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그 후]수마 속 '세 모녀 참변' 6개월…반지하 굴레 갇힌 사람들
"한동안은 무서워서 잠을 못 잤어요. 물이 차올랐던 순간이 생각나서..."
지난해 8월 수도권을 덮친 폭우로 서울 관악구 반지하 주택에 살던 세 모녀가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장소 인근에 거주한 한 노부부는 참사 당시를 회상하며 이같이 말했다. 6개월여가 흘렀지만 반지하 침수 피해는 재난생존자가 된 이들에게 여전히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
사고가 발생한 지역 인근 주민들은 폭우가 쏟아지던 날 폭포처럼 밀려드는 물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집안 곳곳에 있는 물구멍에서 물이 솟아오르고 하수구에서 역류하는 물이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허리춤까지 물이 가득 찬 탓에 노부부는 급하게 옷만 챙겨 입고 집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안내도 받지 못한 채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 앉아 참사 당일 밤을 뜬눈으로 보냈다.
침수 이후에는 집에서 물비린내가 섞인 악취가 빠지지 않았다. 누가 집에 오겠다고 하는 날엔 독한 세제로 집안 곳곳을 닦고 방향제를 뿌리며 단단히 준비해야 했다. 도배와 장판을 새로 했지만 온 집안에 물이 들어찼던 탓에 습기와 곰팡이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수해를 겪고 난 후 노부부도 지하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쉽지 않았다. 노부부가 살 수 있는 지상의 민간임대주택은 최소 1억 5000만원. 노부부에겐 너무 큰 돈이었다. 물이 차던 순간이 트라우마로 남은 할머니는 직접 발품을 팔아 지상층의 집을 구하기 시작했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 동주민센터 등을 직접 찾아다니며 공공임대주택 입주 신청을 했다.
노부부는 수해 때 보일러가 고장 난 탓에 냉기로 가득 찬 지하에서 전기장판으로 버티며 11월을 보내다 피해가 발생한 지 4개월만인 지난해 12월22일 공공임대주택으로 이사했다. 지상층으로 이사하게 된 이 부부는 "물로 집안이 가득 찰 일은 없어서 좋겠다"고 말했다.
노부부가 반지하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침수 우려 반지하 가구에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하는 제도가 확대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가 노부부처럼 행운을 누리지 못했다. 지난 여름 침수된 수천 세대의 반지하 가구 중 지금까지 10세대만 입주 계약을 맺었다. 장애인이나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아닌 경우 공공임대주택 입주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수급자가 아닌 사람들을 위해 '반지하 특정 바우처'를 이주 정책도 제시했다. 이 제도는 2년간 매달 20만원의 월세를 지원해 반지하 거주 가구의 지상층 이주를 돕는 정책이다. 지원금 20만원은 지상과 반지하 거주 가구의 평균 월세 차액(13만8000원)과 다른 주거 사업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산정한 금액이다.
수해 피해 이후 서울시에서 이런 이주 지원 정책이 나오고 있지만 반지하는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의 유일한 선택지다. 보증금과 월세가 지원금액보다 높거나 방이 좁다 등의 이유로 지상층 이사를 포기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서울시가 지난달 말부터 시작한 이주 바우처 지원 사업에서 지원 대상 6만여가구 가운데 100여가구만 신청했다. 반지하 거주민들은 2년이라는 기간만 보고 지상층으로 올라가기에는 부담이라고 말한다.
동작구 신대방역 근처 반지하에 사는 김모씨(58)는 "2년 동안은 20만원이 지원되지만 그것만 보고 집을 옮기기는 부담스럽다"며 "보증금 낼 현금도 없어서 지상층으로 가기에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동작구 인근에서 공인중개사를 운영하는 이모씨(65)는 "참사 이후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던 분들이 무서워서 못 살겠다며 이사 간 경우가 많았다"면서도 "그마저도 사정이 좀 되는 사람이 떠난 거고 월세를 높여서 지상으로 올라갈 수 없는 사람들은 반지하에 그대로 남아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서울시 지원 정책이 주거 상향이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려면 단기적인 지원보다는 수해 피해자와 공공임대주택 연계 확대 등 대응 방안이 더 촘촘해야 했다고 지적한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현재 바우처 제도는 2년이라는 기간만 지원하는데 앞으로 수입이 늘어갈 가능성이 있는 청년 등에 대한 청년형 제도이지 노인이나 저소득층 3~4인 가구에는 맞는 제도가 아니다"며 "반지하 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공공임대주택 지원 같은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수민 기자 breathe_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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