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기한' 명칭만 바뀌고 기간은 그대로…눈치 보는 식품업계
"제품 수천 개 테스트…시간·비용 부담"
식약처 "소비 기한 참고값 실험 속도"
'프레스코 스파게티 소스' 12개월, '3분 쇠고기 짜장' 24개월, '양송이 컵스프' 12개월….
지난해 11, 12월 오뚜기가 선제적으로 소비 기한을 적용한 제품들이다. 제품 포장재에 소비 기한이 적혀 있지만, 실제 적용된 기간은 이전 유통 기한 그대로다. 대상의 종가 '맛김치'도 유통 기한에서 소비 기한으로 이름만 바뀌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발표한 소비 기한 참고값에 따르면 김치는 30일에서 35일로 섭취 가능 기간이 늘었지만 온전히 반영되지는 않은 셈이다.
올해부터 소비 기한 표시제가 도입됐지만, 한동안 소비자 혼란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가 유통 기한과 같은 기간으로 소비 기한을 적용해 실질적으로 식품을 먹을 수 있는 기간이 늘어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전망이다. 준비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식품 안전성을 실험할 시간이 부족하고 재정적 부담도 크다는 게 식품업계의 입장이다.
식품업계, 소비 기한 적용 소극적인 이유
①유통 기한은 식품 품질 변화가 일어나는 시점인 품질안전한계기간의 60~70%로 설정하는데, ②소비 기한은 80~90%로 한다. 업계는 계도기간 1년 동안 유통 기한을 적용해 생산한 상품과 포장재 재고량을 소진한 후 점진적으로 소비 기한 적용 대상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CJ제일제당 등 일부 업체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새 제품 위주로 소비 기한 표기를 먼저 적용했다. 오뚜기는 업소용 제품 위주로 전체 제품 중 약 10%는 소비 기한을 적었다. 라면 등 유통 기한이 긴 가공 식품을 만드는 식품업체는 최대 6개월 동안 안전성 테스트를 거친 뒤 소비 기한을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반영한 사례가 적을뿐더러 먼저 적용한 제품마저 기간은 유통 기한 그대로다.
각 업체는 식약처의 소비 기한 참고값과 별개로 안전성 테스트를 진행해 자율적으로 소비 기한을 정한다. 계도 기간이 끝난 뒤에도 실질적 적용 기간은 유통 기한 그대로 유지할 수 있어 실효성 문제로 번질 가능성도 나온다.
그러나 "소비자 분쟁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먼저 총대를 멜 필요는 없지 않냐"는 게 업계의 속사정이다. 특히 신선식품은 소비자의 보관 상태에 따라 품질 유지 기간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데 안내와 홍보가 아직은 부족하다는 판단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소비 기한이 지나면 버려야 하는데 유통 기한에 익숙한 일부 소비자들은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섭취했다가 탈이 날 수도 있는 노릇"이라며 "소비자가 바뀐 정책에 적응하면 실제 적용 기간도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포장재 글자를 바꾸는 것도 간단치 않다는 주장이다. 또 다른 식품업계 관계자는 "포장재에 소비 기한을 표시하려면 인쇄 동판부터 바꿔야 한다"며 "식품 포장재는 한 번 바꾸면 오래 쓰기 때문에 비용부터 디자인 등 검토해야 할 세부 사항이 많다"고 말했다.
실효성 있을까…"결국엔 기간 늘릴 것"
무엇보다 업계는 계도기간 안에 모든 제품에 소비 기한을 적용하기에 시간이 부족하다고 토로한다. 대기업의 경우 한 곳당 식품이 수천 개에 달하고, 중소기업은 비용 부담이 커 업체마다 실험을 하는데도 시간이 꽤 걸릴 것이라는 설명이다.
식약처는 2025년까지 2,000여 개 품목에 대한 소비 기한 참고값을 설정할 예정인데 업체의 분석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도록 실험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같은 품목이라도 각 업체별 제조 공정, 포장재, 보존 방식 등 여러 조건에 따라 결과가 달라져 이를 모두 반영하는 참고값을 제시하려면 시간이 걸린다"며 "유통 기한이 짧은 식품부터 신뢰할 수 있는 지표를 빠르게 제시해 업계 부담을 덜 계획"이라고 말했다.
제도 안착까지 갈 길이 멀어 보이지만 식약처는 식품업체들도 동참할 것이라 판단하고 있다. 두부, 콩나물 등 유통 기한이 짧은 신선식품의 경우 소비 기한 적용으로 업체가 누릴 수 있는 경제적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식품안전정보원에 따르면 폐기율 감소로 업체가 누릴 수 있는 편익은 연간 약 26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판매 기한이 연장되면 유통·재고 관리가 쉬워지고 폐기로 인한 손실을 줄일 수 있다"며 "취지 자체에 대해서는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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