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배와 기자들 거액 거래에... 언론계 "이해충돌 지적 기사 쓸 자격 있나"
'대장동 논란' 취재·편집 관여 권한 "이해충돌 소지"
"대가성 없다" 불구, 호의로 수억 빌리기 쉽지 않아
"추상적 윤리 가이드라인 구체화… 지속 점검 필요"
권력을 감시하고 기록해야 할 기자들이 돈 문제와 관련된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돼 도마 위에 올랐다. 대장동 개발사업 비리 의혹 사건 핵심 인물인 김만배씨와 거액의 금전 거래를 한 본보와 한겨레신문 간부는 해고됐고, 중앙일보 간부는 회사에 제출한 사표가 수리됐다. 남욱 변호사는 검찰 조사에서 “김만배씨가 골프를 치면서 기자들에게 100만 원씩 건넸다”고 진술해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전국언론노조의 ‘언론인 윤리 확립을 위한 실천요강’ 청렴 항목에는 취재원으로부터 받아선 안 되는 12가지 형태의 직·간접적 이익이 적혀 있다. 각 언론사에는 이에 더해 한국기자협회의 언론윤리헌장을 토대로 만든 자체 윤리규정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 불거진 언론인들의 행태를 뜯어보면 언론 윤리를 위반한 것이 명백하다.
한국일보는 본보 간부가 연루된 이번 사건을 깊이 반성하고, 언론 윤리를 되짚어보기 위해 언론학자 5명에게 쓴소리를 구했다.
"본인들 이해충돌 문제라 이렇게 무딘 것인가"
언론학자들은 언론인들이 이해충돌 문제에 무감각하다는 점을 문제의 본질로 꼽았다. 사건에 연루된 언론인들은 대장동 의혹을 다루는 주요 부서 데스크이거나 간부급 기자로, 취재와 편집에 관여할 권한이 있었다. 서울 소재 사립대에서 미디어 분야를 연구하는 A교수는 “기자들이 법관과 대학교수들의 ‘기피 신청’ 문제를 지적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독자들이 해당 언론사의 대장동 의혹 보도가 공정하고 투명할 것으로 믿고 볼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대장동 비리 의혹의 핵심 인물인 김만배씨와 돈거래한 언론인들은 “친분 관계를 토대로 한 금전 거래였으며 보도와는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해충돌 예방 원칙은 편파적으로 보일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실제로 국내 언론이 본보기로 삼는 뉴욕타임스의 윤리 가이드라인에는 ‘~할 가능성이 있는’ ‘~로 비칠 수 있는’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이해충돌 방지 규정 적용 범위를 최대한 넓게 잡고 있는 것이다. ‘윤리적 저널리즘을 위한 뉴욕타임스 가이드라인’ 번역을 감수한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규정 대부분이 어떤 문제가 발생한 실제 상황은 물론이고 외견상 그렇게 비칠 수 있는 잠재적 상황에도 적용된다고 명시한 점이 눈에 띈다”고 적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이해충돌 가능성은 편집국 구성원들에게 사전에 공개돼야 하며, 특히 ‘개인적으로 가까운 사람에 대해 글을 작성하거나 자료를 정리하거나 보도 관련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고 규정돼 있다.
"호의로 수억 원을 쉽게 빌려줄 사람은 없다"
김만배씨와 돈거래한 기자들의 "대가성이 없었다”는 해명에 대해서도 쓴소리가 쏟아졌다. 언론학자들은 대가성은 미래의 가능성까지 포함해야 하며, 돈을 빌려준 사람과 빌린 사람의 서로 다른 입장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영학 회계사가 검찰에 제출한 녹취록에 따르면, 김만배씨는 “기자들 분양도 받아주고 돈도 주고” “회사에다 줄 필요 없어. 기자한테 주면 돼”라고 말했다. 김씨는 허언이라고 주장하지만, 맥락상 친분관계에 기반한 단순 금전 거래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수억 원을 담보 없이 낮은 이자율로 빌려주는 순간, 김씨는 친분관계를 토대로 보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을 수 있다.
국립대 언론정보학과 B교수는 “김만배씨와 친한 언론사 간부가 아니었다면 누구도 그렇게 돈을 빌릴 수 없었을 것”이라며 “대부분 부동산 때문에 큰돈을 빌린 셈인데, 고금리로 국민들이 신음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며 부끄럽지 않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폐쇄적 출입처 문화로 공고해진 네트워크
폐쇄적 출입처 문화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김만배씨는 20년 가까이 법조기자로 활동했고, 오랫동안 머니투데이 법조팀장과 법조기자단 간사를 지냈다. 본보와 한겨레, 중앙일보 간부들은 법조 출입을 하며 김씨와 인연을 맺었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부 교수는 “폐쇄적인 법조기자단에서 네트워크를 형성한 기자들이 일종의 '유착 문화'를 만든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김만배씨가 기자들을 ‘관리’했다고 하는데, 문제가 된 기자들은 ’보도하지 않을 권리’를 가진 '게이트 키퍼'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계, '윤리 아노미' 상태에서 벗어나야
누군가를 비판하고 감시해야 하는 언론인에게는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기에, 초심으로 돌아가 뼈를 깎는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윤리 아노미'를 문제 삼지 않는 침묵의 카르텔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선언적인 가이드라인 위주의 언론 윤리 규정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있었다. 예를 들면 코인 담당 기자의 코인 투자 여부처럼 일상 생활에서 겪을 가능성이 있는 여러 딜레마적 상황을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는 “윤리준칙이 장식으로 끝나선 안 되고, 언론사나 언론단체 차원에서 윤리적 고민을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적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언론인 스스로도 취재원, 동료 기자와의 관계를 ‘외부에 공개해도 떳떳한가’를 기준으로 스스로 묻고 또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소진 기자 sojin@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중국 '쇠사슬 학대 여성' 행방 묘연... '반성 없는' 중국의 인권 의식
- 이태원 참사 최종 수사 결과 발표… 희생자 1명당 '0.5톤' 압력 받아
- 김용림, 며느리 김지영 술버릇 폭로 "사람 깨물어" ('백반기행')
- 어머니 시신 방치 딸 "연금 안 나올까봐 사망신고 안 했다"
- 풍자, 60평대 집 최초 공개... 호텔급 욕실에 깜짝
- 77㎡ 신축 아파트 전세가 1억…입주물량 쏟아진 인천의 눈물
- 진에어 승무원이 목에 사탕 걸린 어린이 승객 살린 비결은
- ‘초대형 토목건축’으로 기후재앙과 싸우는 인류는 똑똑한가, 멍청한가?
- 제주서 숨진 '빌라왕' 배후 컨설팅업체 대표 등 전세사기 일당 78명 검거
- '더글로리' 잔혹 묘사에 현직 장학사 "실제는 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