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겨울밤, 하얀 눈 이불을 깔아 놓았네

한겨레 2023. 1. 14.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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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 캠핑의 정석] [ESC] 캠핑의 정석: 경기 가평 설산 캠핑
번잡한 마음 품어 안는 겨울 숲
인적 드문 평일의 한적한 캠핑장
사락사락 눈 내리는 소리 포근해
박은 겨울에 더욱 빛을 발한다. 따뜻한 잠자리를 마련한 자동차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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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워진 마음에 힐링이 필요한 날, 가평에 자리한 숲 속 캠핑장으로 길을 나섰다. 눈부시게 하얀 설경의 낭만과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모닥불 앞 불멍을 상상하면서. 모닥불에 익혀 먹을 고구마도 챙겼다. 깨끗하게 씻어 잘 말린 후 호일에 돌돌 감아 놓은 고구마. 노랗게 익어 뜨거운 김을 뿜어내면, 나는 그것을 양손에 들고 호호 불어가며 따뜻한 겨울밤을 보낼 작정이다.

겨울 캠핑이 건네는 다정한 위로

고속도로를 벗어나자 금세 한적한 시골길로 들어섰다. 도착지를 몇 킬로미터 남기지 않고 구불구불한 산길이 나타났다. 지붕 낮은 집과 논밭이 눈으로 덮여 새하얀 카펫을 깔아 놓은 듯 눈이 부시다. 전날 내린 눈이 그대로였다. 자연을 그대로 끌어안고 사는 이런 시골 마을이 나는 참 좋다. 번잡한 도시를 떠나 자연을 듬뿍 느끼고 싶은 만큼 가는 길에서부터 벌써 기대감이 높아졌다. 멋들어진 풍경 담은 대형 캠핑장도 매력 있지만, 나는 아담한 숲 속 캠핑장을 더 사랑한다. 이번에도 그런 캠핑장을 찾았다. 경기도 가평 소담한 마을에 자리한 485캠핑장이다. 사이트 10개가 전부인 아담한 캠핑장에 계곡을 품고 있어 물소리, 새소리 들으며 마음 편히 쉬기 좋은 곳이랄까. 화장실, 개수대, 샤워실 모두 난방이 과하리만치 잘 되는 데다, 온수도 콸콸 쏟아지니 호사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지난해 12월20일, 캠핑장에도 하얗게 눈 카펫이 깔렸다. 평일인 데다 갑자기 영하로 기온이 뚝 떨어진 날씨 탓에 사람도 없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나 홀로 전세 캠핑이라니. 운이 좋은 날이다.

하얀 눈밭을 배경으로 차린 캠핑 식탁.

체온이 떨어지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모닥불 피우기. 불멍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겨울엔 아무래도 모닥불을 먼저 피워 놓으면 이래저래 두루 쓸모가 많다. 화로대 위에 철망을 놓고, 그 위로 주전자를 얹는다. 물이 데워지는 동안 핸드밀 그라인더에 향긋한 커피빈을 넣고 손잡이를 돌린다. 보글보글 물 끓어오르는 소리, 사가각 원두 갈리는 소리, 타닥타닥 모닥불 타는 소리, 계곡에 졸졸 물 흐르는 소리, 사락사락 눈 내리는 소리가 고요하고 작은 숲 속 캠핑장을 가득 메운다.

모닥불 앞에 앉아 직접 내린 커피를 마셨다. 이번 캠핑을 위해 고른 원두는 종종 가는 카페에서 겨울 시즌 한정 제품으로 내놓은 ‘윈터 블렌드’다. 바디감이 있어 그 이름처럼 겨울에 내리먹기 딱 좋은 맛과 향이 났다. 아침엔 좀 더 진하게 내린 후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넣으면, 소금 빵과 함께 근사한 아침 식사가 되어줄 것이다. 나만의 취향으로 고른 원두에, 오로지 내 입맛에 딱 맞춰 내린 커피를, 그때그때 내가 가장 원하는 장소에서,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며 맛보는 시간은 힐링이다. 캠핑은 언제나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캠핑에서 빠질 수 없는 ‘불멍’ 시간.

따뜻한 모닥불 앞을 떠나 오늘 밤을 보낼 곳은 차 안이다. 텐트를 치고 자는 캠핑도 좋지만, 겨울에는 아무래도 차박이 제격이다. 한겨울 영하의 날씨에 서슬 퍼런 동장군의 바람과 맞서 싸우며 텐트 설치와 철수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차박은 차 안에 잠자리만 세팅하면 되기 때문에 밖에서 덜덜 떨며 고생할 일이 없다.

나는 겨울을 대비하여 무시동 전력장치를 재정비했는데, 동계 필수 아이템으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한겨울에는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막아주는 게 중요한데, 차량 2열 시트를 앞으로 접어 바닥을 평평하게 만든 후 차량용 전기 매트를 깔았다. 바닥을 따뜻하게 데워도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한기 때문에 여전히 춥게 느껴질 수 있다. 무시동 히터는 엔진 시동을 끈 상태로 밤새 따뜻하게 공간을 데워준다. 전원 버튼을 켜고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실내 온도가 25도를 웃돌았다. 여기에 폭신한 이불을 덮고 누우면 천국이 따로 없다. 선루프 창밖으로 보이는 가평의 맑은 밤하늘에 별이 총총 빛났다. 만족스러운 겨울 차박이 완성되었다.

고민이 사소해지는 순간

느긋하고 한없이 여유롭기만 할 것 같은 캠핑이지만 낯선 땅에서 하룻밤을 살아내는 것은 사실 도시에서의 그것보다 성가신 일이다. 스스로 노동 없이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일, 저녁 식사를 끝내는 일, 잠자리를 만드는 일, 잠자리에 들기 전 벌여 놓은 짐 들을 한곳으로 모아 치워 두는 일 등이 그렇다. 일상에서 하는 것과 비슷하지만 수고로움이 다른 일들이다. 집에서는 정수기에서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될 일이 이곳에서는 식수대까지 걸어서 물을 길어 마실 물을 만드는 일이랄지, 설거지 하나 하려고 바리바리 사용한 그릇을 싸 들고 개수대까지 다녀오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랄지. 먹고 자는 일이 이렇게까지 수고로울 일인가 싶다가도 집에 돌아오면 막상 그 사소한 수고로움이 금세 그리워지곤 한다. 단순한 수고로움을 아무런 생각 없이 하다 보면 복잡했던 마음도, 서러웠던 어제도 아무것도 아닌 듯 사소하게 느껴졌다. 캠핑하러 간다고 해서 문제적인 상황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하루를 잘 보내고 나면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다시 내일을 씩씩하게 살아내곤 했으니까.

식사를 하고 홍차를 마시며 군고구마를 하나 다 먹을 때 즈음, 눈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내일 아침에는 눈이 솜이불처럼 소복이 쌓여 있을 것이다. 다정하고 따뜻한 하얀 겨울밤이 그렇게 저물어 가고 있었다.

△알아두면 좋아요

-불멍은 캠핑을 하며 얻는 자연이 주는 편안함과 기분 개선과 더불어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가만있음으로써 뇌에 휴식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몇 시간씩, 너무 오래 멍하게 있는 건 가급적 지양하자. 뇌를 오래 사용하지 않으면 뇌세포 노화가 빨라질 수 있으므로 하루에 한두 번 각 15분 정도가 적당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텐트나 캠핑카 안에서의 불멍은 금지. 밀폐된 텐트 안에서 모닥불을 피우면 일산화탄소 농도가 급상승하여 자칫 의식불명을 초래할 수 있다.

-불멍 시 불똥이 튀어 옷이 상할 수 있으므로 모닥불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거나 겉감이 튼튼한 소재로 된 의류를 선택하도록 하자.

전기 설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전기 매트 대신 ‘담요핫팩’을 이용하자. 초대형 방석 사이즈 핫팩으로 최고온도 63도, 온도는 20시간 유지된다.

글·사진 홍유진 여행 작가

1년의 절반은 타지에 살며 그곳에서의 삶을 기록한다. <오늘부터 차박캠핑>, <보통날의 여행>, <나만의 여행책 만들기>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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