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병 '쾅' 무례함에 심장 '쿵쿵'…'심야 편의점' 알바해봤다[남기자의 체헐리즘]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직접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합친 말입니다. 사서 고생하는 맘으로 현장 곳곳을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을 알리고, 그늘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딸랑' 하고 편의점 문이 열렸다. 20대 초반쯤 돼보이는 남성 넷. 술에 취했고, 마스크는 쓰지 않았다. 그 모습에 어쩐지 불안이 차올랐다. 남성들은 성큼성큼 소주 진열대로 갔다. 그러더니 이것저것 마구 담기 시작했다.
이윽고 술로 가득 찬 바구니. 남성은 그걸 가져오더니 계산대에, 그러니까 내 코앞에 세게 '쾅' 하고 내려놓았다. 병이 깨질 듯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적잖게 놀랐다. 뜻밖의 무례함에 심장이 쿵쿵거렸다.
이내 불쾌함이 몰려오는 걸 잘 숨기고, 내 손은 꽤 기계적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병을 하나씩 꺼내어 계산하기 시작했다. 바코드를 찍고, 그와는 반대로 병을 사뿐히 내려놓았다.
비닐에 담아달란 말에 봉투를 오른손으로 집으려 했다. 어쩐지 잘 잡히지 않았다. 풀을 묻혀서야 겨우 잡아 뜯었다. 병을 하나하나 담으며, 내 앞의 손님을 가능한 보지 않으려 했다. 빨리 나갔으면 싶었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무언가 떠들며 술 내음을 풍겼다. 말투와 몸짓이 거칠게 느껴졌다. '띠리링' 카드 승인 소리와 함께 계산이 끝났다.
나가는 이들에게 "안녕히 가세요"라고 했다. 대답은 누구에게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럴 수 있지'라고 속으로 생각했다가, 오른쪽에 놓인 치킨 튀김기에 비친 내 얼굴을 봤다. 굳어 있었다. '방금 불쾌했구나, 괜찮지 않구나', 그리 다시 감정을 솔직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잊을만하면 터지는 편의점에서의 폭행도 문제였다. 지난해 8월 18일엔 마스크 써달라는데 손님이 직원에게 주먹질했다. 지난해 7월 9일엔 편의점 앞에서 담배를 피우던 남성이, 꺼달란 점주 요청에 뺨을 때리고 폭언까지 했다. 그보다 전인 2016년 12월 경북 경산에선 야간에 홀로 일하던 직원이 취객의 칼에 찔려 황망하게 숨졌다. 20원짜리 비닐봉투를 무료로 주지 않는단 게, 가해자가 시비 건 이유였다.
편의점 강력범죄 건수가 매년 2368건(2020년 기준, 경찰청). 빼곡하게 벌어지는 사건을 어찌 막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여기서 일하는 이야기를 자세히 담는 기록으로나마 보탬이 되고자 했다. 그 안을 매일 지키는 존재의 의미를 세워 아무나 함부로 하진 못하게 하겠다고, 그런 생각이었다.
그래서 한 점주가 운영하는 편의점으로 갔다. 11일 저녁 8시에 도착하니, 저녁 시간대 아르바이트 직원인 여사님께서 나를 맞아줬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그는 여기서 일한 지 5년이 됐단다.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먹고 싶은 음료 고르라"며, 한사코 고사해도 기어코 가져다주던 다정한 이였다.
금세 파악한 편의점 분위기는 이랬다. 손님으로 왔을 땐 잘 몰랐었다. 일단, 대부분 손님들은 무척 급했다. 오피스텔 상권이라 젊은 사람이 많았는데, 바코드를 찍을 때부터 벌써 카드를 꽂아놓고 있었다. '빨리빨리, 빨리 계산해'란 무언의 압박이랄까. 그러니 카드 승인이 나는 걸 기다리는 동안, 또 봉투에 물건을 담는 동안, 현금의 잔돈을 집는 동안, 나까지 초조해졌다.
'빨리빨리'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도저히 안 되는 게 있었다. '담배 주문'이었다. 다른 물건은 손님이 가져온 걸 찍어주면 되는데, 담배만큼은 내가 골라서 건네줘야 했다. 그런데 종류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어림잡아도 130~140종류 정도는 됐다. 정확히 얘기해도 고르기가 난감한데, 대부분은 부정확한 발음으로 작고 빠르게 얘기해서 아주 곤란했다. 언어 듣기평가를 하듯 귓구멍을 개방해도 들리지 않았다. 예컨대 이랬다.
(출입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던힐 어쩌고저쩌고(어려운 이름) 주세요."(손님)
"네?(못 알아들음) 죄송한데, 뭐라고 하셨지요?"(기자)
"던힐 어쩌고저쩌고요(약간 목소리톤 올라감)."(손님)
(알아듣고 찾기 시작, 그러나 헤맴)"네, 잠시만요."(기자)
"저기 있잖아요, 저기. 아니, 거기 말고 거기, 왼쪽."(손님)
정신이 혼미해 끈을 놓으려 할 때마다, 5년 내공의 여사님이 구원투수가 돼줬다. 그는 담배 이름을 한 번에 알아듣고, 그 많은 담배 안에서 손님이 원하는 걸 정확히 집어 건넸다(대단). 손님이 나간 뒤 여사님은 "원래 편의점에서 처음 일할 때 제일 힘든 게 담배 고르는 것"이라며 "제대로 된 체험이 되려면 도와드리면 안 되는데… 못 찾았을 때 손님이 금세 화내는 걸 봐야 하는데"라고 웃으며 말했다. 등에 서늘한 땀 줄기가 흘렀다.
계산만 잘하게 된 거고 그건 편의점 일의 극히 일부였다. 신경 쓸 게 정말 많았다. "OO 어딨어요?"라고 물으면 일일이 찾아줘야 했다. 물건 위치는 기본적으로 다 알고 있어야 했다. "화장실 좀 써도 돼요?"라는 이에겐 비밀번호를 알려줘야 했다. "잔돈 좀 바꿔달라"며 5만원을 내미는 손님에겐 돈을 바꿔줘야 했다. 계산할 땐 같은 상품인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상품인지를 구분해 바코드를 신중히 찍어야 했다. 2+1인데 안 갖고 온 사람에겐 가져오라 하고 기다려줘야 했고, 할인 적용 상품이 맞느냐는 물음엔 찍어서 확인해줘야 했다.
그 와중에 2000원짜리 군고구마를 때때로 채우고, 바삭매콤치킨이나 자이언트후랑크 같은 걸 구워야 했다. 택배를 보내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찾으러 오는 사람도 있었다. 교통카드 같은 걸 충전하는 이도 있었고, 종량제 봉투를 구매하러 오는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은 카드였으나 할인 카드를 섞는 사람, 현금 내는 사람 등 제각각이었으며, 봉투도 비닐이냐 종이냐가 달랐고, 포장하는 데엔 시간이 걸렸다. 편의점 앞문과 뒷문은 수시로 열어놓은 채 떠나서, 또 닫으러 가야 했다. 혼란스럽고 어려웠다.
이 과정에서 하나라도 지연되면, 줄이 자주 늘어섰고, 발을 동동 구르는 손님들이 보이면 초조해졌다. 그럴 때면 단순한 산수도 머릿속에서 뒤엉켰다. 6400원 어치를 사고, 1만원을 내민 남성 손님에게, 얼마를 거슬러 줄지 헷갈려 고민하는 식이었다.
내 잘못이 아녀도 내 잘못이 됐다. 한 남성 손님은 봉투 달란 말을 안 했다. 물건이 많길래 "봉투 드릴까요?"라고 물으니, 그는 "그럼 이걸 내가 어떻게 가져가요?"라며 퉁명스레 면박을 줬다. 일순간에 얼굴이 화끈거렸고, 그러면서도 괜찮은 척 비닐봉투를 챙겨 하나씩 담았다. 고갤 숙이며 담는 게 차라리 표정을 숨길 수 있어 편했다. 별 것 아닌 것에 감정이 다쳤고, 그걸 추스를 새도 없이 또 계산해야 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같은 좋은 손님의 소소한 말에 잠시 상처를 덮었다가, 또 다른 무례함을 마주하고선 쉽게 덧났다. 나이든 남성 하나는 담배를 사면서, 만원짜리 한 장을 계산대에 휙 던졌다. 그걸 집는데 기분이 확 가라앉았다. 거스름돈을 집어 두 손으로 그에게 건네는 내가 싫었으나 별수 없었다. 한 중년 여성은 담배를 주문하며 대뜸 "OO 줘"라며 반말했고, 쉬이 못 고르자 "아니, 그거 말고", "거기 있잖아!"하며 불쾌하게 굴었다.
점장이 들려준 '진상 손님 열전'은 더욱 대단했다. "야, 가서 이거 가져와"하며 시켰단 사람, 비닐봉투 20원이라고 했더니 욕설을 퍼붓던 사람, 담배를 피우며 편의점 안에 들어왔단 사람, 물건을 안 사고 1시간씩 고르기만 한다는 사람까지. "편의점 안에서 일하는 이들을 너무 만만하게 보고 함부로 대하는 것 같다"며 그는 씁쓸해했다. 특히 여성이고 나이가 어릴 땐 막 대하는 게 더 심하다고. 원래 다른 직장에 다녔었단 그는 "편의점을 하며 온갖 인간 군상을 다 만난 것 같다"고 한숨 쉬었다. 그러게, 오죽할까 싶었고 잘 알 것 같았다.
뜸할 만하면 손님이 들어오는 종소리가 울렸다. 몇 명일지언정 없진 않아서, 맘 편히 졸 수도 없었다. 알람 소리처럼 정신이 번뜩 깨어서 앉아 있다가 일어났다. 새벽에 편의점에 갈 땐 언제든 갈 수 있어 그리 편하다 느꼈으면서. 그 안에 들어가니 이리 피곤한 게 될 줄 몰랐다.
잠을 깰 겸, 화장실에 가서 찬물로 세수를 했다. 일부러 바깥에 나와 찬 바람을 쐬며 졸음을 쫓았다. 기지개를 켜며 주위를 둘러보니, 인근 술집마저도 문을 다 닫은 뒤였다. 칠흑 같은 거리에 불을 밝히는 건 오직 편의점뿐이었다. 이 시간에 깨어 있는 게 무척 오랜만이었다. 깨어 있어야 할 이들을 위한 공간이 있단 게 누군가에겐 어쩜 위로가 될지도 모른다고. 그런 생각으로 힘을 채웠다.
다시 들어와 야식을 먹었다. 도시락과 삼각 김밥, 빵, 햄버거 등 유통기한이 임박한 걸 하나하나 살피며 폐기할 시간이었다. 열심히 유통기한이 지난 걸 찾았다. 딸기 우유와 딸기 크림빵, 군고구마, 구운 달걀을 밤참으로 맛있게 먹었다. 먹고 나니 눈꺼풀이 더욱 무거워졌다.
편의점 창고는 처음 들어가 봤다. 아래쪽은 음료 냉장고와 연결돼 있었다. 빠진 맥주와 소주, 음료를 채우면 되는 거였다. 상자를 들었다. 꽤 묵직했다. 그걸 뜯어 하나씩 밀어 넣었다. 냉장고 문을 열어 앞에서 뺄 때, 누군가는 이리 넣고 있었구나, 그 당연한 걸 새삼 깨달았다. 냉장고 안은 서늘했으나 부단히 움직이니 춥진 않았다.
그리고 이젠 물건 매대를 하나씩 채울 차례였다. 상자에 담긴 과자를 꺼내어, 비어 있는 칸에 집어넣었다. 점장이 "어디에 넣어야 할지 잘 보이지 않을 거예요"라고 했다. 생각보다 빈칸을 잘 찾는 걸 보며 김 점장이 "잘한다"고 칭찬했다. 과자를 좋아해서 편의점에 자주 들른 덕분이라고 했다. 과자가 비어 있지 않음에, 새벽 졸음을 쫓아가며 채우는 노고가 있을 줄은 잘 몰랐다. 그렇게 자주 왔으면서 모르는 게 많았다.
물건을 하나씩 채워가며 생각한 게 있다. 다양한 물건을 한 곳에서 팔아서 좋단 건, 그걸 다 채우는 게 실은 고단하단 것과 같단 걸. 창고 2층의 좁다란 다락에 몇 번이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내려오기를 반복하며, 그걸 집을 손님들을 상상하며 채운단 것도. 새벽 5시 30분, 거의 2시간을 두 사람이 함께한 뒤에야 물건을 채우는 일이 끝났다. 점장은 "심야 아르바이트 직원에겐 그냥 놓기만 하라고 하는데, 내가 할 땐 오전 직원이 편하도록 정리까지 다 한다"고 했다. 힘든 걸 알기에 힘듦을 감수하고 배려하는 거였다.
그러고도 사정이 여의치 않다. 점장은 "우리 편의점은 그나마 장사가 나은 편이지만, 한 달에 200~300만원도 벌기 힘든 곳이 많고, 심지어 수익이 마이너스인 곳도 많다"고 했다. 입지가 90% 정도는 좌우한단다. 본인 소유 가게가 아닐 경우, 해당 본사와 편의점이 6대 4로 나누는데, 인건비가 비싸서 "점주를 하느니 그 시간만큼 아르바이트 하는 게 낫다"는 자조까지 나온다고.
그러니 인건비라도 줄이려 점주 홀로 고군분투하는 곳도 많다. 그러면 24시간, 365일이 숨 가쁘단다. 천안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점주 김은경씨(가명)는 "하루 10시간씩 몇 년을 꼬박 일하다 보니 경조사에도 가기 힘들고, 건강검진 한 번을 가기가 힘들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24시간 점주님 혼자서만 근무하는 매장도 있다. 수면은 그때그때 쪽잠으로 해결한다고 들었다"며 "이렇게라도 안 하면 남는 게 없다"고 토로했다.
게다가 편의점 특성상 감당해야 하는 것들도 버겁다. 대표적인 게 10대 청소년들의 술·담배 구매 시도다. 점장은 "남의 신분증까지 가져와서 담배를 사려 한 아이들을 적발해, 경찰서에 데려간 적도 있다"고 했다. 내가 일했던 밤에도 10대처럼 보이는 청소년들이 자주 와서, 김 점장이 신분증 검사를 했다. 점주 김은경씨는 "실수라도 하면 벌금도 제 이름으로 나오고, 형사처벌과 행정처벌을 이중으로 받는다"며 "동네 경쟁 편의점은 그 문제로 '술, 담배 판매 정지를 받아 결국 폐업까지 했다"고 했다.
특히 심야 시간대엔 술에 취한 이들이 많이 와, 곤욕을 치를 때도 많단다. 그 역시 오롯이 점주와 직원 몫이다. 한 편의점 점주는 "소주병을 들고 휘청거리다 깨트리거나, 바지에 소변을 보고 욕설을 퍼붓거나, 와인 진열대를 다 넘어트려 전부를 깨트린 손님도 있었다"고 했다.
편의점의 '편의'란 말을 집에 와 새삼 찾아봤다. '형편이나 조건 따위가 좋음'이란 뜻이었다. 그건 손님에겐 그러할지 모르나, 운영하는 이들에겐 아닐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진지하게 묻고 싶다. 양쪽을 사려 깊게 고려해 살 수 있게 숨통을 트여주는, 진정한 편의를 주는 편의점이 될 수는 없겠느냐고.
에필로그(epilogue).
새벽 3시 반에 한 남성 손님이 찾아왔다. 그는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되는 야식과 소주 한 병을 들고 와 계산대에 놓았다. 하루를 몰두해 보낸 이의 고단함이 물씬 느껴졌다. 점장은 "인근 가게 사장님인데, 마치면 매일 그렇게 사 가신다"고 했다. 끝자락에 살 수 있는 소주는 고생했단 위로였으리라.
새벽 5시. 온장고에 캔커피가 비었기에 다섯 개를 채워 넣었다. 그때만 해도 아직 차가웠다. 새벽 6시 반쯤이 되자 출근 복장을 한 여성이 편의점에 들어왔다. 아까 넣어둔 캔커피 하나를 가지고서. 계산하려 손에 쥐었는데 따뜻해져 있었다. 넣어둔 보람이 있구나 싶어 뿌듯했다. 이른 시간에 주머니에 들어간 캔커피는 하루를 잘 살자는 응원이었을 거라고.
하루의 끝과 시작에 모두, 이리 편히 들를 수 있는 곳이 또 있을까. 늦은 시간 학원을 마친 학생들은 야식을 사러 와 재잘거렸고, 구두가 무거워 보였던 직장인은 도시락 하나를 늦게나마 챙겼으며, 복장이 남루한 어느 존재도 추위를 피하러 잠시 들어올 수 있는 곳이 또 있겠느냐고.
그러니 모두가 부디 조금은 더 존중했으면 싶다. 곁에 늘 친근하게 머물러 있는 편의점이 지치지 않도록.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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