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은 총재의 솔직 심정 "포워드 가이던스? 낯뜨겁다 생각"
주요국 비해 갈 길 멀단 취지…다양한 소통시도 이어갈 듯
(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취임 이후 다양한 시장 소통 시도를 이어온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3일 새해 첫 기준금리 결정 뒤에도 이른바 '한국형 점도표'를 공개했다.
한은의 통화신용정책을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위원 6명 중 3명은 적정 최종금리로 3.50%를 제시했고, 나머지는 3.75% 추가 인상 가능성을 열어두자고 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기준금리 결정 이후 "최종금리를 3.5%로 보는 위원은 3명, 3.75%는 2명, 금리 인상을 멈춰야 한다는 위원은 1명이었다"고 밝힌 것과 흡사한 발언이었다.
당시 이 총재의 발언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석 달에 한 번 발표하는 점도표와 닮아 있어 한국형 점도표라는 평가를 받았다.
점도표는 연준 위원 18명이 최종금리 등 특정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마치 설문조사에 응하듯 점점이 찍은 그래프다. 향후 금리 인상 향방을 직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실마리로 여겨지며 때로는 금리 인상 소식 자체보다 더 주목을 받는다.
이 총재의 한국형 점도표 시도는 지난 연말 시장이 한은의 금리 결정 방향을 추측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됐다. 이번 금리 결정에 앞선 전문가 설문에서 거의 전체에 가까운 다수가 0.25%포인트(p) 인상을 적중시켰던 것도 한국형 점도표의 영향이 컸다.
하지만 이 총재는 이번 금통위 기자 간담회에서 겸허한 태도를 보였다.
이 총재는 "그동안 우리들이 이런 것을 안 하다가 이제 금통위원들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공개하게 됐다"며 "이걸 포워드 가이던스라고 부르기도 사실은 좀 낯 뜨겁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직 연준 등 주요국 중앙은행의 포워드 가이던스에 비하면 갈 길이 멀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포워드 가이던스는 중앙은행이 의도하는 미래 통화정책 방향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안내하는 발언 등을 가리킨다.
이 총재는 지난해 4월 취임 이후 줄곧 시장 소통을 강조해 왔다. 특히 직원들에게 "한은의 생각을 적극 소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독려한 것으로 유명하다.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일하다 한은에 온 이 총재는 연준 등 주요 중앙은행의 포워드 가이던스와 적극적 시장 소통을 익히 알고 있다.
반면에 한은은 그간 소규모 개방 경제라는 한국의 특성을 고려해 향후 금리 인상 경로나 최종금리에 대한 생각을 함구하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 왔다.
전략적 모호성에 익숙한 직원들 입장에서는 이 총재의 소망은 일종의 모험이다. 일부 한은 고위 관계자는 이 총재가 적극적 소통과 함께 '정확한 정보 제공'을 강조한 터라 마냥 가벼운 마음으로 의견을 제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귀띔한다.
포워드 가이던스가 어려운 것은 이 총재도 마찬가지다. 이 총재는 작년 10월 미국 현지 행사에서 어려움을 내비친 바 있다.
이 총재는 지난 10월 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강연 이후 대담에서 같은 해 7월 제시한 포워드 가이던스와 관련해 "사람들은 베이스라인 시나리오를 조건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서약이나 약속으로 여기는 것 같다"며 "미래 금리 수준에 대해서는 가급적 언급을 피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 왔던 오랜 방식에서 벗어나기에는 현실적으로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여러가지 애로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당시 이 총재는 7월 금통위 기자 간담회에서 "당분간 기준금리를 0.25%p씩 점진적으로 인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물가가 경로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이란 전제 조건을 달긴 했지만, 한은에서 과거 보기 힘들었던 구체적 숫자를 제시한 것이었다.
하지만 금통위가 같은 해 10월 0.50%p 인상을 단행하자 시장에서는 "한은이 괜한 신뢰 하락으로 원화 가치 절하를 심화시켰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대해 이 총재는 시장과 언론이 아직 중앙은행 포워드 가이던스에 익숙지 않은 것 같다며, 어떤 속도로 관행을 개선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겠다고 밝혔다. 그 결과 11월 나온 것이 '한국형 점도표'였다.
이번 기자 간담회에서도 이 총재는 "금통위에서 논의되는 내용을 좀 더 어떻게 투명성 있게 여러분께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포워드 가이던스의) 목적"이라며 "금통위원의 의견은 항상 그 시점에서의 전제 조건이 있다. 그 전제 조건이 바뀌면 당연히 조정해 나갈 수 있는 그런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을 서서히 포워드 가이던스에 물들게 하기 위한 이 총재의 시도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는 "저희도 새로운 방법을 발전시켜 나가겠다"며 "시장과 언론도 '아, 이런 거구나'라는 것을 서로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icef0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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