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투수로 거듭난 안우진, WBC에서 볼 수 없다고? [경기장의 안과 밖]
메이저리그 최고 스타 반열에 오른 오타니 쇼헤이(28)는 2023년 3월 열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일본 대표로 뛴다. 투타 겸업으로 유명한 오타니는 최고 시속 165㎞를 던지는 강속구 투수다.
하지만 한국에서 가장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 안우진(23)은 WBC 무대에 서지 못할 것이다. 2022년 11월18일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대회 주관사인 WBCI에 50인의 예비 명단을 제출했다. 이 명단에 안우진의 이름은 빠져 있었다.
안우진은 휘문고 3학년이던 2017년 야구부 내 학교폭력 사건에 연루됐다. 그해 8월 휘문고 학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는 안우진을 포함한 가해자 4명에게 ‘조치 없음’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서울시교육청이 ‘명백한 하자’라며 학폭위 재소집을 요구했다. 당시 교육청은 “학교가 ‘학폭’ 사건을 은폐·축소했다고 비난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했다.
같은 해 9월 다시 열린 학폭위는 안우진에게 서면 사과와 교내 봉사 처분을 내렸다. 이 처분으로 안우진은 11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 스포츠공정위원회에서 자격정지 3년 징계를 받았다. 안우진과 가족은 대한체육회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이듬해 1월에 내려진 재심 결과는 같았다. 폭력행위로 3년 이상의 자격정지를 받을 경우 영구히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는 게 당시 규정이었다. 그래서 안우진은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뛸 수 없다. 대한체육회 소관이 아닌 WBC 대표는 이 징계와 무관하다. 하지만 KBO는 학폭 사건을 일으킨 안우진을 대표로 뽑지 않았다.
안우진은 2022년 시속 160㎞ 강속구를 던지며 프로야구 최고 투수로 거듭났다. 그리고 시즌 뒤 과거 학폭 사건을 다시 끄집어냈다. 11월18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안우진은 “여론의 질타 속에 사안의 구체적 진실은 묻혀버렸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많이 흘렀다고 해도 학교폭력이라는 네 글자의 주홍글씨로 모든 진실을 덮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주장했다.
안우진의 법률대리인인 백성문 변호사는 “2017년 KBSA와 대한체육회 징계는 ‘여론에 의한 징계’였다고 본다. 징계무효 소송이나 가처분 신청 등 법률적 대응에 앞서 여론이 달라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일종의 ‘여론전’을 했지만 여론은 별달리 움직이지 않았다.
KBO의 입장도 여전하다. 류대환 KBO 사무총장은 지난 12월27일 “안우진을 명단에서 제외한 결정이 달라져야 할 이유는 없다. 안우진을 대표팀에 뽑기 위해선 학폭 사건과 징계에 대한 ‘현상 변경’이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절대 경미한 사안이 아니다”
안우진의 입장문, 그리고 대리인이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주장한 ‘진실’은 두 가지였다. ‘사건 직후부터 피해자들과 합의를 했고 잘 지내고 있다’ 그리고 ‘학폭 사실은 있었지만 정도가 경미했다’.
하지만 두 주장은 ‘현상 변경’에 충분한 이유를 제공하지 못한다. 두 개는 안우진이 2018년 1월 대한체육회 재심에서 이미 주장했던 내용이기 때문이다. 복수의 법률 전문가들은 “안우진 측이 징계무효 소송을 하더라도 승소할 확률은 매우 낮다”라는 의견을 냈다.
2017년 학폭이 경미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못하는 전문가도 여럿이다. 당시 휘문고 학폭위 회의록에 따르면 안우진은 2017년 3월부터 5월 초까지 총 5건의 폭력행위를 했고 모두 휴대전화, 야구공, 배트(손잡이), 야구벨트 같은 도구를 이용했다.
김현수 전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장은 회의록과 사건 경찰조서 등 공식 자료를 검토한 뒤 “절대 경미한 사안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안우진 측이 2022년 11월 본격적으로 언론 대응에 나선 뒤 휘문고 전 코치 김 아무개씨는 “안우진이 나머지 가해 학생들 대학 진학을 위해 안고 갔던 것”이라는 취지로 한 매체와 인터뷰를 했다. 안우진이 동료들 잘못을 뒤집어썼다는 뉘앙스였다. 학폭위 프로세스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들은 이 주장에 대해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 당시 가해자 네 명 가운데 안우진만 유일하게 처분을 받은 이유는 그의 잘못이 가장 무거웠기 때문이다. 학폭위 회의록에서 다룬 폭력행위 8건 가운데 5건이 안우진 혼자 저지른 일이었다.
휘문고는 프로야구 선수를 여럿 배출한 명문이다. 그래서 야구부 주위에는 프로야구 스카우트나 에이전트들이 관여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복수 인사는 “당시 휘문고는 폭력 문제로 여러 말이 있었다”라고 밝혔다.
안우진의 ‘진실’은 설명력이 떨어지는 반면, 그가 5년 전 학폭 사건을 새로 끄집어낸 ‘동기’는 명확해 보인다. 프로야구 선수는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기 전까지 구단의 독점계약권인 보류권에 묶인다. FA 자격 취득에는 8시즌이 걸린다. 투수라면 96이닝 이상, 1군 등록일수 145일 이상이 1시즌으로 간주된다. 안우진은 프로 첫 시즌에 학폭 사건에 따른 구단 자체 징계와 2군행 등으로 1시즌을 채우지 못했다. WBC 대표선수로 뽑히면 1군 등록일수 최소 10일, 최대 60일을 포상으로 받아 FA를 1년 앞당길 수 있다. 법원이 대한체육회 징계를 무효화하거나 가처분 신청을 인용해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발탁될 경우 병역특례도 받을 수 있다.
이런 동기 때문인지 안우진은 2017년 학폭 사건에 대해 “선배로서 훈계 차원의 작은 행동”이라고 했다. 입장문을 통해 안우진을 옹호한 당시 학폭 피해자 세 명은 “피해자로 지목된 저희가 학교폭력이 아니라는데 왜 이 사건이 학교폭력이라고 지칭되는지 저희조차 이해할 수 없다”라고 했다.
스포츠 폭력은 한국 체육계의 해묵은 문제였다. 여러 노력으로 학교폭력은 줄어드는 추세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08년 운동선수 인권상황 실태조사에서 중고생 운동선수 78.8%가 폭력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2019년 조사에선 중학교 21.5%, 고등학교 23.7%로 완화됐다.
스포츠 폭력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폭력이 불가피하다’며 용인하는 태도가 여전히 체육계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안우진과 후배들의 입장문에서도 폭력 범위를 축소하거나 용인하는 태도가 보인다.
안우진은 이미 과거 학폭 사건으로 대가를 치렀다. 미성년자의 잘못은 성인의 그것에 비해 좀 더 정상이 참작돼야 한다. 하지만 18세 고교생이 아닌 23세 성인 안우진이 지금 학폭에 대해 보이는 입장은 과거 잘못과는 별개로 비판받아야 한다.
최민규(한국야구학회 이사)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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