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가 ‘별종’이라는 기성세대에게···“ㅋ 어.”[책과 삶]
로버타 카츠 외 지음|송예슬 옮김|문학동네|376쪽|1만7500원
“안녕, 난 시스젠더 여성·헤테로. 어린 시절엔 주어진 정체성을 당연시 여겼기에 다양한 정체성을 고민해볼 기회가 많지 않았어. 앞으로 내 정체성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고, 사는 곳은 서울. 비건 지향, 페스코 베지테리언이야. 이 정도면 내 소개가 됐을까?”
‘Z세대 식’으로 자기소개를 해보았다. 이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다면, 아마 댓글은 “k.” ‘큰일났다’는 의미다. 밀레니얼 세대에 겨우 턱걸이한 기자가 어쭙잖게 Z세대 흉내를 냈으니, 댓글이 하나라도 달리면 다행이려나.
<GEN Z : 디지털 네이티브의 등장>을 읽었다면 자기소개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나를 구성하고 있는 정체성을 꼼꼼히 따져보고 조합해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 다만 정체성은 유동적이라 변할 수 있다. 인터넷에 지나친 흔적은 남기지 않길 바란다. 내가 한 말이 ‘진정성’이 없다고 여겨져 ‘저격’당할 수도 있다.
또 세대론인가? MZ세대를 분석한 책들은 많이 나왔다. 기성세대가 보기에 ‘별종’인 세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성세대의 눈높이에서 MZ세대를 대상화해 바라보는 시선이 많았다. 이 책은 조금 다르다. 정교하고 세심하다. Z세대 언어를 통해 Z세대를 설명한다. 스탠퍼드대학교, 옥스퍼드대학교, 킹스칼리지에서 인류학·언어학·역사학·종교학을 가르치는 저자들이 2016~2020년 미국과 영국의 18~25세 포스트 밀레니얼들을 대상으로 인터뷰와 설문조사를 진행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저술했다. 이들이 상용하는 7000만개 어휘를 수집해 ‘i세대 말뭉치’도 만들었다.
디지털 세상에 ‘연결된 채’ 태어난 존재
주어진 정체성 거부, 스스로 정체성 규정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진정성 중시
온·오프 구분 없는 소통의 달인들
Z세대는 인터넷의 등장으로 온라인 플랫폼이 대중화된 1995년 전후로 태어난 이십대 중후반의 ‘포스트 밀레니얼’을 지칭한다. 디지털이 없는 세상을 경험해본 적 없는 세대로, ‘연결된 채’ 태어난 존재다.
책은 Z세대를 인터넷에 빠져 있고 세상에 무관심한 개인주의자, 피상적이고 문해력이 떨어지는 세대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는 법에 통달했으며,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이를 공유할 공동체를 찾는다. 피상적 온라인 만남보다는 오프라인에서의 대면적 만남과 관계를 갈망한다.
기성세대가 물려준 망가진 세상을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이라며 비관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변화시키기 위한 사회활동에 나선다. 다양한 정체성을 찾아 스스로 정립하며 젠더·섹슈얼리티·인종·민족 다양성에 열려 있고 모두가 존중받는 세상을 꿈꾼다.
디지털 기술 발달로 Z세대의 특징이 전 세대로 확산되기 시작했고, 코로나19 팬데믹은 결정적 계기가 됐다. 대면 만남이 중단·축소되면서 온라인을 통한 만남과 소통이 일반화됐다. 포스트 밀레니얼을 이해하는 것은 팬데믹 이후 삶의 방식을 그려보는 데 윤곽을 제공할뿐더러, 앞으로의 세상을 그리는 데 있어 필수적이다. 책은 Z세대의 특징들을 깊이있게 파고들면서 그 이면의 사회적·역사적 배경을 살핀다. Z세대의 특성이 현실에 대응하기 위한 이들의 고유한 전략임을 설득력있게 설명한다. Z세대에 관한 훌륭한 보고서다.
#‘k.’와 ‘kk’의 차이…문자의 달인들
이들은 글자를 통해 어조를 달리하는 법을 체득했다. “문자로 나 자신을 훨씬 잘 표현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마침표는 좋지 않은 징조다. ‘Okay’를 줄여 쓴 ‘k’는 점 하나, 글자 수에 따라 전혀 다른 뉘앙스를 전달한다. ‘k.’는 굳이 자동 적용된 대문자 기능을 키를 눌러 되돌렸다는 의미다. 시간을 들여 마침표까지 찍었다. 불쾌감을 표현하는 ‘큰일났다’는 의미다. 반면 ‘kk’는 긍정적이고 유쾌한 함의가 있다. ‘ㅇㅇ’과 같이 글자 하나만 달랑 보낼 때의 퉁명스러움을 간편하게 완화한다.
이들은 언제나 깨어 있는(on) 상태다. “수업 도중에 ‘아빠한테 답장이 올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면 바로 그 순간 정신적으로 온라인 상태”가 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구분이 없다. 기본적으로 통합된 하나의 공간”이라고 인식한다. 연결돼 있기에 협력에도 능하다. 위키피디아와 같이 협력을 통해 공동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문화에 익숙하다. 자신의 공을 굳이 내세우지도 않는다.
인터넷의 유해성과 알고리즘의 편향성도 잘 인식하고 있다. 2020년 영국은 팬데믹으로 학생들이 교실에서 시험을 볼 수 없게 되자 고등학교 졸업시험 성적을 알고리즘으로 결정했다. 결과는 재앙에 가까웠다. 학생의 40%가 교사 예상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다. 학생들은 “우편번호가 아니라 가능성으로 판단하라”며 시위에 나섰다. 능력주의의 허구를 폭로한 소설 ‘넘을 수 없는 등급’으로 오웰 청소년문학상을 받았던 제시카 존슨은 알고리즘이 부여한 점수가 낮아 대학에 낙방했다. 자신이 쓴 소설이 예고편이 된 셈이다. 결국 영국 정부는 교사들이 매긴 점수를 인정하기로 했다. “알고리즘 편향성에 관한 Z세대의 이해도가 영국 정부보다 낫다.”
#LGBTQ+, They…‘미립자 정체성’
Z세대는 정체성을 “스스로 주장하고 개인적으로 형성해야 할 사회적 개념”으로 여긴다. 가족이나 사회가 이들에게 붙인 라벨들을 비판적으로 따져보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정체성을 작게 조각조각 내 재혼합하는 ‘미립자 정체성’을 갖는다. 중심엔 젠더·섹슈얼리티 다양성에 대한 인정이 있다. 성별 이분법을 넘어 트랜스, 논바이너리 등 다양한 젠더스펙트럼이 존재하며, 섹슈얼리티 또한 마찬가지다. 개인을 부르는 새로운 대명사(ze, they)도 생겨났다. 사회심리학자 필립 해맥은 Z세대가 ‘논바이너리 혁명’을 일으켰다고 말한다. Z세대는 젠더는 고정적이지도 이분법적이지도 않다는 생각을 미립자 정체성에 통합했다. <해리 포터>의 작가 J K 롤링은 “성별(sex)은 실존한다”고 글을 올렸다가 포스트 밀레니얼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았다. “롤링은 여성이자 성폭력 생존자로서의 경험을 앞세워 노골적인 트랜스 혐오를 은폐했다”는 이유였다.
다양한 인종·민족 정체성도 핵심 요소다. DNA 검사가 수많은 사람들의 혼혈 배경을 밝혀내면서 인종의 경계도 흔들리고 있다. 최근 ‘백인 남성’으로 여겨졌던 배우 에드워드 노튼이 북아메리카 원주민 포카혼타스의 12대손이라는 소식이 전해진 것을 떠올려보라. 영미의 포스트 밀레니얼 상당수는 영국 해리 왕자와 메건의 자녀를 ‘혼혈 인종’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선택의 문제’라고 보는 이들도 많았다.
Z세대의 정체성에 계층이 차지하는 부분은 낮았다. 하지만 계층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이들에겐 중요한 문제였다. 저소득층 가정에서 대학에 입학한 첫 세대 ‘플리(first generation, low income)’들은 자신의 계층을 두드러지게 인식했다.
#린스타, 핀스타, 긴스타…핵심은 진정성
Z세대는 다양한 플랫폼에 맞춰 자신의 디지털 정체성’을 큐레이션한다.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는 소식을 공식 계정인 ‘린스타(리얼 인스타그램)’에 올린다면, 술에 취해 찍은 사진은 ‘핀스타(가까운 친구끼리 공유하는 계정)’에 올린다. 게이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긴스타’(게이 인스타그램)도 있다.
Z세대에게 정체성과 진정성은 연결되어 있다. 남에게 진정성 있고 솔직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정성이 없다’는 것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어려서부터 경험한 온라인에서의 거짓, 조작, 위선은 Z세대가 진정성, 솔직함을 최우선 가치로 추구하게 만들었다. 베끼거나 훔치는 건 용서가 안 된다. 2019년 미국의 인플루언서 킴 카다시안이 속옷 브랜드를 ‘기모노’로 이름 짓자, 일본 전통문화를 도용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트위터에선 #KimOhNo 캠페인이 벌어졌다. 카다시안은 브랜드명을 바꿔야 했다.
#팸과 밈
팸(fam)은 마음을 터놓고 신뢰할 수 있는 가까운 친구, 진짜 자기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친구를 의미한다. “포스트 밀레니얼들이 정체성을 중시하는 방식이 대단히 사회적이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팸은 정체성과 문화에 따라서 구성돼 밈과 유머를 공유하며 유대감을 형성한다.
페이스북 그룹 ‘미묘한 아시아인의 특성들(subtle asian traits)’이 대표적이다. 한국 독자도 공감할 내용이 상당수다. ‘아시아인’으로 정체성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호주 1세대 이민자 자녀가 시작한 커뮤니티는 아시아인과 아시아계 미국인 등을 끌어들이며 급성장했다. “커다란 비닐봉지에 작은 비닐봉지를 꽉 채워 주방에 쟁여두던 엄마, 가족끼리 외식할 때 자기가 돈을 내겠다고 싸우던 친척 어른들에 관한 기억”을 털어놓는 사용자는 한국계임이 분명하다. 남아시아 출신들이 만든 ‘미묘한 카레인 특성들’에서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미묘한 반제국주의 아시아인의 특성들’까지 세분화된 커뮤니티가 등장했다. 인터넷을 통해 정체성을 발견하고 소통하는 일, 다원주의와 다양화를 잘 보여준다.
#인류를 위해 투쟁하는 세대
“클릭하는 순간 사회운동이 시작된다…지금 우리는 불의와 잔혹함, 부당함과 편견이 넘치는 세상을 목도하고 있다. 젠장, 이대로 둘 순 없어.”(지아드 아메드, 예일대학생, 틱톡 팔로어 1만7000명)
Z세대의 경험은 역설적이다.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협력을 통해 집단행동으로 옮기는 데 주저함이 없지만 기후변화, 사회경제적 불평등 등 ‘망가진 세상’을 물려받았기에 좌절감도 크다. 기후위기, 불평등, 폭력 문제는 이들에게 큰 이슈다. Z세대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들이 바꿔나갈 수 있는 것부터 바꿔나가는 데 주력한다. 한 포스트 밀레니얼은 말한다.
우리는 환경이 만들어낸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역사 흐름을 좌우할 의지를 가진, 사회의 능동적인 일원이다. 우리는 서로를 북돋우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것이다…어른들은 그러지 않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안다.
https://www.khan.co.kr/culture/book/article/202206241051001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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