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에서 신기술 사라졌다는 건 오판” “한국 산업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바뀌었다”

박건형 기자 2023. 1. 14.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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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환 포스텍 총장·유욱준 과기한림원장 라스베이거스 현장 대담

세계 최대 IT전시회 CES(Consumer Electronics Show)가 지난 8일(현지 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막을 내렸다.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이후 3년 만에 전면 오프라인으로 복귀한 이번 행사는 전시 규모와 관람객수 모두에서 세계 최대 전시회라는 위상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줬다. 전세계 174국 3100여 기업이 참여했고, 1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전시장을 찾아 장사진을 이뤘다. 한국은 무려 600여 기업이 전시에 나서 미국(1500곳)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가장 큰 전시 공간을 차지한 삼성전자·LG전자 부스에는 연일 긴 줄이 이어졌고, 한국 스타트업의 독특한 아이디어에 관심을 보이는 해외 투자자들도 많았다. 특히 올해는 기업 뿐 아니라 정치인들과 지방자치단체 관계자, 학계 인사들도 대거 CES 현장을 방문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 이후를 이끌어갈 기술과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이들에게 CES 2023은 어떤 시사점을 줬을까.

6일 CES가 열리고 있는 라스베이거스 현장에서 국내 공학계 최고 석학으로 꼽히는 김무환 포스텍 총장과 유욱준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KAIST 의과학대학원 명예교수)을 만나 올해 CES에 대한 평가를 들어봤다.

◇”인간 중심 기술이 대세”

김무환 포스텍 총장은 "새로운 기술이 시장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최소 5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박건형 기자

- CES가 3년 만에 오프라인으로 돌아왔다. 그만큼 기대치가 높았는데 실제 현장은 어떻게 느꼈나.

유욱준 “원래 내 전공은 생명공학, 의과학이었고 CES의 핵심인 전자 쪽은 다른 나라 세상이라고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과거를 돌아보면 생명이 어느 순간 의학과 합쳐져 의과학이 됐고 바이오로 불리는 새로운 시장이 창출됐다. 이제는 아무도 생명과 의학을 구분하지 않는다. CES 현장에서 헬스케어 같은 분야를 보면서 의과학과 전자공학 같은 다른 공학 분야가 융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의과학이 공학과 함께 뛰어야 하는 분기점을 지나고 있다. 2020년에 CES를 주최하는 CTA(미국 소비자 기술협회)측에서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 노스홀을 아예 헬스케어 분야로 채우겠다고 공언했는데 올해 현실화됐다. 또 다른 거대한 시장이 열리고 있는 셈이다.”

김무환 “2020년, 2022년, 올해까지 세 번의 CES를 현장에서 지켜봤다. 그 과정에서 기술이 과거처럼 기술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가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간 중심으로 기술을 보고 있다고 해야 하나. 바이오헬스 산업, ESG 산업 같은 분야는 기술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가,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기술인가 등을 먼저 생각한다. 이런 변화가 본격화되면 정말 큰 흐름이 될 수 있다고 본다.”

- 포스텍이 이번 CES에 이른바 ‘코로나 세대’로 불리는 3학년생 181명을 데려왔다.

김무환 “코로나 때문에 학생들에게 너무 기회가 없었다는 생각에 추진했다. 전시장과 식사 자리 등에서 학생들을 보면 캠퍼스에서 보던 학생들의 모습이 아니었다. 애들 얼굴이 왜 이렇게 달라졌냐고 물을 정도로 밝았다. 학생들에게 동기부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학생들은 뭔가 새로운 걸 보여주면 우리 같은 기성세대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얻는다. 교육이 수요자인 학생 입장에서 만들어져야 한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다. 교육 커리큘럼에 이런 부분을 반영하면 더 경쟁력 있는 인재를 키울 수 있을 거다.”

유욱준 “많이 보는 건 정말 중요하다. 세계적인 석학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그 사람들도 새로운 아이디어는 책상에서 생각나는 것이 아니라 놀 때 갑자기 생각이 난다고 하더라. 좀 과장해서 말하면, 이번에 CES에 와서 별로 본 게 없고, 이해를 한 것이 별로 없다고 해도 외국에 나온 것 만으로도 좋은 경험이 된다고 생각한다.”

김무환 “전시에 참여하는 스타트업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번에 보니까 부스를 차린 스타트업들은 몰려오는 투자자와 관람객 맞이하는데 바빠 정작 다른 전시는 제대로 못 보더라. CES에서 자신의 아이디어와 제품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스로를 더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다른 기업들이 어떻게 하고 있느냐도 챙겨봐야 한다.”

◇새 기술 정착에 5년 이상 걸려

- 유욱준 원장은 우리나라에 의공학이라는 분야를 확립했다. 이번 CES에서 헬스케어 산업의 트렌드를 보면서 어떤 것을 느꼈나.

유욱준 “한국 학계의 변화가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한국 학계에서 자신의 역량을 제일 과신하는 사람들이 의사들이다. 6년 동안 공부하면서 수많은 시험을 치르고 실습을 하면서 남들보다 훨씬 나은 능력을 갖게 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의학, 특히 임상 만큼 과거와 다르지 않은 분야가 없다. 다른 과학 분야는 끊임없이 변한다는 걸 인정하고 배우려고 노력하는데, 의사는 그렇지 않다. 헬스케어처럼 빠르게 트렌드를 읽고 선도해야 하는 분야에 기여하려면 의사들도 배워야 한다.”

김무환 “외국의 경우에는 헬스케어 기업을 의사과학자(MD-PhD)가 주도한다. 한국은 엔지니어가 헬스케어 기업을 한다. 여기서 단절이 생긴다. 우리가 외국과 경쟁하려면 결국 의사과학자를 어떻게든 양성해야 한다. 1년에 3500명 정도 되는 의사가 나오는데 최소 여기서 10% 정도는 의사과학자의 길을 가야 한다.”

유욱준 “가장 중요한 것은 의사가 공학을 대충 배우면 안된다는 거다. 공학의 수준도 최고여야지 세계적인 기술을 개발하고 기업을 만들 수 있다. 결국 의사과학자를 양성할 수 있는 대학은 연구중심대학이어야 된다고 본다.”

- 이번 CES에서 불황으로 혁신이 사라졌다거나, 새로운 기술과 미래상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견을 내놓는 사람도 많다.

김무환 “작년에는 메타버스, 디지털 헬스케어, 웹3.0 처럼 CES에 처음 등장하는 키워드가 많았다. 올해는 거의 없다. 사람들 입장에서는 ‘호들갑을 떨었다’ ‘실체가 없는 얘기였다’ 같은 비판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을 거쳐왔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코로나 시대에 새로운 개념의 단어와 트렌드가 대거 등장했고 이런 새로운 것들은 정착하고 뿌리를 내리는데 시간이 걸린다. 이런 과정을 무시하고 오판하면 안된다.”

유욱준 “맞는 얘기이다. 디지털 헬스케어, 메타버스 같은 신기술이 꽃을 피우는데 최소 5년에서 10년은 걸린다. 지금 당장 투자를 하고 인재를 키워야 직접 꽃을 피울 수 있다. 그때 새로운 트렌드가 완전히 주류가 된 다음에 뛰어들면 우리는 그 5~10년 뒤에나 인재를 육성할 수 있게 되는데 이미 기회가 없는 시점이 된다.”

◇한국 산업의 체질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변화

유욱준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

- 한국 기업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어떤 의미가 있나.

김무환 “한국이 많아진 걸 두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잘못된 생각이다. 메인 전시장인 LVCC에 들어갈 수 있는 기업은 한정돼 있고 결국 스타트업 중심인 유레카파크에 한국 기업이 많아진 셈인데, 다른 나라도 경쟁적으로 CES에 오는 건 마찬가지이다. 유레카파크는 각 나라의 정책을 보여준다. 최근 몇 년 새 스타트업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는 프랑스는 유레카관 맨 앞에 굉장히 크게 자리잡고 있다. 그 뒤도 일본관인데, 일본이 과거에는 스타트업 이미지가 없지 않았나. 이런 곳에서 한국이 존재감을 나타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유욱준 “이런 전시회에 한국이 메이저 주자가 된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다. CES를 주최하는 CTA에서도 공개적으로 한국이 아주 중요하고 훌륭한 나라라고 평가한다. 특히 과거가 아닌 미래를 핵심으로 하는 CES 같은 곳에 한국 기업이 많아졌다는 건 한국 산업의 체질이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바뀌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치나 여러 면에서 한국이 못하는 것도 많지만, 산업에서는 확실히 잘하고 있다. 앞으로 과학기술한림원도 차세대 회원을 선정할 때 과거에 뭘 했나 보다는 얼마나 새로운 걸 하고 있냐에 초점을 맞출 생각이다.”

- 한국의 소프트웨어 파워가 상당히 높아졌다는 평가가 있다.

김무환 “우리는 원래 하드웨어가 강한 나라였다. 하지만 이제 하드웨어냐 소프트웨어냐를 구분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서로 보완적이고 시너지를 내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하드웨어를 구동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잘 만드는 게 최우선이었는데, 이제 소프트웨어가 구현하고자 하는 조건의 하드웨어를 만들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결국 어느 한쪽만 잘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는 뜻이다.”

유욱준 “산업적인 관점에서 보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둘 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잘하는 건 어렵다. 현대 산업에서 모든 부문을 다 내재화할 수는 없다. 결국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것, 하기 힘든 걸 잘하는 회사와 협업을 얼마나 끌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협업을 잘하는 회사가 결국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이다.”

- 그 밖에 이번 CES에서 감명 깊었던 점이 또 있나.

김무환 “라스베이거스를 몇 년 째 오니까 이 도시 자체에 관심이 생겼다. 라스베이거스는 태생부터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도시이고, 또 슬럼을 다시 재개발해 성공한 도시재생의 상징이다. 한국 지자체들이 최근 균형 발전이나 인구 감소 등으로 고심하고 있는데 당연히 이 라스베이거스 같은 모델은 안 되겠지만 어떤 의미에서건 성공사례가 등장했으면 하는 생각을 해봤다.”

유욱준 “스타트업 창업자가 기업인들과 얘기를 해보면 전공이라는 게 별 의미가 없다는 게 인상 깊었다. 바이오 하는 사람들 상당수가 물리학, 산업공학, 전자공학 출신이었다. 결국 어떤 아이디어를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 찾는 게 미래 전략이다. 뻔한 얘기지만, 틀에 갇히면 안된다는 건 정말 중요한 포인트이다.”

/라스베이거스=박건형 논설위원

☞김무환 총장

서울대 원자핵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매디슨 위스콘신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한국 대표 원전 안전 전문가이다. 1987년 포스텍 개교와 함께 29세의 나이에 기계공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포스텍 학생·입학처장을 거쳐 2019년부터 포스텍 총장을 맡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자문위원,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원장 등을 역임했다.

☞유욱준 원장

서울대 식물학과를 나와 시카고대에서 생화학분자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2년부터 KAIST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 최초의 형질전환 흑염소 ‘메디’를 탄생시키는 등 분자생물학과 의과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로 꼽힌다. KAIST 의과학연구센터 소장, 의과학대학원 원장을 역임했으며 지난해부터 한국 최고 과학 석학 집단인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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