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조폭도 기업화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해외 도피 8개월 만에 태국에서 체포돼 송환된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변호사비 대납, 대북 송금 등 온갖 비리 의혹의 중심 인물이다. 김성태와 ‘경제 공동체’로 알려진 배상윤 KH그룹 회장은 아직 해외 체류 중이다.
▶1997년 11월 18일 자 본지 사회면에 ‘채무의 30% 받고 납치 고문, 청부 폭력 조직 대거 적발’ 기사가 보도됐다. 유흥업소 돈벌이가 줄자 조폭들이 채무가 있는 중소기업인 등을 납치해 야구방망이로 폭행하고 물고문하면서 대신 돈을 받아내는 청부 폭력을 벌였다. 여섯 파 26명이 검찰에 검거됐다. ‘신영광파 부두목 배상윤’이 거기 있었다. ‘전주 나이트파’ 출신 김성태는 불법 도박장을 운영하고 불법 대부업을 하다 적발됐다.
▶김성태는 2010년 쌍방울을 인수하면서 ‘기업인’으로 변신했다. 그런데 출발부터 불법이었다. 김성태와 배상윤 둘 다 쌍방울 주가조작에 관여했다. 유죄였지만 집행유예로 감옥도 안 갔고 시세 차익도 추징당하지 않았다. 이 허술한 단죄가 날개를 달아줬다. 배상윤은 자본금 1억원짜리 회사를 세우고 몇 단계를 거쳐 무자본 M&A(기업 인수합병)로 코스닥 상장기업 필룩스를 인수했다. 필룩스는 엔지니어 창업자가 40년간 적자 한 번 안 내고 건실하게 일군 조명회사였다. 2세에 물려주지 않고 매물로 내놨는데 기업 사냥꾼에게 넘어간 뒤 전환사채(CB)를 대거 찍어내고 속 빈 강정이 됐다.
▶서울 남산의 하얏트호텔은 미국 대통령이 방한 때 묵던 명소다. 이 하얏트가 매물로 나왔고 국내 업체들이 관심을 보였지만 하얏트는 외국계에 매각하기를 원했다. 2019년 12월 하얏트가 홍콩계 사모펀드 PAG에 팔렸다는 발표가 났다. 그런데 이듬해 조폭 10여 명이 이 호텔 로비에 쳐들어가 “KH 회장은 60억원을 갚으라”고 난동을 부렸다. 최고급 호텔서 일어날 수 없는 변고였다. 알고 보니 하얏트의 실제 인수자가 KH 배상윤이 주도한 자금이었다. 쌍방울이 인수한 나노스(현 SBW생명과학)는 한때 코스닥 시가총액 2위에 올랐다. 나노스가 북한 광물 사업권을 약정받았다는 테마로 주가가 급등했다. 나노스의 CB 200억원을 인수한 쌍방울측은 1500억원 넘게 번 것으로 알려졌다.
▶머니게임엔 공식이 있다. 전주(錢主)가 누구인지 모르는 투자 조합이 여럿 등장한다. 기업을 공동 사냥한 뒤 이익을 나눠 갖는다. 김성태, 배상윤 외에 다른 전주들도 있다. 유상증자와 전환사채(CB) 발행으로 자금을 뽑아내 또 다른 기업 사냥에 나선다. 온갖 테마로 주가를 띄워 차익을 챙긴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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