의 지지도가 조금씩 떨어지는 모양새다. 그는 재선을 위해 올해 총력을 모아야 한다.
한 때 초강대국의 스트롱맨 트럼프. 그에게 2023년은 여전히 정치적으로 건재하다는 걸 계속 보여주며 설득해야 하는 운명의 시기다.
엘리트 정치의 대명사 중국. 하지만 시기마다 결은 다르다. 마오쩌둥 시대의 일인지배, 덩샤오핑 시대의 원로지배, 그 이후의 집단지배. 그런데 지난해 10월 공산당대회는 지배체제의 새로운 변화를 함축하고 있었다. 사실상 시진핑 일인지배 체제의 신호탄이 됐기 때문이다. 후진타오 전 총리가 쫓겨나듯 끌려 나가는 모습은, 경쟁 파벌 퇴각의 상징적 장면처럼 보였다. 적어도 중국 안에서 시진핑과 자웅을 겨룰 힘센 경쟁자는 사라졌다. 장기집권을 위한 정치 시스템 구축이 사실상 끝났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제 남은 건 시진핑이 올 한 해 어떤 모습을 보일 것인가다. 미국의 견제가 날이 갈수록 거세지는 상황, 시진핑은 미국에 대항해 근육 자랑에 나선다는 데 무게가 실린다. 이미 시진핑은 미국의 중국 견제에 맞서, 경제적으로는 내수 확대를 추구하는 '쌍순환' 정책을, 군사적으로는 '타이완 통일' 정책에 힘을 쏟는 모양새다. 자연히 한국 경제와 안보에 미치는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다.
견제 세력 사라진 스트롱맨 시진핑. 그에게 2023년은 미국만큼 근육이 단단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 총력의 시기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반, 명분 없는 전쟁임을 다들 알면서도, 세계는 푸틴의 승리가 뻔하다고 봤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의 항전 의지는 거셌다. 나아가 서방 지원에 힘입어 전쟁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푸틴은 자못 당황했을 것이다. 푸틴의 입지가 흔들릴 거라는 외신 보도가 쏟아졌다.
전범이라는 국제적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있지만, 일단 단기적 관점에서 푸틴의 입지는 여전하다는 평가 역시 공존하고 있다. 푸틴의 지지기반인 러시아 엘리트들은 전반적으로 결속력이 견고하다고 평가받는다. 러시아 국내 여론조사에서도 등락은 있지만, 전쟁 지지도가 그렇게 낮지 않다. 이런 국내 상황은 푸틴에게 결코 불리하지 않다. 물론, 중장기적으로 체제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 배제할 수 없다. 경제 제재나 전황 전개 상황 등 변수가 많다. 푸틴 입장에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변수들을 최소화해야 한다.
전범이 된 스트롱맨 푸틴. 그에게 2023년은 작금의 상황을 일단 안정적으로 끌고 가야 하는 필사의 시기다.
지난해 김정은이 쏜 미사일은 90발이 넘었다. 역대 최대다. 7차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정황도 계속 나온다. 북한의 스트롱맨 김정은은 지난해 군비 증강에 힘을 쏟아부었다. 달리 말하면, 압박을 지렛대 삼아 미사일 기술을 고도화시킬 수 있는 나름의 기회이기도 했다. 국제적 관심을 끄는 데도 어느 정도 성공했다. 세계의 숱한 작은 나라 독재자 가운데, 이렇게 외신에 자주 오르내리는 스트롱맨이 또 있을까.
한미일 안보 협력은 올 한 해 강해지면 강해지지, 약해질 이유가 없다. 북한에게 또 좋은 명분이다. "올해 투쟁 여하에 따라 지금껏 고군분투한 성과들이 승패가 결정된다" 지난 3일 노동신문 기사 문장이다. 이변이 없는 한, 김정은의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노동 신문 표현대로, 올해도 투쟁이다. 거세게 몰아붙여야 생존한다.
작은 나라의 셀럽 스트롱맨 김정은. 그에게 2023년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단결하고, 투쟁하는 격동의 시기다.
우리에게 멀리 있는 것 같지만, 중동 정치의 바람은 여러 계단을 거쳐 한반도에도 도달할 수 있다.
가령, 미국의 이라크와 아프간 철군, 미-사우디 동맹 균열 등에서 볼 수 있듯, 미국은 중동에서 서서히 발을 빼며 중국에 전략적 역량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른바 '인도·태평양 전략'이다. 그런데, 그 반작용으로 사우디 같은 중동 친미 국가들이 러시아나 중국과 가까워지기 시작하면서, 미국 입장이 난처해졌다. 미국의 외교 전략에 여전히 여백이 있음을 암시한다. 한반도는 미국 외교 전략 변화에 탄력성이 크다.
이런 전략적 여백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변수, 바로 중동의 스트롱맨들이다. 중동은 그야말로 스트롱맨 변수의 총집합이다.
사우디의 스트롱맨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 일명, 미스터 에브리씽이 그 중심에 있다. 지난해 7월, 치솟는 유가 때문에 무함마드 왕세자를 달래러 갔던 바이든은, 안타깝게도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다. 무함마드는 생각했을 것이다. 아무리 셰일 혁명이니 뭐니 해도, 석유의 위력이 여전하다는 것을. 자연히 이를 무기로 미·중·러 사이를 간 보고, 심지어 널뛰기하며 자신의 몸값을 더 높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치솟았을 것이다. 지금도 최고 권력자나 다름없지만, 노쇠한 아버지 살만의 뒤를 이어 왕위를 이어받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 사우디의 스트롱맨에게 2023년은 몸값을 더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
문제는 이란이다. 사우디의 최대 경쟁국 이란은 히잡 시위가 격화하고 있다. 무함마드 빈 살만은 민주화 열기가 혹시라도 페르시아만을 거쳐 아라비아 반도로 옮겨질까 걱정이 많다.
하지만,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만큼 노심초사는 아닐 것이다. 히잡 시위대의 시선은 서서히 하메네이를 향하고 있다. 그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반미 지도자다. 그의 세가 위축되면 국내 권력 지형 변화가 필연적이다. 경쟁국 사우디와의 관계, 나아가 미·중·러와의 관계 변화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미국과의 핵협상도 상황이 녹록지 않은 모양이다. 이란의 스트롱맨에게 2023년은, 일단, 급한 불부터 꺼야 하는 조급한 시기다.
사우디와 이란 모두의 적대국, 이스라엘에서는 지난해 11월 이스라엘 시오니즘의 상징 베냐민 네타냐후가 다시 권력을 잡았다. 팔레스타인 주민이 많이 살고 있는 가자 지구에 유대인 정착촌을 늘리는 정책은 중동 지역 전체의 반발을 살 수 있다. 현지 언론에서는 이란 핵시설 타격설까지 오르내린다. 그러면 또 미국과 중국, 러시아의 외교 전략 문제가 얽히고설킨다. 2023년 중동의 긴장은 이스라엘 스트롱맨의 의사 결정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트롱맨과 국제사회
달리 말하면, 전쟁의 빌미는 유권자를 별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권위주의 국가의 스트롱맨들이 제공한다는 뜻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 권위주의 국가의 군비 지출 비율이 민주주의 국가보다 많은 것도 사실이다.
민주평화론은 냉전 이후 주목받았지만, 동시에 비판도 받았다. 영향력이 큰 민주주의 국가들이 직접 전쟁에 나서는 것은 기피하지만, 약소국을 통해 대리전쟁(proxy war)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우리의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도 대리전쟁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권위주의 체제도 그 특성에 따라 전쟁에 대한 선호도가 엇갈린다는 연구도 있다. 같은 스트롱맨이라도, 국내 정치 체제가 어떻게 구성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제시카 웍스는 자신의 책 <독재자들의 전쟁과 평화(Dictators at War and Peace)>에서, 권위주의 정권의 정치 체제에 따른 전쟁 수행 여부를 달리 분석했다. 분석 방식은 복잡하지만, 핵심은 같은 스트롱맨이라도 국내 엘리트의 견제를 받을 경우 전쟁에 참여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런 접근을 고려하면,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00년 이후 푸틴의 장기 집권, 그리고 국내 엘리트의 견제가 무뎌진 시기, 전쟁에 대한 의사 결정은 보다 쉽게 이뤄졌다는 해석이 가능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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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원 기자leekw@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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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오늘 첫 출근한 'AI 인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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