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풍향계] 김동연·홍남기와 확실히 다르네…7년 만에 ‘닮상 부총리’ 뽑힌 추경호
정책 실무 맡은 사무관에 직보 기회 줘
대면 후 함께 셀카 찍어 얼굴·이름 기억
기획재정부 직원들이 조직 수장인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을 지난해 최고의 상사로 뽑았다. 기재부에서 현직 장관이 베스트 상사에 뽑힌 건 최경환 전 부총리 이후 7년 만이다. 2014년 1차관을 마지막으로 기재부를 떠났던 추 부총리는 작년 5월 8년 만에 친정으로 돌아오자마자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화석처럼 굳어버린 조직 분위기를 유연하게 풀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부총리 보고 시 담당 실·국장이 아닌 실무자가 직접 자신이 맡았던 업무를 설명하도록 해 주인의식을 심어주고, 보고를 마친 직원 얼굴을 기억하기 위해 함께 셀카를 찍는 소통 행보가 대표적인 장면이다. 관가와 여의도를 두루 누빈 경험을 토대로 잡무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후배들을 믿고 맡기는 태도 역시 추 부총리를 닮고 싶은 상사로 만든 비결이란 분석이 나온다. 모두 전(前) 정권 부총리들에게선 볼 수 없던 모습이다.
무엇보다 추 부총리는 문재인 정부 5년간 청와대 하명 지시를 수행하느라 ‘9전 9퇴’라는 비아냥을 들었던 경제부총리의 위상을 되살렸다는 평가를 듣는다. 문재인 정부의 비정상적인 재정정책과 부동산 규제를 전면적으로 되돌리는 국정 정상화 작업을 추 부총리가 주도하고 있어서다.
14일 기재부에 따르면 추 부총리는 국가공무원노동조합 기재부 지부가 최근 실시한 ‘닮고 싶은 상사’ 투표에서 최다 표를 얻으며 베스트 상사의 영예를 얻었다. 국장급 이상 5명과 과장급 11명 등 15명도 추 부총리와 함께 베스트 상사에 이름을 올렸다. 기재부 노조는 지난 2004년부터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닮고 싶은 상사를 조사해 발표하고 있다.
현직 부총리가 닮고 싶은 상사에 뽑힌 건 2015년 최경환 전 부총리 이후 7년 만이다. 추 부총리는 국회의원이 되기 전부터 후배 직원의 얘기를 잘 들어주고 좀처럼 화를 내지 않으면서 이끌어가는 덕장(德將)의 리더십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배려심 깊고 온화한 성품은 8년 만에 장관으로 돌아온 기재부에서도 여전했다.
지난해 5월 23일 취임 후 첫 확대간부회의를 주재한 추 부총리는 “보고서를 만든 과장·사무관도 보고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기재부가 정부과천청사에 속해있던 2013년 이전의 보고 문화를 되살리겠다는 것이 추 부총리 의도였다. 기재부는 각종 경제정책을 과(課) 단위로 추진한다. 기재부 과장은 정책 추진의 실무를 이끄는 간부다.
과천 시절 기재부는 보고서 작성 책임자인 과장급 간부가 부총리에게 직보하는 걸 기본 원칙으로 삼았다. 뛰어난 보고서를 처음 기안한 사무관도 과장의 보고 자리에 종종 배석했다. 이런 보고 방식은 업무 최일선의 실무자가 부총리 피드백을 직접 듣고 업무에 참고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적이고, 업무에 대한 주인의식과 동기 부여로도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서 기재부를 이끈 김동연·홍남기 전 부총리 재임 기간에는 실무자가 장관에게 직보하는 광경을 볼 수 없었다. 부총리가 업무 보고를 받을 때는 해당 실·국의 책임자급인 실장이나 국장만 들어오도록 하고, 과장을 부르는 일도 흔치 않았다. 이 패턴이 굳어지다 보니 부총리와 실무진을 잇는 공감대는 점점 사라져 갔다. 부총리가 구름 위 존재가 되니 조직 분위기도 경직적·수직적으로 굳어갔다. 8년 만에 친정으로 돌아온 추 부총리가 가장 먼저 소통 문화 부활에 시동을 건 이유다.
추 부총리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보고를 마친 사무관과 종종 셀카를 찍어 남기기 시작했다. 부총리이자 정치인으로서 만나는 사람이 워낙 많다 보니 한참 어린 후배 얼굴을 기억하는 일이 녹록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사진 한 장 찍었다고 모든 얼굴과 이름이 외워지는 건 아니지만, 후배를 잊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 자체가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조직 수장인 추 부총리가 최다 득표자라는 사실만 두고 기재부 노조의 닮고 싶은 상사 투표를 아부성 행사로 치부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다. 이 이벤트는 후배들의 ‘잔인할 정도로 솔직한’ 평가로 유명하다. 기재부는 베스트 상사를 선정할 때 직원에게 인기가 없는 ‘워스트 상사’도 함께 뽑는다. 대외적으로 공표하지 않을 뿐이다. 김동연·홍남기 전 부총리는 모두 워스트 상사에 뽑힌 전례가 있다.
이 중 김동연 전 부총리는 2018년 대변인실 숙청 사건으로 후배들에게 신뢰를 잃었다. 당시 김 전 부총리는 청년 일자리 대책을 비롯한 기재부의 주요 정책 홍보가 미흡하다며 대변인실에 불호령을 내렸다. 그는 “대변인실 인원도 많은데 나를 위해 한 게 뭐가 있느냐”고 호통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사건 직후 대변인실과 별도로 운영됐던 미디어기획팀이 대변인실로 통합되고, 대변인실 사무관(5급) 9명 중 4명이 교체됐다.
역대 최장수 기재부 장관 타이틀을 보유한 홍남기 전 부총리도 임기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의 하명식 정책 추진에 질질 끌려다니면서 ‘홍백기’라는 별명을 얻은 바 있다. 기재부 내부적으로는 누적되는 인사 적체를 해결하는 데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고, 업무 시간에는 지나치게 작은 부분까지 세세하게 간섭해 직원들 숨통을 조인다는 평가가 많았다.
이런 이유로 문재인 정부에서는 닮고 싶은 상사 투표를 할 때 마다 부총리가 워스트 상사에 선정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난감한 소문 때문인지 2020~2021년에는 장·차관에 대해서는 직원들이 평점을 매기는 방식으로 리더십과 업무 능력 등을 평가했다. 그러나 추 부총리 취임 후 과거처럼 장·차관도 닮고 싶은 상사 투표 대상에 포함하는 걸로 리더십 평가 방식을 다시 바꿨다.
추 부총리는 최다 득표 베스트 상사 선정에 대해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고물가·고금리로 경기가 어려운 상황을 의식한 듯했다. 그는 “우리 직원들이 날 믿고 잘 따라주는 점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면서도 “지금은 오직 민생 안정과 경기 둔화 방어에 주력해야 할 때”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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