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 유산·35번 수술의 악몽…그럼에도 "인생이여 만세"[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프리다 칼로 편]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1925년, 열여덟 살의 프리다 칼로는 버스 유리창에 머리를 박았다.
굉음이 울렸다. 전차와 맞부딪힌 버스가 앞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좌석에서 튀어 나간 프리다는 사정없이 굴렀다. 피를 쏟았다. 철근 가락이 옆구리를 뚫고 들어와 골반을 휘저을 땐 비명을 내질렀다. 버스는 구겨진 채 드러누웠다. 매캐한 연기를 내뿜었다. 뼈대를 훤히 드러낸 버스 안은 사람들의 신음으로 가득했다. 몇몇은 이미 눈에 초점을 잃었다. 축 늘어졌다. 야, 그래도 우리는 산 것 같다? 프리다는 익숙한 환청을 들었다. 프리다는 대꾸도 하지 못한 채 기절했다.
프리다는 눈을 떴다.
정말 살긴 살았구나. 자기 몸이 병실 침대에 누워있는 것을 보고 혼잣말을 했다. 프리다는 허리뼈와 골반, 쇄골, 왼쪽 다리 등 11곳에 골절상을 입었다. 갈비뼈는 부러졌고, 오른발은 산산조각이 났다. 그런데도 죽을 고비만은 넘겼다. 프리다는 이 사고 이후 한 세기 분량의 고통을 평생 마주한다. 죽을 때까지 35차례 수술대에 올랐다. 차라리 죽여달라고 말하고 싶은 척추 수술도 7차례나 받는다. 어쨌든, 그건 나중 일이었다.
"엄마, 종이 좀 가져다줄래요?"
프리다는 다짐했다. 일단 살았으니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프리다는 원래 의사가 되려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망가진 몸으로는 수술 메스를 쥘 수 없었다. 뜻을 접은 프리다는 곧장 화가의 꿈을 꿨다. 어차피 병원에 1년 이상은 있어야 했다. 그동안 두 손 말곤 온 몸에 깁스를 해야 했기에, 어차피 그림 그리기 말곤 할 일도 없었다. 어머니가 병상에 붙일 수 있는 특수 이젤을 안겨줬다. 프리다는 이를 보석처럼 끌어안았다. 천장에 달린 거울 속 제 모습을 봤다. 씰룩대는 표정을 캔버스에 담으며 시간을 죽였다.
"아가씨, 무슨 일이야?"
"저 기억하세요?" "물론."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은 프리다는 재활 훈련 끝에 두 발로 걸어서 퇴원했다. 그녀는 다짜고짜 화가 디에고 리베라를 찾았다. "아저씨. 그럼, 잠깐 나 좀 봐요." 프리다는 정부 건물의 벽화 작업을 하고 있던 디에고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왜, 왜 그러는데." 디에고는 못 이기는 척 끌려갔다. 디에고는 이 당차고도 예쁜 소녀와의 재회가 내심 기뻤다.
둘은 프리다가 교통사고를 겪기 전에 이미 만났었다.
4년여 전인 1922년, 프리다는 멕시코 국립 예비학교에 입학했다. 프리다의 이름은 곧 전교생에게 퍼졌다. 눈에 띄는 외모를 가졌고, 공부도 썩 잘했다. 하지만 프리다를 진짜 유명하게 만든 건 그녀의 독기였다. 프리다는 여섯 살에 앓은 소아마비로 오른 다리를 절었다. 그런데도 누가 "어이, 나무다리 프리다!"라고 놀리면 기필코 쫓아가 어떻게든 보복하는 등 집요함을 보여줬다. 학교 안에선 곧 아무도 프리다를 건들지 못했다. 전교생 2000명에 35명뿐인 여학생 중 한 명이었던 프리다는 여장부가 돼 교내를 마구 휘저었다.
프리다는 평소처럼 학교를 제 집처럼 탐방했다.
이때 우연찮게 강당에 벽화 작업을 하는 디에고와 처음 만났다. "아저씨, 거기서 뭐해요?" "학교 부탁으로 그림을 그린단다." 프리다의 말에 디에고가 대답했다. "와. 잠깐 구경해도 돼요?" 프리다가 맹랑하게 물었다. "당연히. 나야 영광이지." 디에고는 환하게 웃었다. 둘은 세 시간 가량 있었다. 가끔 시시한 농담도 했다. 훗날 디에고는 이 상황을 놓고 "프리다의 태도는 얼핏 봐도 남달랐다. 어딘가 모르게 위엄과 자신감이 있었다. 눈동자는 야릇한 빛을 뿜었다. 프리다는 아직 어린 아이처럼 귀여웠지만, 어딘가 모르게 성숙한 분위기를 발산했다"고 썼다. 그런 디에고가 프리다를 잊을 리 없었다. 프리다도 자신과 농담 따먹기를 한 이 거구의 남자가 피카소와 동급으로 거론되는 그 화가, 디에고였다는 점을 알게 됐다. 프리다 또한 디에고가 보인 소탈함을 간직하던 중이었다.
"그러니까, 네가 좋은 화가가 될 수 있을 지를 봐달라고? 갑자기?"
"네." 디에고의 말에 프리다는 턱을 내밀었다. "아니, 이유라도…." "그건 알 필요 없고요." 프리다는 디에고에게 그림 석장을 내밀었다. "어쨌든, 이쪽에선 당신이 전문가잖아요. 재능이 없다고 하면 이 자리에서 바로 때려치울게요. 시간 낭비는 질색이거든요." 프리다는 디에고를 몰아세웠다. 그래, 어린 애가 그려봐야 뭘 얼마나 그리겠어…. 디에고는 시선을 그림 쪽으로 돌렸다. 별 기대도 없었다. 그런데…. "이거, 정말 아가씨가 그린 것 맞아?" "네." "프로 화가가 대신 그린 걸로 날 놀리는 게 아니야?" "아 진짜, 그럴 시간 없다고요." 프리다는 얼굴을 찌푸렸다.
디에고는 프리다의 그림에서 요동치는 생명력을 봤다.
특히, 그녀의 자화상은 절절함을 넘어 눈물겨웠다. 디에고는 벽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조차 망각했다. "나랑 이야기 좀 하지. 진지하게." 넌 이 남자를 믿어? 이때 프리다는 또 환청을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사람 말고는 따져볼 이가 없는 걸. 프리다는 환청에 대고 응수했다.
1929년. 갓 20대에 들어선 프리다는 가족에게 폭탄선언을 했다.
디에고와 살림을 차릴 것이라고 통보했다. 실제로 프리다는 가족 반대를 무릅쓰고 디에고와 아예 결혼을 해버렸다. 사람들은 이를 '코끼리와 비둘기의 결합'이라며 조롱했다. 프리다의 돌발 행동을 놓고 훗날 미술계는 '카사노바' 디에고의 유혹, 머저리 투성이인 이 세상에서 존경할 만한 남자를 겨우 찾았다고 본 프리다의 결단 등을 거론한다. 실제로 당시 마흔 두 살의 디에고는 악마와 같은 여성편력 때문에 식인귀(食人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디에고는 식민주의자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가장 당당하게 그려낼 수 있는 전사였다. 전통 문명을 향한 애정을 명징(明澄)하게 나타낼 수 있는 그 시대 최고의 예술가이자 사회 운동가였다.
프리다는 일류 화가면서 혁명가가 되고 싶었다.
평생의 꿈이었다. 프리다가 볼 때 디에고는 이를 모두 쟁취했다. 프리다는 디에고를 '인정'했고, 그때부터 디에고를 연인 이상으로 받들었다. 격정적인 프리다는 그 순간부터 디에고가 희대의 바람둥이라는 말도, 앞서 결혼을 두 번이나 했었다는 말도 듣고는 바로 흘렸다. 사랑에 빠진 여장부는 그렇게 시인이 됐다. "매 순간 그는 나의 아이다. 날 때부터 내 아이, 매 순간, 매일, 나의 것." 프리다는 디에고에 대해 사랑을 잔뜩 담은 글도 자주 썼다. 자신에게 건강이 더 남았다면 그에게 다 주고 싶다고 했다. 젊음과 열정이 더 있다면 이 또한 모두 그에게 안겨주고 싶다고도 했다. 이때 프리다는 몰랐다. "나는 평생 큰 사고를 두 번 당했다. 하나는 나를 부숴버린 버스 사고였다. 또 하나는 디에고를 만난 일이었다. 두 사고를 비교하면, 디에고가 더 끔찍했다"는 글을 쓰게 될 줄은.
디에고에 대한 존경심으로 성질을 누른 프리다는 한동안 성실한 아내 역할을 수행했다.
디에고의 뮤즈로 영감을 줬다. 편치 않은 몸을 이끈 채 모델 일을 소화했다. 멕시코 공산당 입당과 탈당을 함께 했다. 같이 사회 운동에도 뛰어들었다. 프리다는 디에고와 신혼 중 둘의 모습이 담긴 그림을 그렸다. 디에고는 당당하다. 표정과 풍채에서 위엄이 느껴진다. 잘 차려입은 검은색 정장과 큰 구두는 든든함을 더해준다. 반면 프리다는 작다. 깡말랐다. 비뚤어진 표정과 자세 탓에 화사한 옷도 제 역할을 못하는 듯하다. 디에고는 프리다의 손을 꽉 쥐고 있다. 프리다는 그런 디에고에게 더 의지하는 모습이다. 프리다는 고국도 떠났다. 1930년, 프리다는 디에고를 따라 미국으로 갔다. 슈퍼스타 남편에 가려 외로운 시간을 보냈다. 나름 그림도 그렸지만, 돌아오는 건 화가라는 호칭이 아닌 '디에고의 독특한 아내'라는 수식어뿐이었다.
하지만 프리다가 애써 쌓아올린 건 모래성이었음이 곧 드러났다.
파도가 올 때마다 한 움큼씩 모래가 쓸려나가더니, 이내 제대로 서있기도 힘들 만큼 뼈대가 앙상해졌다. 프리다는 결혼 이듬해에 임신을 했지만 얼마 못 가 유산했다. 골반 기형과 과거 교통사고의 후유증 탓이었다. 디에고를 따라 다시 멕시코로 올 때쯤 프리다는 다시 유산을 경험했다. 프리다는 얼마 뒤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폐암이었다. 프리다는 세 번째 아이를 임신했고, 이번만큼은 죽는 한이 있어도 버티겠다고 다짐했으나 끝내 또 유산했다.
디에고는 함께 슬퍼했다.
그러나 고통의 배에 함께 올라타지는 않았다. 디에고는 제 버릇을 못 버렸다. 틈만 나면 여자를 만났다. 추문이 이어졌다. 프리다는 우울증에 걸렸다. 어쩌다 엄마 손을 잡고 가는 아이만 봐도 엉엉 울었다. 1932년, 프리다는 고통 속에서 그림을 그렸다. 프리다는 건조한 하늘, 메마른 땅, 삭막한 도시를 두고 홀로 누워있다. 탯줄에는 유산의 잔상들이 묶여있다. 외롭다. 삭막하다. 아무도 없다. 피도, 눈물도 멈추질 않는다. 제목은 '떠 있는 침대'(헨리 포드 병원)였다. 훗날 이 그림은 사실주의와 초현실주의를 뒤섞은 듯한 프리다 특유의 스타일을 세운 첫 작품으로 기억된다.
불행은 끝이 아니었다. 아직도 시작에 불과했다. 프리다가 신과 같은 인내심으로 만든 모래성이 아주 작살나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디에고, '나의 디에고' 때문에.
"어떻게, 아니 어떻게…." 세 차례 유산 뒤 요양하고 있던 프리다는 넋을 잃었다. 프리다는 디에고의 숱한 외도를 애써 무시했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여동생 크리스티나와 바람을 피웠다는 말을 듣곤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디에고는 오해라고 했지만, 그러기엔 여태 너무 자주 믿음을 저버렸다. 프리다는 디에고와 한 공간에 있으면 숨을 헐떡였다. 디에고가 자신이 쉴 공기조차 다 가져가는 것 같다고 느꼈다.
프리다는 이때도 그림을 그렸다.
슬픔과 절망을 더는 느끼고 싶지 않았지만, 이 버러지 같은 감정들은 훌륭한 영감이 돼 그녀를 다시 일으켰다. 그림 속 프리다는 수차례 칼에 찔린 듯 상처투성이다. 표정도, 자세도 이미 생의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하다. 모자를 쓴 디에고가 프리다를 보고 있다.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간 듯도 하다. 자신이 행한 일을 숨길 생각이 없다는 듯 칼을 쥐고, 피가 낭자한 흰 와이셔츠를 그대로 입고 있다. 그림 제목은 '단지 몇 번 찔렀을 뿐'이었다. 당시 사회 이슈 중 한 남성이 여자 친구를 무참하게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왜 그랬어요." 판사의 말에 이 남성은 이렇게 말했다. "단지 몇 번 찔렀을 뿐인데요. 스무 번도 안 되게…." 프리다는 이 일을 자신에게 투영했다.
저지르자. 우리도 저질러버리자.
프리다에게 또 환청이 다가왔다. 언제까지 우리만 당해야 하냐고. 환청이 이어졌다. 저 사람이 변할 것 같아? 바보처럼 또 울기만 할 거야? 프리다는 귀를 막았다. 알았어. 나도 그럴 생각이었다고! 프리다는 환청에 대고 소리쳤다. 프리다는 '맞바람'을 결심했다. 긴 머리를 잘랐다. 늘 입던 토속 의상을 내던졌다. 스스로를 놓았다. 마음에 든다면 그 상대가 남자든, 여자든 가리지 않았다.
아주 잠깐, 프리다의 마음을 통째로 흔든 이도 등장했다.
1937년, 디에고의 주선으로 만난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였다. 평생을 거대한 파란을 꿈꾼 프리다는 뜨거운 피가 끓는 트로츠키에게 이끌렸다. 실패의 숙명을 안고 온 이 남자는 코끝이 찡해질 만큼 매력적이었다. 당시 스탈린과 맞선 트로츠키는 1927년 당에서 제명됐다. 1929년에는 소련에서 쫓겨났다. 터키, 프랑스, 노르웨이 등을 돌던 트로츠키는 디에고의 손을 잡고 멕시코로 망명했다. 프리다는 트로츠키 부부가 살 집으로 자신의 친정집 '푸른 집'을 열어줬다. 트로츠키 또한 프리다의 외모와 개성, 이미 한 세기의 고통을 겪은 듯한 성숙함에 매력을 느꼈다. 하지만 둘은 거기까지였다. 냉철한 트로츠키는 6개월 뒤 아내와 함께 거처를 옮겼다. 프리다 또한 그런 트로츠키를 둔 채 미국과 프랑스를 돌았다. 트로츠키는 1940년, 스탈린이 보낸 자객에 의해 살해당한다.
"우리, 할 만큼 했잖아. 이제 그만하자."
1939년, 디에고는 프리다에게 이혼을 정식으로 요구했다. 자신이 불러들인 트로츠키에게 마음을 연 그 모습이 괘씸했는지, 그쯤 자기가 공들여 유혹하던 미국 여배우와 만나기 위해서였는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명백한 적반하장이었다. 내 평생 소원은 단 세 가지, 디에고와 함께 사는 것, 그림을 계속 그리는 것, 혁명가가 되는 것이었는데…. 프리다는 절망했다. 그래도 이상은 이상일 뿐, 현실을 봐야했다. 못할 게 뭐가 있냐고. 저 비열한 인간에게 벗어날 기회라고. 환청이 프리다를 부추겼다. 지친 프리다는 디에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디에고에게서 벗어나는 일에 도전했다. 프리다는 이미 명성을 쌓아가고 있었다. 1년 전 앙드레 브르통의 후원으로 연 프랑스 파리 전시회에서 피카소, 칸딘스키, 뒤샹 등에게 격찬을 받았다. 잘 나가는 초현실주의 화가 대열에 낄 수 있었다. 비록 프리다 자신은 "나는 꿈을 그리는 게 아니다. 나는 내 현실을 그린다"며 그 딱지를 거부했지만.
프리다는 서서히 부서졌다.
이름은 차츰 알려졌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프리다의 머릿속은 온통 디에고 뿐이었다. 디에고는 프리다의 태양이었다. 우주였다. 요람이자 무덤이었으며, 삶의 터전 자체였다. 프리다는 눈에 띄게 시들었다. 틈나면 술을 찾았다. 코냑을 퍼마시지 않으면 아예 잠들지 못했다. 거의 폐인이 돼버렸다. 그 사이 사진작가 니콜라스 머레이와 사랑에 빠지긴 했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그는 결코 '디에고'가 될 수 없었다. 프리다의 몸은 성할 리 없었다. 교통사고 후 상할 대로 상한 척추가 다시 요동쳤다. 몇 번 대수술을 했지만 고통은 끈질겼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디에고와 이혼한 뒤 1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익숙한 발소리가 기진맥진한 프리다의 귓가를 때렸다. 둔탁하게, 육중하게…. 눈물 나게 그리웠던 이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내 잘못이야."
디에고가 돌아왔다. "정말 말도 안 되지만, 재혼을 말하려고 왔어. 무슨 수를 써도 당신 없이는 살 수 없어." 그 망나니 같던 디에고가 프리다에게 빌었다. 솥뚜껑만한 두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땀을 삐질 삐질 흘리며 딸꾹질을 했다. 프리다는 이 남자를 잘 알고 있었다. 또 바람을 피울 것이다. 또 아물지 않을 상처를 줄 것이다. 그런데도 프리다는 디에고의 애원을 무시하지 못했다. 삶의 전부가 제 발로 찾아왔으니 쫓아낼 수 없었다. 1940년, 프리다는 결국 디에고와 재혼했다. 다만 조건을 걸었다. 하나, 성관계를 하지 않는다. 둘, 서로는 경제적으로 독립 관계를 유지한다….
프리다의 생은 이제야 햇빛을 보는 것 같았다.
프리다는 '푸른 집'을 작업실로 꾸며 그림을 그렸다. 예측 가능한 날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번 평화 또한 잠시였다. 디에고와 헤어지곤 안 그래도 성치 않은 몸을 막 굴린 게 문제였다. 프리다의 몸은 착실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석고와 가죽 코르셋도 안 돼 강철 코르셋을 입어야 할 만큼 힘이 빠졌다. 프리다는 끊이질 않는 고통을 그림으로 그렸다. 상반신을 드러낸 프리다가 황량한 배경에 섰다. 하늘은 말랐다. 땅은 쩍쩍 갈라졌다. 프리다의 몸은 반으로 쪼개졌다. 옛 그리스 신전의 기둥이 척추처럼 박혀있다. 이미 심하게 부서진 이 기둥을 지탱하기 위해 겨우 흰색 띠를 둘렀다. 살 곳곳에는 못이 촘촘히 박혀있다. 프리다는 그렇게 울고 있다. 제목은 '부서진 기둥'이었다.
사람은 고칠 수 없는 걸까.
1949년. 디에고는 또, 또 바람을 피웠다. 유명 배우이자 프리다의 친구였던 마리아 펠릭스와 염문을 뿌렸다. 디에고의 일방적 구애였다는 말도 있지만, 어쨌든 신뢰를 가루로 만들어버린 짓이었다. 고향에서 원숭이와 앵무새를 기르며 겨우 살고 있는 프리다의 속은 잿더미가 됐다. 이 무렵 프리다는 자화상 '디에고와 나'를 그렸다. 프리다는 머리가 산발이 된 채 눈물을 흘린다. 한 곳을 응시하는 눈빛에선 분노가 느껴진다. 검은 갈매기 같은 눈썹 사이에는 디에고가 있다. 이 남자는 또 무심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마 한가운데 또 다른 눈이 있다. 이는 디에고가 펠릭스를 볼 때만 쓰는 숨겨진 눈이자, 디에고와 이미 한 몸이 된 펠릭스의 눈이었다.
1950년대 들어선 프리다의 건강이 목숨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갔다. 척추 수술은 거듭 실패했다. 오른 다리의 상태도 나빠져 결국 발가락을 절단했다. 거의 매일을 누워있었다. 프리다는 그럼에도 붓을 놓지 않았다. 어떻게든 하루에 3~4시간씩 그림을 그렸다. 1953년, 프리다는 죽음의 문턱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 해 조국인 멕시코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디에고와 친구들이 이끈 이 전시에 프리다는 침대에 누운 채 함께 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최선을 다했지?"
프리다가 허공에 대고 말했다. "웬일이야, 네가 나한테 먼저 말을 걸고? 처음인 것 같은데?" 환청이 대답했다. "내가 여섯 살 소아마비에 걸렸을 때, 그때 너를 만들었어. 너무 외로웠었거든." "알아. 네가 방구석 김 서린 유리창에 손가락을 대고 문을 그려줬지. 내가 그 문을 열었고, 그때부터 늘 네 머릿속 상상의 소녀가 돼 너를 바라봤어." 환청은 웃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네가 나를 쭉 지켜봤을 때, 그래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았지?" 프리다는 다시 허공에 대고 물었다. 불쑥불쑥 들려오던 이 환청은 잠시 뜸을 들였다. "프리다. 네 이름, 아니 우리 이름만큼의 평화(프리다는 독일어로 '평화'를 뜻함)는 길지 않았지만…그래. 이렇게도 한 번쯤은 살만해보였어." "그렇지?" 프리다도 그제야 환청을 따라 웃었다. "인생이여, 만세." "뭐라고?" "네 인생, 아니 우리 인생을 돌아봤을 때 떠오르는 문장이야." 프리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환청은 그렇게 영영 사라졌다. "그 소녀와 얼마나 함께 있었느냐고요? 아주 잠깐 동안, 혹은 몇 천 년 동안…." 프리다는 언젠가 상상의 소녀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당신을 빨리 떠날 것 같아요."
1년 뒤인 1954년 7월, 프리다는 디에고를 불러 작별 인사를 했다. 프리다는 디에고에게 한 달 정도 남은 결혼 25주년 기념 선물을 건넸다. 프리다는 그날 오전, 폐렴증세 악화로 47세 나이에 눈을 감았다. 프리다는 세상을 떠나기 여드레 전 마지막 그림을 그렸다. 제멋대로 잘려진 싱싱한 수박 더미였다. 피와 눈물을 흘려가면서도, 어떻게든 생기 있게 살기 위해 애썼다는 회고가 담겨있는 듯하다. 프리다는 이 그림의 제목을 '인생이여, 만세'(Viva la Vida)로 지었다.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그녀의 마지막 글이었다.
〈후암동 미술관 이론 편 읽는 순서〉
1)천사가 이렇게까지 운다고? 무섭게 왜 그래[후암동 미술관-조토 편] - 르네상스 선구자(2022. 7. 2.)
2)뻥 아냐, 600년전인데 이 정도 ‘입체 그림’ 있었다[후암동 미술관-마사초 편] - 원근법 선구자(2022. 8. 27.)
3)세계서 가장 유명한 이 ‘레이저 눈빛’, 그것은 사랑?[후암동 미술관-얀 반 에이크 편] - 유화 선구자 (2022.5.21.)
4)‘레드벨벳’도 춤추게 한 이 화가의 정체…"악마의 아들? 나 원 참" [후암동 미술관-보스 편] - 초현실주의 선구자 (2022.5.28.)
5)아리따운 금발 여인, 외간남자 목을 베고 있는거야?[후암동 미술관-카라바조 편] - 바로크 선구자 (2022.6.11.)
6)아름다운 여인, 끌어안고 난리난 옆 커플이 부러워[후암동 미술관-와토 편] - 로코코 선구자(2022.10.8.)
7)맨몸 여인들, 전쟁 뛰어들어 “그만!” 사자후…싸움 막았다[후암동 미술관-다비드 편] - 신고전주의 선구자 (2022.10.15.)
8)표류 D+13, 왜 몰랐지? 뗏목 위 널린 게 먹을건데[후암동 미술관-테오도르 제리코 편] - 낭만주의 선구자 (2022.5.14.)
9)“천사요? 데려오면 그려드리죠” 이놈의 똥고집[후암동 미술관-귀스타브 쿠르베 편] - 사실주의 선구자 (2022.5.7.)
10)“관상가 양반 아니었어?” 조선의 ‘얼굴’, 몰랐던 사실[후암동 미술관-윤두서 편] - 사실주의 특별 편 (2022. 11. 19.)
11)벌거벗은 이 여자, 뭐 때문에 빤히 쳐다보나[후암동 미술관-에두아르 마네 편] - 인상주의 선구자(2022. 4. 23.)
12)“못 그렸는데 폼만 잡아” 욕먹던 이 그림, 3300억이요? [후암동 미술관-클로드 모네 편] - 인상주의 선구자⑵ (2022.4.30.)
13)‘점투성이’ 수상한 커플 정체는? [후암동 미술관-조르주 쇠라 편] - 신인상주의 선구자 (2022. 6. 25.)
14)반 고흐 최애작, 별밤·해바라기 아닌 ‘이 사람들’ [후암동 미술관-빈센트 반 고흐 편] - 표현주의 선구자 (2022.6.4.)
15)이 ‘사과’ 때문에 세상이 뒤집혔다, 도대체 왜?[후암동 미술관-폴 세잔 편] - 근대 회화 선구자(2022. 7.9.)
16)‘생각하는 사람’ 진짜 정체, 남모를 사정도 있었다[후암동 미술관-오귀스트 로댕 편] - 근대 조각 선구자 (2022. 10. 22.)
17)화끈한 키스, ‘이 여성’ 사르르 녹아내리다[후암동 미술관-구스타프 클림트 편] - 분리파 선구자 (2022. 8. 13.)
18)나체 여인, 어쩌다 사자 득실대는 정글 한복판에[후암동 미술관-앙리 루소 편] - 근대 초현실주의 선구자 (2022. 7. 30.)
19)헐크색 피부 갖게 된 ‘이 여성’…이 놈의 ‘남편’ 때문에[후암동 미술관-앙리 마티스 편] - 야수주의 선구자 (2022. 7. 16.)
20)잘생긴 법학 교수님, ‘이것’ 그렸더니 미술계 '발칵'[후암동 미술관-바실리 칸딘스키 편] - 추상회화 선구자 (2022.7. 23.)
21)“이건 나도 그리겠다!” 1순위 그림, 그 놀라운 비밀[후암동 미술관-몬드리안 편] - 추상회화 선구자⑵ (2022. 8. 6.)
22)스파게티 면발? 1315억에 팔린 그림, 충격적 이유[후암동 미술관-잭슨 폴록 편] - 액션페인팅 선구자 (2022. 10. 29.)
23)몸 좋은 보디빌더, 거대 막대사탕 들고 ‘의문의 포즈’[후암동 미술관-리처드 해밀턴 편] - 팝아트 선구자 (2022.11.12.)
24)“동양서 ‘테러리스트’가 왔다” 피아노 다 때려부쉈다[후암동 미술관-백남준 편] - 비디오 아트 선구자 (2022.11.26.)
〈후암동 미술관 인물 편 읽는 순서〉
1)"아내·자식·명예 다 잃었다"…그런데 왜 '빵' 터지셨어요[후암동 미술관-렘브란트 편] - 빛의 마술사 (2023. 1. 7.)
2)미녀만 보면 그리려고 안달났다, 왜 그랬나 보니[후암동 미술관-오귀스트 르누아르 편] - 행복을 그린 화가 (2022. 12. 24.)
3)“고갱 그놈, 도대체 왜 그래?” 악마인지 ‘악마의 재능’인지[후암동 미술관-폴 고갱 편] - 고귀한 야만인 (2022. 12. 3.)
4)“백번은 넘게 봤겠다” 모두 아는 ‘이 절규’의 놀라운 비밀[후암동 미술관-에드바르 뭉크 편] - 노르웨이의 현자 (2022. 12. 31.)
5)“이놈의 짧은 다리 때문에” 카바레 스타의 영광과 몰락[후암동 미술관-툴루즈 로트레크 편] - 작은 거인 (2022. 12. 17.)
6)눈동자 없는 기괴한 여자 그림, 알고 보니[후암동 미술관-모딜리아니 편] - 파리의 귀공자 (2022. 12. 10.)
7)“로댕 아이를 뱄다” 폭탄선언 여성, 30년 수용소에 갇혔다[후암동 미술관-카미유 클로델 편] - 천재와 맞선 천재 (2022. 11. 5.)
8)당신은 모르실거야, 키스하는 두 사람 왜 이 꼴인지[후암동 미술관-르네 마그리트 편] - ‘진짜’ 괴짜 (2022. 9. 3.)
9)피카소도 ‘이 그림’에 “대박!” 감탄, 각성했다는데[후암동 미술관-피카소·마티스 편] - 영원한 라이벌 (2022. 9. 10.)
10)3번 유산·35번 수술의 악몽…그럼에도, 인생이여 만세[후암동 미술관-프리다 칼로 편] - 고통의 여왕
11)권총도 채찍도 버텼는데, ‘이 남자’ 행동에 무너졌다[후암동 미술관-마리나 아브라모비치 편] - 우아한 전사 (2022. 8. 20.)
〈후암동 미술관 현장 편 읽는 순서〉
1)이건희 컬렉션, 이 ‘다섯 작품’ 놓치지 마시라[후암동 미술관-‘어느 수집가의 초대’ 출장 편] - 전시 특집 (2022. 6. 18.)
2)알코올 중독 ‘이 남자’, ‘파리’에 미치자 놀라운 일 터졌다[후암동 미술관-몽마르트 언덕 편] - 동행자 : 모리스 위트릴로 (2022. 9. 17.)
3)고흐 “슬픔은 왜 나한테만” 펑펑 울었다, 고작 2평 다락방에서[후암동 미술관-오베르 편] - 동행자 : 빈센트 반 고흐 (2022 9. 24.)
4)모네 “앞이 안 보여도 상관없어”…백내장도 못 막은 그의 ‘최후작’[후암동 미술관-지베르니 편] - 동행자 : 클로드 모네 (2022. 10.1.)
yu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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