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갑툭튀' 148만원 판결에…렌터카업계·보험사 수백억 소송전 불러

김진아2 기자 2023. 1. 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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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대차료 산정에 "브랜드·하차감도 고려해야"
부산지법 판결 여파 렌터카업체들 줄소송
수년 간 분쟁 끝에 금감원 표준약관 뒤집어
최저요금 약관 도루묵되며 법률해석 분분
법조계 우려 "도덕 문제 이어 소비자 부담"

[제주=뉴시스] 우장호 기자 = 지난 2021년 11월2일 제주국제공항 내 렌터카하우스가 여행길에 나선 가족과 친구, 연인들의 발걸음으로 붐비고 있다. 2021.11.02. woo1223@newsis.com.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습니다.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 최근 자기 과실로 외제차와 가벼운 접촉사고를 낸 김모씨는 보험사에서 받은 전화 한 통에 깜짝 놀랐다. 대차료(렌트비)가 600만원이 넘게 나왔다는 것. 피해 차량은 배기량 2000cc 독일차인데, 피해자는 '판례'를 근거로 동급 외제차 렌트를 요구했다. 배기량이 같은 국산 차량의 경우 11만원 수준인데 외제차 대차료는 3배에 가까운 32만원. 수리가 길어지며 대차료는 급격히 증가했다. 김씨는 "표준 약관은 동급 차량 중 최저요금을 기준으로 하는데 뜬금없는 판결 하나로 수리비보다 대차료가 더 커졌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2년 전 한 지방법원이 차량 브랜드 등 무형의 가치 역시 대차료 산정에 고려해야 한다고 내린 판결 하나가 렌터카 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수십년 간 분쟁 끝에 마련된 지급 기준을 뒤엎는 판결을 기점으로 거액의 소송전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법원에는 교통사고로 대차 서비스를 사용한 이들에게 차를 렌트해 준 렌터카업체들이 자동차보험사에 수십억에서 수백억원대의 임대료를 청구하는 소송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중앙지법에 접수된 건만 2건인데, 차량 사용자로부터 손해배상청구권을 넘겨 받은 렌터카 업체들이 제기하는 소송들이다.

지난달 15일 센트럴렌트카 등은 삼성화재해상보험 등을 상대로 44억원대 임대료 청구 소송을 냈다. 같은 달 2일에는 유로렌트카 등이 삼성화재해상보험 등을 상대로 무려 229억원대 임대료 청구 소송을 냈다.

이 같은 장면은 2021년 2월 부산지방법원에서 내놓은 판결이 시발점이 됐다.

이 사건은 피해자로부터 손해배상 채권을 넘겨 받은 렌터카 회사가 손해보험사에 청구한 대차료를 두고 발생한 분쟁이었다. 당시 피해 차량은 독일제 차량으로, 원고인 렌터카 회사는 동종차량 임대료인 42만5000원에 임대 기간 5일, 통상할인율(70%)을 곱한 148만원을 청구했다.

부산지법에서 열린 1심은 동일한 배기량의 국산차 임대료를 적용해 47만원을 인정했으나, 같은 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재판부 판단은 달랐다.

항소심 재판부는 "적정한 임대료를 평가하는데 있어 배기량, 연식 외에 차량 가액, 주행 성능, 디자인, 브랜드 가치 등을 중요 요소로 고려해야 한다"며, "배기량과 연식만 유사하고 차량 가액 등이 다른 동급차량 대차료를 기준으로 동일한 차량의 대차료를 추인하는 것은 손해의 완전 배상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했다.

뉴시스DB.


차에 대한 품위와 하차감 등 무형의 가치를 포함해 대차료를 산정해야 한다는 게 판결의 취지지만, 업계에서는 이로 인한 혼란이 재발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과도한 외제차 수리·렌트비로 발생하는 분쟁은 수십년 간 논의 끝에 일정 수준 사회적 합의를 이룬 상태이다.

금융감독원은 2010년 9월 명확한 대차료 지급 기준이 전무한 점을 악용해 과도한 보험금을 청구하는 관행을 없애기 위해 사회적 합의 끝에 2016년 4월 자동차보험 표준약관을 개정했다.

표준 약관은 차량 연식과 관계없이 모델·배기량이 동일한 동종 차량을 기준으로 렌트비를 지급했던 규정을 고쳐, 배기량·연식이 유사한 동급 차량 중 '최저요금'의 차량으로 렌터카를 제공하도록 했다.

최저 기준을 명시한 약관이 마련되자 대차료 분쟁은 급감했지만, 이를 뒤집어버리는 항소심 판결이 나오며 다시금 소송전이 난무할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목소리다.

실제 외제차량 소유자뿐만 아니라 이들에게 렌터카를 제공한 업체들이 이 판결을 인용해 전국 법원에 수천 건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추가적인 법원 판단이 나오기 전까지 혼란은 불가피할 것이란 게 중론이다.

지난해 6월 손해보험협회(사단법인)는 다수 로펌에 이 판결과 관련한 법률 자문을 구했는데, 이용자의 주관적인 만족감은 가치로 산정할 수 없기에 판결의 부당함을 주장해야 한다거나, 이와 달리 판결의 취지는 결국 차량 가액의 유사성을 기준으로 대차료를 산정하도록 했다는 등 의견은 분분한 상황이다.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교통사고는 고의가 아닌 과실사고이고 이 손해를 사회적 비용으로 인식해 모든 국민이 보험을 통해 분담하는 구조"라며, "10년 이상 논의를 거쳐 합의에 이른 사안을 법원이 뒤집으면서 결국 대법원 판례가 나올 때까지 혼란은 불가피해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부 교통사고 전문 렌트업체들의 배를 불리는 것은 물론, 이는 결국 소비자의 보험료 인상이라는 악영향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형 로펌 소속 한 변호사도 "연간 발생하는 대물교통사고가 275만건에 달하는데 외제차의 시장점유율 증가로 인한 사회적 비용에 더해 하차감과 같은 주관적 만족감까지 배상해야 한다면 일종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까지 초래할 것"이라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hummingbird@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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