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주함·사방탁자·'제주산' 의자 보니 "결국 마지막은 우리 고미술"
가나아트센터서 양 대표 소장품 전시…"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게 가장 비싼 것"
(서울=뉴스1) 김일창 기자 = "비싼 옷 입고 집에 고가의 이태리 가구 가져다 놓는 부자들도 결국 마지막에는 우리의 '고미술'이더라. 정말 우리의 고미술은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움과 귀함을 잃지 않는 소중한 유산이다."
KBS 'TV쇼 진품명품'의 감정위원으로 유명한 양의숙 예나르 대표는 우리의 고미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1990년대 고미술과 관련한 책 출판을 위해 글을 썼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폐기한지 2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 양 대표가 '진품 고미술 명품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았다.
출간과 함께 가나아트센터는 양 대표가 수집한 민예품 40여점을 선보이는 전시를 개최했다.
붉은 나무바닥과 하얀색 벽면을 배경으로 놓인 전시품들이 고요하다. 조선 19세기에 만들어진 사방탁자는 완벽한 비례감이 안정적이다. 작지만 균형 잡힌 서안(書案)에서 가난한 선비의 소박함이 엿보인다.
양 대표가 수집한 컬렉션은 저마다의 사연이 담겨 있다. 조선 19세기, 소나무로 만들어진 아담한 사이즈의 '너 말들이 뒤주'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숨어 있다.
"두 살 터울인 아이들이 초등학교에도 들어가기 전이었다. 당시 우리 집에는 쌀 너 말이 들어가는 뒤주가 있었다. 뒤주 중에는 좀 작은 편이다. 어느 날 아파트로 쌀을 팔러 온 아주머니에게 쌀 너 말을 샀다. 뒤주에 쌀을 담아보니 아뿔싸, 쌀의 양이 꽤 모자라는 게 아닌가. 쌀 뒤주는 계량이 정확해서 오차가 있을 수 없다. 허겁지겁 뒤쫓아 나가 모자라는 양을 다시 확인하고 쌀을 더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그 뒤주 덕분이었다."
제주산 알반닫이도 작고 소박하지만 힘이 있다. 알반닫이의 '알'은 작다는 뜻인데, 이 반닫이는 양 대표의 어머니가 45년 전 제주에서 상경하면서 딸에게 준 선물이었다.
양 대표는 이 반닫이에 대해 이렇게 회고한다.
"마흔이 넘어 나를 낳은 어머니는 나의 유일한 후원자이자 소소한 것도 투정부릴 수 있는 대상이었다. 관절도 안 좋은데 먼 곳(제주)에서부터 그 무거운 것을 힘들게 끌고 왔다며 어머니에게 오히려 역정을 냈다. (중략) 우리가 흔히 아는 고가의 반닫이는 아니지만, 나에게는 첫아이를 키우며 사용하던 추억과 친정어머니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에 결코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소중한 반닫이다."
전시된 민예품 중에 양 대표가 가장 아낀다는 건 고려말에서 조선 초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염주함'이다. 행자나무로 만들어진 이 염주함은 승려들의 염주를 보관하던 함이다. 가운데가 뻥 뚫린 도넛모양인데 상태가 깨끗하다.
양 대표는 "이 염주함은 제가 갖고 있던 금을 다 팔아서 산 것"이라며 "값이 비싸다고 소중한 건 아니지만 염주함은 표면이 평면이 아니라는 점에서, 부착한 경첩마다 일일이 표면에 상응하도록 미세하게 굴린 것을 보면 어느 하나 허투루 다루지 않은 장인의 정성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 염주함의 특징은 못을 찾을 수 없다는 데 있다. 양 대표는 "금속장식을 표면에 부착하기 전에 'ㄷ'자형 못을 보이지 않게 속에 박고 옻칠을 쌓아 올리며 고정시켜서 못을 보이지 않게 했다"고 설명했다.
가로, 세로 각 5칸, 총 25칸으로 조선 19세기에 만들어진 약과판은 재미있는 민예품이다. 각 칸에는 한자가 한 글짜씩 쓰여 있는데, 오른쪽 끝부터 아래로 네 글자씩 따서 해석하면 '다섯 아들이 과거에 오르다, 과거 시험에서 수석으로 급제하다, 갑자기 많은 재물을 모으다, 나날이 재물이 생기다, 적은 자본으로 큰 이익을 얻다'라고 해석이 가능하다.
가장 왼쪽 줄 아래에서부터 위로 네 글자를 읽으면 '복과 이익은 모든 것의 근본이다(복리만본)', 맨 아래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네 글자를 읽으면 '황금이 만 냥, 많은 부를 쌓다(황금만냥)'라고 적혀있다.
양 대표는 "약과판이 방송에서 소개된 후 1년 가까이 지났을 무렵, 초대받은 어느 전시회에서 우연히 이 물건을 다시 만났다"며 "방송에 출연했던 출품자는 나에게 구매를 적극적으로 권유했고 시간이 훌쩍 지난 후에 나에게 오게 됐다, 참으로 인연은 알 수 없는 일이다"라고 회상했다.
출품된 작품 중에서 '제주산' 나무 의자와 조선 19세기 오동나무로 만들어진 사방탁자는 가장 모던하다. 제주는 화산섬이기 때문에 배수가 잘 된다. 물을 머금어야 사는 나무, 물이 잘 빠지는 토양, 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제주나무는 그래서 대패질도 되지 않을 만큼 단단하다고 한다.
이 나무로 만들어진 의자는 어딘가 살짝 부서지고 깎였지만 지금도 의자의 역할을 충분히 해낼 것처럼 보이면서도 안정적 비례감으로 투박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사방탁자는 제주산 의자와 반대로 조신하다. 고요한 전시장 안에서 고요하게 서있다. 누가 봐주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듯, 스스로 소중함과 고귀함을 아는 느낌이다.
어느덧 70대 후반으로 접어드는 양 대표는 고미술을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다고 고백한다.
"옛날에는 값이 비싸고 귀하면 더 소중하다 생각했는데, 그런 개념은 나이가 들면서 사라지더라고요. 뭐든지 내가 사랑하고 아낄 줄 아는 게 가장 비싼거라고 생각해요."
이번 전시는 이달 29일까지 열린다.
◇ 진품 고미술 명품 이야기 / 양의숙 저 / 까치 / 2만5000원
ic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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