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년 '아라온호'보다 강한 쇄빙연구선 극지 누빈다

김태희 기자 2023. 1. 14. 06: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KRISO 1동, 1층에 위치한 우리나라 유일의 빙해수조. 과학동아 DB

2022년 11월 18일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위치한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KRISO) I동 빙해 수조. 우리나라 최초의 쇄빙연구선인 아라온호의 동생이 될 차세대쇄빙연구선의 모형 빙성능 시험이 진행되는 날이다. 빙성능 실험은 거대한 배를 건조하기 전까지 배의 형상이나 운항 속도 등에 따라 얼음을 깨며 생기는 현상을 눈으로 관측하고 직접적인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67mm 얼음이 새하얀 도화지처럼 펼쳐져 있던 빙해수조 위 모형선은 마치 나룻배처럼 보였다. 차세대 쇄빙연구선의 모형선이라고 해서 크기만 작을 뿐 화려한 배를 기대했던 터라 슬며시 드는 실망감은 어쩔 수 없었다. 저게 모형선이냐 묻는 말에 그 실망감이 묻어났는지 장진호 KRISO 친환경운송연구본부 빙해수조 책임기술원은 웃으며 얘기했다. “쇄빙선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선수, 배의 앞부분입니다. 배의 앞부분과 뒷부분이 어떻게 다른지 한번 살펴보세요.”

빙해 수조를 빙 둘러 걸으며 살펴본 모형선의 앞뒤는 확연히 다르게 생겼다. 배의 앞부분은 배 밑바닥까지 이어지는 곡선이 완만한 기울기를 가진다. 전문가들은 이를 ‘선수가 많이 누워있다’고 표현한다. 쇄빙선이 얼음을 깨는 방식은 크게 두 개로 나뉜다. 하나는 ‘밀어치기’이고 또 다른 하나는 ‘누르기’다. 밀어치기는 얼음을 쳐서 부수는 방식이고, 누르기는 얼음을 아래로 구부려 깨는 방식을 말한다. 이 중 더 효율적인 방식이 바로 누르기다. 배의 앞부분이 얼음판 위로 잘 올라탈 수 있게만 만들면 쇄빙선이 가지는 무게로 얼음을 구부려 깰 수 있기 때문이다. 쇄빙선의 완만한 선수는 이 누르기를 위해 디자인된다.

선미도 눕히면 쇄빙선이 뒤로 얼음을 깰 때 좋지 않냐는 질문에 장 책임기술원은 “선미에 추진기가 들어가야하기 때문에 눕히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쇄빙연구선에는 대부분 360도로 움직일 수 있는 대형 선회식 추진기가 설치되는데, 추진기를 설치하고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쇄빙연구선은 선박의 규모와 건조 목적, 연구 환경 등을 고려해 디자인된다. 이 때문에 차세대 쇄빙연구선의 선수부는 아라온호보다 훨씬 더 클 뿐만 아니라 더 많이 누워 향상된 쇄빙 능력을 자랑할 예정이다.

모형선이 지나가는 채널. 과학동아 DB

● 모형선이 움직인 길을 따라 데이터가 모인다

“준비 끝났습니다.”

장 책임기술원의 무전기를 통해 예인 전차 캐빈에 탑승해있던 오은진 선박연구본부 기술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모형 쇄빙선은 32m의 빙해 수조의 폭을 감쌀 정도로 거대한 예인 전차에 단단히 고정돼 있었다. 예인 전차가 실험 속도에 맞춰 이동하면 이에 맞춰 모형 쇄빙선이 수조 속을 전진하며 얼음을 깬다. 곧 신호음이 울리고 예인 전차와 함께 모형선이 천천히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모형 쇄빙선의 운행이 끝난 뒤엔 반대편에 있는 보조 전차가 움직였다. 운행 실험이 끝나자마자 수집해야 하는 정보를 즉각적으로 얻기 위함이다. 보조 전차에 탑승해 있던 연구원들은 니은(ㄴ)자로 생긴 자를 내리고 사진을 촬영했다. 쇄빙 패턴, 즉 얼음이 깨진 모양을 분석하는 자료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자는 검은색 노란색 패턴이 5cm 너비로 칠해져 있다.

“얼음 조각은 가능한 작게 깨지는 것이 좋습니다.” 장 책임기술원이 말했다. 얼음 조각이 크면 쇄빙선 바닥의 프로펠러와 충돌할 때 프로펠러를 손상시키거나 추진기의 효율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촬영이 끝난 뒤 연구원들은 모형 쇄빙선이 지나간 근처, 사전에 선정된 위치에 깨지지 않은 얼음을 직육면체 사각기둥 형태로 잘라냈다. 모형선이 부딪혀 깬 얼음의 강도와 두께를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서다. 빙해 수조의 얼음은 67mm로 만들었지만 가로세로 32m의 빙해 수조 모든 곳이 오차 없이 정확하게 얼 수는 없다. 때문에 실험이 끝난 직후 얼음 시편을 채취해 얼음 두께와 강도를 기록한다. 기록된 실제 얼음 두께와 강도는 이후 실험 결과를 분석할 때 보정 값으로 활용된다.

보조 전차는 5m에 한 번씩 잠시 이동을 멈췄다. 그때마다 연구원들은 끝이 구부러진 쇠막대를 들고 얼음에 박아넣었다. 쇠막대의 정체는 바로 ‘보강목’이었다. “일종의 스테이플러라고 보면 됩니다.” 장 책임기술원이 설명했다. “모형선이 얼음을 깨고 지나간 자리에는 일종의 수로가 생겨요. 이 수로를 그냥 두면 다음 실험에서 얼음이 깨졌을 때 옆으로 밀릴 수 있는 공간이 됩니다. 다음 실험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는 작업이죠.”

이날 모형 쇄빙선의 빙성능 실험은 총 6차례 20m의 각기 다른 속도로 운행하는 것으로 실험이 끝났다. 결과는 ‘합격점’으로 나왔다.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는 차세대 쇄빙연구선 모형선의 축소 비율에 맞춰 빙해수조 얼음을 두께 67mm, 강도 500kPa(킬로파스칼)로 얼렸다. 과학동아 DB

● 아라온호 진수 직후 논의된 차세대 쇄빙연구선

“2010년 초부터 연구소 내에서는 차세대 쇄빙연구선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언제 처음 차세대 쇄빙연구선을 준비했냐는 질문에 주형민 극지연구소(극지연) 차세대 쇄빙연구선 건조사업단 단장이 대답했다. 2010년 초는 우리나라 최초의 쇄빙연구선인 아라온호가 진수식을 가진 지 반년이 겨우 지난 시점이다. 차세대 쇄빙연구선이 예비타당성 조사에 통과한 것은 2021년 6월의 일이었지만, 첫 논의는 아라온호가 운항을 시작하면서 거의 곧바로 시작된 셈이다.

그 이유는 바빠도 너무 바쁜 아라온호의 스케줄 때문이었다. 아라온호는 북극해와 남극해에서 연구를 진행할 뿐만 아니라, 남극에 있는 세종 과학기지와 장보고 과학기지에 물자를 보급하는 역할까지 맡고 있다. 이 때문에 북극에서의 연구 일수를 충분히 확보하기 어려웠다.

아라온호의 기자재 내한성능이 영하 30℃ 수준인 것도 연구 일수 확보에 한계로 작용했다. 기자재 내한성능이란 쇄빙연구선 내 모든 장비가 해당 기온 조건에서도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영하 30℃의 내한성능으로는 겨울철 극지방에서 연구 및 실험이 불가능하다.

아라온호의 연구 가능 지역도 한계가 있었다. 아라온호는 1m 두께의 얼음을 3노트(배의 속도를 나타내는 단위. 1노트는 1시간에 1.85km를 달리는 속도)로 운행할 수 있는 중형급 쇄빙연구선이다. 그보다 더 두껍게 얼음이 얼어있는 중앙 북극해 공해 등에서는 연구를 진행할 수 없었다.

차세대 쇄빙연구선은 아라온호의 아쉬운 점들을 하나씩 보강된다. 1m가 아닌 1.5m 두께 얼음을 3노트로 운행할 수 있는 쇄빙 능력을 갖추고, 또 기자재 내한성능도 영하 45℃로 책정했다. 극지연과 KRISO가 해당 기술 개발을 공동으로 주관하고 있다. 주 단장은 “차세대 쇄빙연구선은 국책기관에서 실시한 연구를 통해 쇄빙연구선 건조기술을 확보한다는 점에 특히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1.5m 두께 얼음을 3노트로 쇄빙할 수 있는 능력과 1만5000여t급의 선박은 현재 일본과 중국 등 주요국들이 운항하거나 건조하고 있는 쇄빙연구선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중국은 2019년 1.5m 두께 얼음을 3노트로 운항할 수 있는 1만4000여t급 쇄빙연구선 ‘쉐룽2호’를 자체 건조해 운항을 시작했다. 일본은 우리보다 1년 빠른 2026년을 목표로 1.2m두께의 얼음을 3노트로 운항할 수 있는 1만3000t급 쇄빙연구선을 건조하고 있다.

이 수준과 규모의 쇄빙연구선이 널리 채택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 단장은 “효율 때문”이라고 답했다. 기후변화로 현재 북극의 얼음 두께는 점점 얇아지고 있다.

2030년 후반부터 북극 여름은 ‘얼음 없는(ice-free)’ 상태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극지연은 차세대 연구쇄빙선을 준비하며 기후변화 전문가들이 5년 주기의 해빙 두께 변화를 시뮬레이션한 결과를 검토했다. 이를 바탕으로 확보할 수 있는 예산 내에서 오버 스펙이 아닌 수준으로 차세대 쇄빙연구선의 능력과 규모를 책정한 것이다.

차세대 연구쇄빙선 모형선은 선수로 쇄빙하는 빙성능 시험뿐만 아니라, 후미 쇄빙 시험과 터닝 실험까지 끝마쳤다. 과학동아 DB
차세대 연구쇄빙선 조감도. 과학동아 DB

●아라온호가 만든 길 차세대 쇄빙선이 걷는다

흔히 둘째는 첫째보다 키우기가 쉽다고 한다. 첫째를 낳아 기르며 좌충우돌 발생하는 일들이 경험이 되기 때문이다. 극지연과 KRISO에게 둘째인 차세대 쇄빙연구선도 그렇다.

빙해수조는 2009년 준공됐다. 북극이 수에즈운하보다 훨씬 효율적인 항로로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쇄빙운반선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이와 함께 인프라의 필요성이 대두됐기 때문이다.

빙해수조 준공과 비슷한 시기 진수식을 가진 아라온호를 만들던 당시엔 빙해 수조가 없었다. 이영연 KRISO 선박연구본부 책임연구원은 아라온호를 만들던 당시를 회상했다. “아라온호를 만들 때는 핀란드 헬싱키대에서 빙성능 평가 실험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KRISO와 헬싱키대에 똑같은 모형 쇄빙선을 만들어야 했죠.” KRISO에서 모형선을 만든 뒤 일반 항해 실험을 진행해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면 헬싱키대에서도 똑같이 만들어 빙성능 실험을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빙성능을 개선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오면 다시 이 작업을 반복해야 했다.

“선형(배의 형태)을 개선하는 과정이 굉장히 빨라졌습니다.” 이 책임연구원은 빙해수조가 만들어진 뒤 이제는 3달이면 모형선을 만들고, 모형선의 성능까지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인프라가 갖춰지자 전문가들도 자연스럽게 더 많아졌다.

아라온호를 만들었을 때는 극지를 항해하는 선박에 대한 규정조차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는 배는 한국선급이라는 사단법인에서 선박 검사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그전까지 쇄빙연구선이 없었던 우리나라는 아라온호를 검사하는 기준이 없었다. 당시 한국선급은 아라온호를 위해 부랴부랴 검사 기준을 만들어야 했다.

그 결과 차세대 쇄빙연구선(1만 5450t급)은 아라온호(7000여t급)보다 선박 규모 면에서 두 배나 더 큰 ‘우량아’지만 현재까지 훨씬 수월하게 준비 단계를 밟고 있다.

2027년 취항을 목표로 하는 차세대 쇄빙연구선은 아라온호에 지워진 무거운 짐을 나눠들 예정이다. “차세대 쇄빙연구선이 건조되면 아라온호는 남극기지 보급과 남극 연구, 차세대 쇄빙연구선은 북극 연구를 전담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기후변화 연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북극 기후에서 우리나라의 독자적인 연구가 시작될 수 있겠죠.” 주 단장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과학동아 독자들에게 차세대 쇄빙연구선 안에서 만날 수 있길 바란다고 인사를 남겼다.

[김태희 기자 taehee@donga.com]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