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남수의 視線] 김건희 여사가 ‘보수1번지’ 대구 서문시장을 찾은 이유
지난 11일 대구 서문시장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시장에 사람이 많이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이날은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방문했기 때문이다. “김 여사를 보기 위해 모여든 상인과 시민들은 ‘예뻐요’를 연호했고, 김 여사는 손을 흔들거나 ‘하트 인사’를 하며 화답했다. 떡볶이 등 길거리 음식도 맛봤다.” 당시 분위기를 전한 언론 보도 내용이다. 이후 벌어지는 정치인이 전통시장을 찾았을 때의 그 흔한 레퍼토리는 생략하겠다.
이번에 김 여사가 설 명절을 앞두고 찾은 대구 서문시장은 TK 지역에서도 ‘보수 정치 1번지’라 불리는 곳이다. 이곳이 왜 보수의 상징이 됐을까. 서문시장은 조선시대 강경시장, 평양시장과 함께 조선 3대 시장으로 불릴 정도로 역사가 깊은 대구 최대 전통시장이다. 전통시장답게 이곳을 찾은 이들은 주로 장년층과 노년층이라고 한다. 보수지역에 보수적인 세대가 애용하는 시장인 셈이다. 서문시장이 ‘TK 보수의 중심지’를 상징하게 된 배경이다.
실제로 대선이나 총선 등 전국 단위 선거가 있을 때마다 보수정당들은 주로 이곳에서 세몰이를 해 보수표 결집에 나선다. 이곳에서 보수후보들은 서문시장의 뜨거운 지지를 확인하고, 자신감도 얻는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후보도 투표 전날 이곳을 찾아 마지막 유세를 했다. 당시 유세가 열린 서문시장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 선거 결과 나타난 ‘TK지역 몰표’는 윤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이 됐다. 이는 서문시장이 ‘보수의 성지’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 순간이기도 했다.
김건희 여사의 이번 대구 서문시장 방문은 지난 연말에 이어 또다시 공개적인 독자 행보였다. 김 여사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허위 이력 의혹이 제기되자 “남편이 대통령이 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면서 노여움을 거둬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대통령 부인으로서 공식적인 활동을 최대한 자제하겠다는 뜻으로 읽혔다. 실제로 김 여사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부부동반 공식 행사 외에는 가급적 독자적인 활동을 자제해 왔다. 그런데 이번 서문시장에서의 독자 행보는 이른바 ‘조용한 내조’를 하겠다는 기조가 바뀐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돌이켜 보면 김 여사의 행보 변화는 예고된 일이었다. 지난 5월 공식적으로 ‘대통령 부인’이 된 이후 김 여사의 일정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5월 2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 당시 함께 중앙박물관을 관람했고, 6월 13일에는 고 노무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권양숙 여사를 만났다. 다음날에는 국민의힘 중진의원 배우자 오찬을 했고, 17일에는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를 만나기도 했다. 특히 18일에는 심정민 소령 추모 음악회에 참석해 추모연설을 했다. 연말이 되자 시기적으로 관심이 집중되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행보를 강화하는 등 김 여사의 광폭행보가 두드러졌다. 그리고 설 명절을 앞두고 보수의 상징인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한 것이다.
그동안 김 여사의 행보는 언제나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언론의 보도 방식도 그렇고, 이를 접하는 국민의 관심도 이전의 대통령 부인과는 달랐다. 역대 대통령 부인의 경우 대통령처럼 호불호가 갈리지는 않았다. 대체로 호감이 더 컸던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에 대해서는 호감과 비호감을 보이는 국민으로 나눠져 있는 점이 다르다. 호감을 가진 국민도 많지만, 경멸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국민도 적지 않은 까닭이다. 이는 좌우 진영 간 극단적 대립이 격화되고 있는 한국 사회의 실상이 대통령 부인에게 고스란히 투영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렇듯 국민의 호감과 비호감으로 극명하게 갈리고 있는 상황에서 김 여사가 서울도 아닌 보수정치 1번지라는 서문시장을 방문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김 여사는 스킨십 강화를 통해 보수층의 호감을 확장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그리고 추측이지만, 당 대표 선거를 앞두고 혼란에 빠진 국민의힘 지지층을 향한 무언의 메시지일 수도 있다. 또한 부진을 면치 못했던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어느 정도 회복되면서 자신감이 생겼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 여사의 이번 서문시장 방문이 보수층을 결집하는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김 여사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나머지 국민들의 반감도 커지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김 여사의 이번 서문시장 방문은 ‘대통령 부인의 내조’가 아니라 ‘정치활동 그 이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강원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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