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는 돈 아닌 마음 문제, 일본 무한 책임 의지 보여야”

정진우 2023. 1. 14. 05: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가 12일 서울 중구 조선호텔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일본 정부가 ‘무한 책임’, 즉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점을 명시하고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해야 합니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는 지난 12일 위안부·강제징용 등 한·일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이날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과거사 피해자를 포함해) 한국 국민이 분노하는 부분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통해 해결된 문제를 더는 반복해서 제기하지 말라는 일본의 고압적 태도 때문”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인터뷰가 진행된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선 외교부가 주최한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 토론회’가 열렸다. 정부는 이에 앞서 민관협의회를 네 차례 열고 피해자 측과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에도 두 차례 한·일 정상회담을 개최했고 차관·국장 등 각급에서 실무 협의를 지속했다. 이날 토론회엔 강제징용 피해자 지원단 등 시민단체가 불참하며 ‘반쪽 토론회’가 됐다. 토론회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피해자 측의 거센 항의와 고성이 오가며 향후 강제징용 해법 마련을 둘러싼 진통을 예고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한국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 (정치적) 리스크를 감수하며 노력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경우 현재 지지율이 많이 떨어진 상황에서 기존의 입장을 바꾸기 어려운 정치적 환경이지만 그럼에도 윤 대통령과 함께 리스크를 감수하고 타협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지난 11일 우당이회영선생교육문화재단(이사장 이종찬)이 수여하는 우당특별상을 수상했다. 신흥무관학교 설립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우당 이회영 선생의 독립운동 정신과 평화 사상을 기리는 재단이 일본의 정치인에게 특별상을 수여한 건 매우 이례적이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시상식에서 “한·일 양국에 가로 놓인 엄연한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 이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마음을 잊지 않으면서 동시에 미래 지향적인 관점에서 양국의 우호 발전과 동아시아 평화 구축에 미력하나마 힘써 나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Q : 강제징용 해법 마련을 위해 일본 측이 할 수 있는 ‘성의 있는 호응 조치’는 뭔가.
A : “개인적으로는 한·일 청구권 협정을 통해 과거사 문제가 해결됐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 간에 아무리 다양한 협정을 체결했다 해도 개인의 청구권은 유효하다는 게 국제적인 상식이 됐다고 확신한다. 일본에는 ‘잘못을 고칠 땐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미 (잘못을 고칠 수 있는) 시기가 많이 늦은 만큼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Q : 일본 정부의 입장이 바뀔 수 있다고 보나.
A : “일본 측이 우리는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다는 강경한 태도를 고수한다면 강제징용 문제는 해법을 마련하기 어렵다. 전쟁으로 상처를 입은 분들께서 더는 사죄하지 않아도 된다고 할 때까지 (일본 정부가) 사죄하는 마음을 갖는 게 중요하다. 과거사 문제의 해법은 금전적인 문제가 아닌 마음, 심리적인 문제다.”
일본은 한·일 협의를 거쳐 마련될 강제징용 문제의 해법이 ‘최종적 해법’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무력화하면서 일본은 이미 한국의 정권 교체에 따라 국가 간 합의가 효력을 잃는 과정을 경험했다. 이 같은 일본의 우려에 대해 하토야마 전 총리는 한참을 고민하다 “매우 어려운 문제”라며 운을 뗐다.

Q : 이번에 도출될 강제징용 해법의 최종성과 신뢰성을 높일 방법이 있나.
A : “정권이 교체되면 정권마다 생각과 방향성이 달라진다. 다만 2015년 위안부 합의의 경우 일본 측에서 ‘이 합의로 모든 게 끝났고 해결됐다’ ‘우리는 사죄할 필요가 없다’는 태도를 보인 걸 위안부 피해자들이 납득하지 못한 거라고 생각한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돈을 달라는 게 아니라 명예와 존엄, 인권을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합의의 토대 위에서 양국 정부가 약속을 이행하고 협력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을 지향해야 한다.”

Q : 한·일 관계 개선은 윤석열 정부의 핵심 외교 과제다. 양국 관계 개선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다고 보나.
A : “비단 한·미·일 3국이 공조해서 중국에 대립각을 세우기 위한 목적으로만 한·일 관계가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미·중 대립이 격화되는 가운데 한·일 양국이 어느 한 편에 서서 적대적 행동에 나서는 건 상호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일 두 나라는 미·중 대립을 어떻게 완화할 수 있을지를 놓고 공조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이 단독으로 하면 효과가 부족하겠지만 함께 힘을 합쳐 미·중 대립을 제어한다면 한·일뿐 아니라 미·중에게도 큰 이익이 될 것이다.”

Q : 북한이 미사일 도발을 재개하며 북핵 문제가 한·일 양국의 핵심 현안으로 부상했다.
A : “북한의 핵 문제는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가 가장 바람직한 해법이지만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CVID라는 높은 수준의 목표를 강조하는 동안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온 게 현실이다. CVID는 결코 포기해선 안 되지만 목표를 한 단계 낮춰서 대응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우선 북한의 핵 개발 동결을 목표로 내걸고 달성될 경우 대북 제재를 일부 해제해 주는 대응 전략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 한·일 공조를 통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북한 문제에도 조금 더 시선을 돌릴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를 통해 북핵 문제와 관련해 해결 가능한 조건을 제시하고 북·미 관계가 개선될 수 있도록 한·일 양국이 공조해야 한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