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행복을 자랑하지 않아야 행복하다
핀란드 사람들은 왜 이렇게 행복할까. 핀란드는 벌써 수년 째 여러 문화권에 걸쳐 행복과 관련한 대규모 조사에서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여러가지가 제시되고 있지만 몇 가지 주로 이야기 되는 것이 바로 “자신의 행복을 자랑하지 않는 것”, “사회적 비교가 심하지 않은 것”, 또 “사회적(social), 잠재적(potential), 정신적(psychological) 자유도(freedom)가 높은 것”이다.
'사이언티픽 어메리컨 마인드(Scientific American Mind)'에 실린 한 기사에 따르면 핀란드 사람들은 행복의 중요성을 일부러 이야기하지 않고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자랑하지 않는 편이다. 많은 사회에서 사람들이 실제 자신의 삶이 어떤지와 상관 없이 SNS 등에 행복해 보이는 모습만을 전시하며 마치 “완벽한 삶”을 살고 있는 듯 보이고자 노력하는 풍조가 나타난다.
하지만 실제 삶에는 즐거운 순간과 그렇지 않은 순간들이 모두 가득하다. 우리 모두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우울해지고, 무엇을 위해 이렇게 애쓰는 건지 고민에 빠지기도 하고, 삐그덕 거리는 관계에 고뇌하고, 직장을 그만두고 싶다며 괴로워한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러한 모습은 숨기고 마치 즐거운 일만 일어나는 것처럼 서로서로 행복을 자랑하는 습관이 존재한다.
이는 일면 많은 사회에 존재하는 좋은 사람에게는 좋은 일만 일어나고 나쁜 사람에게는 나쁜 일만 일어난다는 믿음(공정한 세상에 대한 믿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인생을 잘 살고 많은 노력을 했다면 행복할텐데 그렇지 않다는 것은 뭔가 노력을 하지 않았거나 멍청한 선택을 했다고 보는 것이다.
불행은 마치 자연재해처럼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기도 하고, 타고난 환경 등에 의해 생겨나기도 하지만 행복은 노력으로 성취하는 것이라고 보는 단순한 시각이 자연스럽게 겪게 되는 삶의 다양한 문제를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하게 만드는 것이다. 행복하지 않음을 개인의 잘못인 것처럼 비난하는 사회에서 불행은 자연히 숨겨야 하는 것이 된다.
물론 체면 문화(face culture),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데 있어 자신의 생각 못지 않게 타인의 시선을 과하게 신경 쓰는 문화 역시 행복을 자랑하는 경향에 한 몫 한다. 비교가 심한 사람들의 경우 자신이 실제로 경험하는 삶이 만족스러운지 여부 못지 않게 타인이 자신의 삶을 만족스럽게 봐주는지가 삶의 만족도를 인식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친다. 비교가 심할수록 삶에 아무 문제가 없어도 누군가 자신보다 더 잘 산다면 갑자기 (가짜) 위기감을 느끼는 탓에 아주 쉽게 불행을 느끼는 경향을 보인다.
여기에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가 더해지면 사람들은 실제 잘 사는 것보다도 남들에게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중시하게 된다. 그 결과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좋은 삶, 좋은 학교, 좋은 직장, 결혼 등등을 좇게 되기도 한다. 멀쩡하게 사는 듯 보이지만 정작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한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비교가 심하고 타인의 시선을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freedom)가 낮을 수 밖에 없다. 에라스무스대의 심리학자 가일브륄(Gaël Brulé)에 의하면 자유에는 크게 사회적(social), 가능성의(potential), 정신적(psychological) 자유가 있다. 사회적 자유란 다른 이들의 간섭 없이 자신의 직업, 결혼 등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환경을 말하고 가능성의 자유란 미래에 자신이 원하는 선택지를 고를 수 있는 선택지의 자유를 말한다.
마지막으로 정신적 자유란 낮은 자존감이나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따라가는 동조하는 마음으로부터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 예컨대 모두가 자장면을 시킬 때 혼자 누룽지탕을 시킬 수 있는 용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브륄의 연구에 의하면 이들 자유는 행복도와 강한 상관을 보였고, 핀란드 사람들의 경우 같은 유럽인 프랑스 사람들보다도 더 자유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GDP 수준이 비슷한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당히 불행한 나라로 잘 알려져 있다. 자랑하고 과시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존재가 되고자 하는 우월성에 대한 집착, 끊임없는 비교와 체면치레, 자신과 타인을 지속적으로 자로 재고 평가하는 평가적 시선,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나 원하는대로 사는 사람들을 용인하지 않는 경직성과 낮은 관용, 용기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 결국 제한된 선택지 안에서 서로를 밟아가며 힘겹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환경이 몇 가지 원인이 아닌가 싶다.
행복의 비결 중 하나는 만족하는 것이다. 나의 약점을 지우고 잘 보이려 애쓰기보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작은 행복들을 만끽하는 것만이 “이 정도면 괜찮은 삶”이라는 감각을 가져다 준다. 겉으로 보이는 것들에 대한 걱정이 가득한 나머지 내 앞에 놓인 시간들에 충실하지 못한다면 내 삶을 진짜로 사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자랑하지 않고 시기하지 않으며 내게 주어진 시간들에 대해 겸손한 삶을 산다면 아무도 부럽지 않게 될 것이다.
Martela, F. (2018). Finland Is the Happiest Country in the World, and Finns Aren’t Happy about It: They tend to downplay positive emotions, which could paradoxically increase their satisfaction with life. Scientific American Mind, 29(4), 44–46. https://www.jstor.org/stable/27172929
Brulé, G., & Veenhoven, R. (2014). Freedom and happiness in nations: why the Finns are happier than the French. Psychology of Well-Being, 4(1), 17. doi:10.1186/s13612-014-0017-4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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