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열심히 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권대익 2023. 1. 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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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수 교수의 마음 읽기]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게티이미지뱅크

요즘 클리닉에서 왠지 기운 없고 늘어진 젊은이들을 자주 만난다. 그중 한 사람은 30대 중반의 전문직 청년. 대학을 졸업하고 전문 자격증도 취득해 큰 회사에 취업도 했었지만, 지금은 그냥 집에서 혼자 지낸다. 가끔 운동하러 가고 취미 삼아 요리를 배워보기도 하는데, 앞으로 뭘 해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이제 슬슬 다시 취업을 해 볼까 생각하는 중인데, 좀처럼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그다음 만난 친구는 대학 중반의 휴학생이었다. 누가 공부하라고 닦달한 적도 없었고, 어린 시절부터 딴짓을 해 본 적 없이 혼자 공부를 열심히 해서 소위 명문대에 입학했다. 그런데 그다음 몇 년 동안은 딱히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

그저 친구들과 어울려서 술 마시고, 책 좀 보다가 늘어져 있는 시간이 길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휴학 중인 학교로 곧 돌아가긴 할 텐데, 아직 무얼 하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이 잘 들지 않아서 답답할 때마다 술을 마신다고 한다. 이들에겐 항우울제로 해결하지 못하는 깊은 나른함이 느껴져서 저녁시간에도 자주 생각하게 된다.

아무래도 코로나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이 사회 전반에 무의욕, 무기력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과거 흑사병이나 스페인 독감 때도 그랬겠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는 감염자들뿐 아니라 감염되지 않은 사람의 마음에도 다양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직장인들을 위한 익명 플랫폼인 블라인드에서 2020년 6월 설문 조사한 결과는 응답자 중 무려 89%가 ‘번아웃(burnout) 증후군’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그 원인으로 과도한 업무량(46%)과 루틴한 일상(18%), 직장 내 관계(13%), 기타 보이지 않는 성과와 직무 불만족을 들었다.

코로나 시대에 대면 접촉은 줄었지만, 넘쳐나는 메시지와 화상회의 등 비대면 접촉과 일의 양은 한층 많아졌다는 것이다. 비슷한 일을 혼자 앉아서 반복하면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한 피드백도 별로 없을 것이고, 그렇게 하는 일이 재미있을 리가 없다. 그러다 보면 신체ㆍ정신적 피로가 쌓여 무기력감과 자기 혐오, 좌절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다시 대면 업무가 늘어나는 요즘엔 비대면과 홀로 있음에 이미 익숙해진 젊은 사람들이 낮아진 역치 탓인지 늘어난 인간관계와 회식, 업무에 적응하느라 허덕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젊은이들의 우울과 불안 수준도 높아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2022년 2분기 ‘코로나19 국민 정신건강 실태 조사’에서는 우울증 위험군이 16.9%로 점차 낮아지고 있지만, 코로나 이전보다 아직 5배나 높다. 특히 30대의 우울 비율은 24.2%로 2021년과 큰 차이가 없고, 죽음에 대한 생각은 오히려 더 증가한 상태다.

학자들은 사회적 고립과 경제적 소득의 감소로 해석하고 있지만, 내 인생이 뭘 해도 재미없고, 지금 하는 일의 의미도 모르겠다면 지금 하는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의미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점점 더 일이나 공부가 안 된다면 번아웃의 주요 후유증인 감정 소진과 냉소주의, 그로 인한 업무 효능 감소라는 악순환에 갇혀 있는 것이다. 자기 비하와 그에 따른 자기 연민은 덤이다.

그러다 보니 세상에는 힐링과 위로라는 말이 넘쳐나고 있다. ‘일에 지친 그대! 쉬어도 된다’는 말이다. 이런 말을 한참 듣다 보면 내가 지금 늘어져 있는 것은 내 탓이 아닐 가능성이 많은 것 같다. 이 세상 탓이라면 내가 기운을 차리고 일어나는 것도 누군가 나를 동정하고 일으켜 세워줘야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동정과 연민이라는 말에는 존중이라는 의미가 별로 없다.

자기 연민이라는 말에도 나 스스로 존중하고 자존감을 지키는 부분은 빠져 있다. 그저 수동적으로 도움을 기다리다가 누군가에게 분노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내가 힘들 때 늘 옆에 있어 주는 친한 친구도 조만간 내가 스스로 뭔가 시작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일하는 사람을 위한 지지 시스템과 도움과 배려를 위한 사회적 시스템은 당연하게 존재한다는 걸 전제로 할 때, 나는 안 되니까 계속 내 손을 잡아줘야 한다고 한다면 아무리 선한 친구도 힘들어하고 관계 손절을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휴대폰도 완전 방전 상태만 벗어나면 자기 일을 시작하는 것처럼 우리도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해야 세상도 나를 돕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누구든지 100% 에너지에 충만한 채로 일을 시작하는 사람은 없다. 이럴 때 실질적인 도움은 주지 않으면서 말로만 당신은 쉬어도 된다고 하고, 이 사회가 당신을 잘 살게 해 줘야 하는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아니면 일단 충분히 쉬고 기운이 나면 천천히 다시 움직이라고 가볍게 말하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혹은 좀 더 강하게 당신이 힘든 건 사회 탓이니까, 화내고 요구를 해야 하는 것이라고 분노를 조장하는 경우도 있다. 어느 장단에 몸을 맡기는 것이 맞을까?

법률과 수사학에서 쓰이는 라틴어 ‘쿠이 보노(Cui bono)’라는 질문이 있다. ‘이득을 보는 자는 누구인가’라는 의미이다. 이 말은 키케로가 로마의 부호 살해 사건에서 유력한 용의자인 그의 아들을 변호할 때 배심원들에게 외쳤던 말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어떤 이익을 얻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라는 뜻이다.

당신이 그냥 늘어져만 있고, 스스로 뭔가 시작하기보다는 무기력하게 세상에 분노만 하고 있을 때 가장 이득을 얻는 자는 누구이고, 어떤 이익을 얻을까를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결국 이 세상은 노력한 만큼 얻어가는 세상이다. 젊은 시절에 좀 아파도 된다고 하지만, 그 젊은 시절은 사실 다양한 일을 경험하면서 이후 내가 할 일에 대한 경력과 노하우를 쌓아야 하는 시절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 너무 오래 누워 있으면 앞서 간 사람과 더 멀어진 거리 때문에 또 한번 좌절할 수도 있다.

그러니 지금 너무 열심히 살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사람 말을 너무 믿지 마라. 정작 필요할 땐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목적은 당신이 잘 사는 것이 아닐 수 있다.

한창수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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