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토보다 우크라군부터 파괴”…약한 고리 찾아내는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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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우크라 전황 달라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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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들어서 최대 지정학적 격변인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황이 다시 요동치고 있다.
러시아는 용병 회사인 바그너(와그너)그룹의 주도로 동부전선 격전지인 솔레다르를 지난 10일에 거의 점령한 것으로 영국이나 미국 국방부들도 인정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쪽은 솔레다르를 지키고 있다고 주장하나, 이는 바그너그룹의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밝힌 대로 우크라이나군은 도시 중앙에서 포위됐고 “시가전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는 차원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솔레다르 점령으로, 10㎞ 떨어진 최대 격전지인 바흐무트 전투에서 더욱 유리한 입지를 갖게 됐다. 바흐무트를 포위하는 동시에 우크라이나군의 보급선을 차단할 수 있게 됐다. 바흐무트에서 양쪽은 지난해 8월부터 공방을 해오다, 최근 한달 동안은 더욱 치열한 전투를 벌여 막대한 병력과 자원을 투입해왔다. 러시아가 바흐무트마저 점령하면, 우크라이나의 돈바스 방어선을 무너뜨려서 돈바스 전역으로 진공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번 솔레다르-바흐무트 전투는 지난해 11월 이후 러시아의 ‘화력 중심 소모전’ 전략이 우크라이나의 ‘지형에 초점을 맞춘 국지적 기동전’ 전략을 눌렀다는 평가를 낳고 있다.
상대적 전력 손실은 우크라가 클 듯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가 지난해 2월24일 전면적 침공을 한 이후 몇 단계를 거쳐 양쪽이 공방을 벌이며 이런 전략 대결을 해왔다. 1단계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북·동·남 방면에서 침공해 수도 키이우까지 진공한 상황이다. 2단계는 4월 초 우크라이나의 반격에 밀린 러시아의 키이우 철수다. 3단계는 러시아가 키이우에서 철수한 이후 동부 돈바스 지역에 대한 공세 집중과 점령지 확대다. 4단계가 9월 이후 서방의 중거리 정밀 무기를 지원받은 우크라이나의 반격과 동북부 하르키우 및 남부 헤르손 탈환이다. 러시아는 침공 이후 점령한 영토의 절반 정도를 상실했다. 5단계가 11월 초 러시아의 헤르손 철수 및 전열 정비, 우크라이나 전력망 등 기반시설에 대한 폭격 지속이다.
이라크전 등에서 작전참모를 지낸 미군 퇴역 중령 앨릭스 버시닌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이 운용하는 러시아 문제 전문 사이트 ‘러시아 매터스’에 실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앞날’이라는 기고에서 우크라이나는 서방의 중거리 정밀 무기를 앞세워 유리한 지형에서 국지적 기동전으로써 효과적인 반격을 벌여 전술적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그 과정에서 병력과 자원을 소모했다고 지적했다.
개전 초기에 우크라이나는 무기 등에서 러시아에 열세였으나, 병력과 사기에서 우세했다. 서방의 무기 지원이 확대되자 우크라이나는 이 무기로 무장한 14개 직업군인 여단을 앞세워 러시아의 점령지를 신속하게 공격해 점령하고는 징집병 부대들에 넘겨줬다. 이 전술은 러시아가 병력 부족으로 전선이 취약한 하르키우, 헤르손 등에서 성과를 거뒀으나 적지 않은 사상자가 나오는 등 비용을 치렀다.
우크라이나의 최대 취약점은 이제 병력이다. 우크라이나는 4300만명 인구에 500만명의 징집 가능한 남성이 있다. 하지만 전쟁 이후 1430만명이 피난 간데다 900만명은 러시아계 주민이다. 현재 우크라이나 내 인구는 2000만~2700만명이고, 300만명 미만의 징집 자원을 가졌다. 이미 100만명이 징집됐고, 나머지 인원은 필수직종 근무 등으로 사실상 징집이 불가능하다. 서방이나 우크라이나 쪽에서는 러시아의 전사자들이 더 많다고 하나 현재의 전쟁 양상으로 봐서 우크라이나 쪽 손실이 더 클 것이라고 객관적인 군사전문가들은 추산한다.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 등은 양쪽 각각 10만명이 전사했다고 밝혔다. 징집 가능 인구 100만명 중 실제로 전투가 가능한 수는 30만명 내외인데, 10만명이 전사하면 우크라이나로서는 병력 부족에 직면하게 된다.
침공군은 보통 방어군에 비해 적어도 2배 이상의 병력을 가져야 하는데, 러시아는 개전 초기 병력 20만명으로 우크라이나에 병력도 열세인데다 사기 등에서도 뒤지고 보급과 작전도 엉망이었다. 이는 키이우, 하르키우, 헤르손에서 러시아의 패퇴와 철수로 귀결됐다. 하지만 이는 러시아가 “러시아군은 불리한 조건에서 싸우길 거부하고 철수하며, 자신의 전력 보전을 위해 정치적 비용을 수용한” 것이라고 버시닌은 평가했다. 즉, 러시아가 이 전쟁에 임하면서 철수했다는 정치적 비난을 감내하면서도 전력을 보전하려는 군사 전략을 앞세웠다는 것이다.
대신에 러시아는 우세한 화력과 공습 능력을 동원해, 우크라이나의 병력과 자원을 소모시키는 전략으로 맞서고 있다. 지난여름 헤르손 전투에서 우크라이나 대 러시아의 전사자 수는 5 대 1이었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현지에서 보도했다. 러시아는 특히 지난해 11월 이후 전력망 등 사회기반시설 공격으로 우크라이나의 전쟁 자원 동원 능력을 현저하게 위축시키고 있다. 특히 러시아는 바흐무트 주변 전선을 강화해 우크라이나를 참호전과 소모전으로 묶어뒀다. 바그너그룹의 프리고진도 “우리의 임무는 바흐무트 자체가 아니라 우크라이나군의 파괴와 그 전투 역량의 소진”이라고 말했다. 폴란드의 독립적 군사자문회사인 ‘로한 컨설팅’의 콘라트 무지카는 우크라이나는 바흐무트 주변에 10개 여단, 3만명의 병력을 투입하고 있다며 “러시아 관점에서 이런 상황의 유리한 점은 바그너 용병들이 우크라이나군을 묶어두는 동안 러시아 정규군이 다른 곳에서 작전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크라, 러의 ‘쏟아붓기’ 견딜까
미국의 군사안보 전문가인 배리 포즌 매사추세츠공대 교수는 <포린 어페어스>에 쓴 ‘러시아의 반등’이라는 기고에서 “전반적인 군사 전략으로 보면, 러시아가 더 영리해지는 것 같다”고 평했다. 포즌 교수도 러시아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정치적 비난을 무릅쓴 철수와 전열 정비로 전력을 비교적 보전하고는 30만명을 새롭게 징집하는 등 더 격렬한 소모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전쟁이 계속되면, 우크라이나는 지난해처럼 올해에도 5만~10만명의 전사자를 감내하면서 서방으로부터는 1000억달러의 경제·군사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버시닌은 “문제는 우크라이나가 모든 영토를 회복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러시아의 징집병에게 상당한 손실을 끼쳐서 러시아 국내의 단결을 와해해 유리한 환경에서 러시아에 협상을 강요할 수 있느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렇지 않으면 러시아의 소모전 전략이 우크라이나의 다른 지역도 더 병합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한겨레>에서 국제 분야의 글을 쓰고 있다. 신문에 글을 쓰는 도중에 <이슬람 전사의 탄생> <지정학의 포로들> 등의 책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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