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다시 시작된 반도체 패권 전쟁, 무사시를 찾는 현대 전략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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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손무)’과 ‘전쟁론(클라우제비츠)’은 많이 들어봤을 듯합니다. 현대 전략가들이 많이 찾는 책입니다. 이 두 권과 함께 세계 3대 병법서로 꼽히는 ‘오륜서’는 약간 낯설게 들립니다. 이 책은 일본의 검객 무사시가 썼습니다. 그는 전란의 시대인 17세기 무사로 살았습니다. 60차례 결투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어 ‘검성(劍聖)’으로 불립니다.
현대 전략가들이 무사시를 찾는 이유가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전략 전술을 구사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검술을 썼습니다. 복수에 불타는 청년 검객을 상대할 때는 예정됐던 시간보다 늦게 도착해 화를 돋워 평정심을 잃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 전략을 간파한 상대와 겨룰 때는 일찍 도착해 나무 위에서 기다리다가 단칼에 베어 버립니다. 때로는 장검과 단검 두 자루를 사용하기도 하고 긴 칼을 쓰는 무사에게는 섬에서 결투를 청한 후 칼 대신 노를 무기로 썼습니다. ‘전쟁의 기술’을 쓴 로버트 그린은 “무사시가 모든 결투에서 승리한 요인은 단 한가지였다. 적과 상황에 따라 전략을 바꿨다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나폴레옹도 비슷합니다. 그가 승전을 이어 갈 때 전쟁의 원칙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나폴레옹은 “어떤 원칙도ᅠ신봉하지ᅠ않는다. 나는ᅠ항상ᅠ상황의ᅠ지배를ᅠ받아 왔다”고 답했습니다.
전략이 중요한 바둑에서는 이 같은 ‘표변’ 또는 ‘변심’의 힘이 더 두드러집니다. 세계 바둑 1위인 한국의 신진서 기사를 비롯한 고수들은 가끔 이해할 수 없는 수를 둡니다. 버리지 않아도 될 돌들을 버리고 더 많은 돌을 잡으려고 갑자기 방향을 트는 표변은 그들의 트레이드 마크입니다.
기업 전략을 보여준 대표적 인물은 스티브 잡스입니다. MS-도스 대신 마우스로 클릭하는 매킨토시를 내놓은 것은 시작이었습니다. “요소는 식상하지만 조합은 새롭다”며 휴대전화, MP3 플레이어, 카메라 등을 합쳐 스마트폰 시대를 열었습니다. 스마트폰 크기는 절대로 키우지 않겠다더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도전자인 삼성을 겨냥해 큰 화면의 제품으로 방어에 나섭니다. 전략가들은 이 같은 변심과 표변이 탁월한 경영자들의 공통적 특징이라고 말합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반도체 전쟁 50년사를 다뤘습니다. 노벨상 수상자였지만 성질이 더러워 사업에 실패한 반도체의 선구자 쇼콜라, 그를 떠나 새로운 회사 페어차일드반도체를 차린 8인의 배신자는 반도체 산업을 열었습니다. 1960년대와 1970년대는 미국의 시대였습니다. 일본 기업들은 미국을 왕좌에서 끌어내립니다. 특유의 장인 정신과 원가 경쟁력, 정부 지원을 더해 1980년대와 1990년대 초 세계 반도체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1990년대 초까지 세계 10대 반도체 업체 중 상위 3개사를 포함해 6개가 일본 업체였을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10대 업체에 일본 업체의 이름은 없습니다. 일본 기업들의 저승사자로 불리던 삼성전자는 판을 흔들어 버렸습니다. 일본 반도체는 궤멸합니다. 최근에는 세계 1위 자리를 넘보는 대만의 TSMC, 반도체 패권까지 노리는 중국 기업들이 더해져 또다른 50년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이 패권 경쟁에서 얻을 수 있는 결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승자는 급변하는 현재와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집착했고 패자는 과거에 집착한다.” 군사용 수요를 믿고 가격 경쟁력보다 고성능에 집착했던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제조업 경쟁력을 확보한 일본 기업들의 먹잇감이 됐습니다. 일본 기업들도 승자가 된 후 특유의 모노즈쿠리에 집착합니다. 일본 기업들이 잘 만든 제품을 팔려고 할 때 한국 기업들은 성능은 좀 떨어져도 팔릴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으며 일본을 추격하고 추월해 버립니다. 상황의 지배에 자신을 맡긴 결과입니다.
인텔을 위기에서 살린 앤디 그로브는 “창업을 한다면 이 사업을 영위하겠는가”라는 질문에 답합니다. 경쟁력 없는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접고 비메모리 사업에 집중해 다시 왕좌에 올랐습니다. 부족하지만 이 스토리를 이번 호에 압축해 담아봤습니다.
이런 전략을 구사한 경영자의 존재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건희 삼성전자 전 회장은 1993년 이런 말을 합니다. “이제 일본에는 마쓰시타도 없고 혼다도 없다. 한국 기업들에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다.” 마쓰시타는 경영의 신으로 불린 파나소닉 회장이고 혼다는 기술의 혼다를 만든 창업자입니다. 이 회장의 예언은 현실이 됐습니다.
그렇게 30년이 지나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추월의 시대를 이끈 한국 기업의 리더들은 대부분 퇴장했습니다. 다시 시작된 반도체·제조업 전쟁에서 새로운 리더들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합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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