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언의 책과 사람들] 돌아올 수 없는 경계인, 최남주
[서울=뉴시스] ‘도시문화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영화문화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문제는 강력한 ‘서울 중심주의’다. 한국영화의 역사를 담고 있는 대부분의 책은 서울을 중심으로 서술된다. 시작부터 단성사, 조선극장, 우미관 등 서울 중심가에 있던 영화관이 등장한다. 영화제작의 주요 무대는 한국영화를 상징하는 또 다른 이름, 충무로만 있을 뿐이다. 우리 영화사에서 오랫동안 지방은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간주됐다. 그러한 인식에 나 역시 일정하게 영향을 끼쳤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지방의 제법 큰 도시에는 지역의 명소인 영화관이 있었고, 서울과 다른 영화문화가 꽃 피었다. 1960년대 영화산업이 팽창하던 시기에는 지방의 읍면소재지까지도 영화관이 들어섰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 서울과 지방의 대도시로 사람이 몰리면서 농촌 인구는 급속하게 줄어들었다. 관객이 줄어든 지방 소도시 극장들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흘러 이런 지방 극장에 대한 기억도 사라져 갔다.
지방의 영화사는 주로 흥행의 역사였기에 영화 연구자들의 주된 연구대상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사 연구자 위경혜 선생은 일찍부터 지방의 극장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연구를 뚝심 있게 해왔다. 그는 사라져가는 광주의 극장에 관심을 기울여 지역영화사 연구의 초석이 되는 ‘광주의 극장문화사’(다지리 2005)를 발간했다. 이를 시작으로 관심 영역을 넓혀 ‘호남의 극장문화사’(다할미디어, 2007)를 썼고, 지금은 다른 지방의 극장문화사도 연구하고 있다.
지방의 흥행 문화를 연구하다보니, 그의 연구는 서울과는 다른 그 지방만의 흥행 관행이나 흥행물, 흥행장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광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랜 극장인 광주극장에 주목해 ‘광주극장’(전남대학출판부, 2018)이라는 책을 발간한 것도 그 예다. 이뿐 아니라 전라도 지역의 전통연희와 결합한 흥행방식, 일제강점기 일본흥행문화의 흔적이라 할 수 있는 종이연극, 해방 후 지방 방방곡곡까지 영화 흥행을 이어간 이동 영사대와 지방 흥행사들의 활동 내역이 그의 연구를 통해 빛을 보았다. 위경혜 선생은 기록되지 않았기에 어쩌면 사라졌을지도 모를 이런 작업들을 직접 발품 팔아 소개했다.
그의 연구는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시작된다. 많은 사람과 대화하고, 그들을 통해 수집된 기억들이 모여 지역 영화사의 한 시대를 그려낸다. 딱딱한 사실의 나열이나 세련된 서구의 영화이론을 대신해,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과 그 기억을 풀어내는 그들의 구수한 사투리가 녹아져 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그의 글에서는 일반 학술서에서 볼 수 없는, 그 시대를 살았던 생생한 사람의 표정을 발견할 수 있다. 어쩌면 이 다양한 목소리들이 주는 인상이야말로 그의 책이 주는 미덕일 것이다.
지방 흥행문화에 천착해 연구한 위경혜 선생이 최근 1930년대의 걸출한 영화기업인에 대한 책을 냈다고 하니 참 반갑다. ‘돌아올 수 없는 경계인 최남주’(한국학호남진흥원, 2022)라는 책이다. 최남주는 호남을 근거지로 활동한 인물이었고 광주극장과도 연결되어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호남출신 영화인들의 중심에 서 있었기에 이 책은 위경혜 선생의 호남영화사 연구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다. 때마침 최남주의 영화 활동을 대리했던 영화제작자 이재명의 사진첩이 한국영상자료원을 통해 공개된 상황이다. 이 책은 최남주가 창립한 조선영화사의 의정부촬영소 흔적을 보다 입체적이며 생생하게 볼 수 있게 도울 것이다.
최남주는 영화사 연구자라면 다들 관심을 가지는 인물이다. 영화배우가 되고 싶었던 청년 거부는 금광개발에 성공해 당시 조선에서 가장 큰 영화회사를 세워 운영했으나, 해방 직후 혼란한 상황에서 종적이 묘연해졌다. 어찌 보면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인생을 살았던 인물이지만 가족과 지인들의 철저한 침묵 속에서 잊혀갔다.
위경혜 선생은 여전히 종적이 묘연한 최남주라는 영화기업가를 역사의 무대 위로 올려놓았다. 하지만 아직 많은 부분이 공백으로 남아 있다. 이제 최남주의 삶을 기억해 냄으로써 그 공백을 조금씩 메우는 작업을 시작할 때다. 기억하는 것만큼 중요한 추모의 의식은 없기에 그렇다.
▲한상언 영화연구소대표·영화학 박사·영화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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