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굽는 겨울 ‘제철 생선’… 손님들은 “붕세권 됐다” 환호했죠

구아모 기자 2023. 1. 14.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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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귀하신 몸 된 ‘붕어빵 노점’
해방촌에서 직접 구워보니
지난달 26일 서울 용산구 후암동 해방촌 '얼렁붕빵'에서 20대 사장 김나영씨와 본지 구아모 기자가 하루 붕어빵 장사를 함께 했다. 4분여간 구워낸 붕어빵을 매대로 옮기는 모습./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4일, 새벽 6시. 서울 신촌 연세대 삼거리에 붕어빵 노점상 김흥만(69)씨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나타났다. 평소 5시 30분에 출근한다는 그는 “6시에 딱 맞춰 오는 단골 아줌마 셋이 욕했겠네”라고 중얼거리며 장사 시작할 채비를 했다. 어젯밤 미리 숙성시킨 반죽과 팥을 주섬주섬 꺼내 붕어 무늬가 새겨진 철판에 능숙하게 불을 붙였다.

김씨의 단골손님은 “야간 근무를 마치고 가는 사람들, 새벽 출근하는 사람들”이다. 구운 붕어빵이 스무 마리쯤 쌓였을 때 첫 손님이 나타났다. 아는 사이인 듯 김씨는, “오늘은 몇 마리야?” 하고 물었다. “저는 4마리, 친구는 2마리요.” 단골인 조아현(25)씨는 간호사. 전날 밤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야간 근무를 마치고 들른 길이다. 조씨는 “이 따끈따끈하고 고소한 붕어빵 먹을 생각으로 야간 근무를 버틴다”며 “야식 겸 아침,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귀한 간식”이라며 웃었다. 뒤이어 들어온 한 남성은 출근길 손님. 1만원어치를 주문하며 “사장님, 여름에도 먹고 싶은데 아이스크림 붕어빵도 팔아주면 안 돼요?” 하더니 종이 봉투에 붕어빵을 받아 안고 서둘러 횡단보도를 건너갔다.

연세대 삼거리에서 새벽 6시부터 붕어빵을 파는 김흥만씨의 노점. /김용재 영상미디어 인턴기자

김씨는 한때 중소기업을 일궈 제법 큰돈을 만지던 사장님이었지만 IMF 외환 위기 때 부도가 나면서 거리로 나왔다. 처음엔 토스트를 팔다가 사람들이 많이 찾는 붕어빵으로 업종을 바꿨다. 새벽부터 밤 9시까지 주 5일 노점을 운영한다. 단골은 연세대 학생들과 세브란스 직원들이다. 김씨는 “내가 구운 붕어빵 먹고 졸업한 학생들이 고시에 합격했다, 취업했다고 인사올 때 기특하다”며 웃었다. 친구들은 억 단위로 돈을 굴리던 사장이 노점에서 1000원 단위로 받는 돈이 코 묻은 돈처럼 느껴지지 않느냐고 묻지만 천만에다. “1000원짜리 붕어빵으로 사람들이 허기를 달래고, 저 또한 하루 10만원 정도 벌면서 생계를 이어왔으니 1000원 한 장이 얼마나 귀한지 절감하죠.”

실제로 1000원짜리 붕어빵은 요즘 아주 귀하신 몸이 됐다. 겨울이면 전국 모든 동네 골목길에 하나둘 나타나던 붕어빵 노점이 약속이나 한 듯 사라진 탓이다. 구청 단속도 있지만 코로나 팬데믹 영향이 결정타였다. 그러자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가슴속 3천원’처럼 서울 지역 붕어빵 노점의 위치를 찾아주는 모바일 앱들이 등장해 인기를 끌고 있다. ‘붕세권(붕어빵+역세권)’이란 신조어도 생겼다. 붕어빵 노점이 있는 동네에 사는 게 자랑이 됐다는 뜻이다. 아예 부업으로 붕어빵 노점에 도전한 20·30 청년들도 있다. <아무튼, 주말>이 붕어빵 굽는 냄새 진동하는 현장을 구석구석 다녀왔다.

팥소를 반죽 안에 넣는 모습./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붕어빵에도 족보가 있다?

붕어빵은 1930년대 한국 거리에 최초로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에서 유행하던 ‘도미빵’과 ‘국화빵’ 만드는 틀을 들여와 밀가루를 반죽해서 구웠던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1950~1960년대 미국의 곡물 원조로 국내에 밀가루가 대량으로 들어오면서 붕어빵도 널리 퍼졌다고 한다. 음식평론가 윤덕노는 <붕어빵에도 족보가 있다>는 책에서 “붕어빵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형제가 겪어야 했던 수난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1960~1970년대 산업개발 시대에 공돌이 공순이로 불리던 우리 부모형제들이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밥 대신 끼니를 때웠던 것이 붕어빵”이라고 했다.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노점은 언제나 단속의 대상이었지만, IMF 외환 위기 직후 일자리를 잃은 이들이 대거 붕어빵 장사에 뛰어들면서 ‘전성기’를 맞이한다. 붕어빵 노점의 개수 증감에 따라 ‘경기 불황’ 추이를 가늠해볼 정도였다. 실직자가 많을수록 노점상 개수가 증가했다.

시대에 따라 붕어빵 맛도 진화했다. 팥이 기본이지만, 고구마 앙금을 비롯해 바닐라, 초콜릿 크림이 들어간 붕어빵이 나오더니 피자맛, 치즈맛, 불닭소스맛까지 등장했다. 이른바 ‘프리미엄’ 붕어빵을 내세워 대형 쇼핑몰과 백화점에 개당 3000원 받는 고급 붕어빵도 출연했다.

그러나 길거리 붕어빵은 급격히 자취를 감추고 있다. 코로나 시국의 노점 단속 때문만이 아니다. 원가 상승으로 인한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서다. 서울시에 따르면 풀빵·붕어빵 등 거리음식을 판매하는 거리가게(노점) 수는 2018년 6669개에서 2022년 상반기 5684개로 4년 동안 1000여 개가 사라졌다.

붕어빵 굽는 냄새가 퍼지자 행인들이 노점으로 몰려왔다./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해방촌에서 붕어빵 구워보니

보물찾기 하듯 모바일 앱으로 붕어빵 노점을 찾아다니다 지친 청년들은 아예 붕어빵 장사로 나서기도 한다. 지난달 19일 서울 후암동 해방촌에 ‘얼렁붕빵’을 차린 20대 사장 김나영씨가 그런 경우다. 디자이너로 일하는 김씨는 “어릴 적 부모님이 사 온 붕어빵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어서 노점을 직접 차려보는 게 꿈이었다”며 “붕어빵을 찾는 사람은 많은데, 파는 곳은 없으니 부업 삼아 저녁에 장사해도 수요가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김씨는 식당 앞 사유지에 월세를 내 자리를 구했다. 포장마차, 빵틀, 재료 등 각종 물품을 구입하는 데 든 비용이 총 130만원. 지난달 26일엔 기자가 직접 오후 5시부터 밤 10시까지 붕어빵 장사에 도전해봤다.

‘얼렁붕빵’에선 팥 붕어빵 외에도 슈크림, 피자, 콘치즈, 불닭 맛이 나는 붕어빵을 판다. 팥과 슈는 개당 700원, 나머지는 개당 1500원이다. 팥과 반죽은 도매업체에서 받아오고, 나머지 맛은 대형 마트 등에서 토마토소스, 옥수수 콘, 모차렐라 치즈, 햄 같은 재료를 구입해서 직접 소를 만든다.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주전자에 담긴 반죽을 붕어 틀에 부은 뒤, 소를 넣고 철판 뚜껑을 닿는다. 붕어빵을 구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손목 스냅’과 굽는 시간. 손목 조절을 잘못하면 반죽이 틀 밖으로 흘러넘치고, 굽는 시간이 초과하면 타버린다. 반죽은 빵틀의 3분의 2가량만 부어야 깔끔하게 구워진다. 굽는 시간은 철판 뚜껑을 닫은 뒤 2분여간. 타이머를 맞춰놓지만, 최적 시간은 본능적으로 체감해야 한다.

총 4분가량 양면을 한번씩 뒤집은 뒤 뚜껑을 열자 갈색으로 구워진 붕어빵 다섯 마리가 태어났다. 틀 밖으로 흘러넘친 반죽 탓에 도무지 ‘헤어질 결심’을 하지 않는 붕어빵들은 나무꼬치로 조심스레 떼어냈다. 손님들은 대개 한꺼번에 몰리기 때문에 짬이 날 때 여러 마리 구워둬야 한다.

단골은 동네 주민들. 반려견과 함께 동네 산책을 나왔던 한 여성은 자기 동네가 ‘붕세권’이 된 것에 환호하며 몇시까지 하는지 영업시간을 거듭 확인했다. 해방촌 맛집들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돌아가던 이들도 빠지지 않고 들른다. 친구 두 명과 해방촌에 놀러온 대학생 조수민(22)씨는 “붕어빵은 겨울을 생각나게 하는 ‘제철생선’이라 그냥 지나칠 수 없다”며 눈을 반짝였다.

밤 10시. 마침내 붕어빵 138마리를 팔고 장사를 마쳤다. 5가지 맛 중 가장 많이 팔린 것은 팥 붕어빵(50개), 그 다음이 피자맛(34개), 슈크림(31) 순이었다. 이날 매출은 15만원으로 재료 값 7만원을 빼니 순수익은 8만원. 김씨는 “재료 값이 많이 올라 순수익은 아직 기대만큼 나오지 않지만 우리 동네가 드디어 붕세권이 됐다며 반가워하는 손님들을 보면 뿌듯하다”고 했다. 5시간 내내 서서 일한 탓에 다리가 저렸다. 반죽이 담긴 주전자를 들어올려 철판에 붓고 뚜껑을 연신 뒤집느라 손목도 얼얼했다.

주전자에 담긴 반죽을 붓는 모습.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붕어빵’으로 닮은 아이 손 잡고 온다

붕어빵의 생명력은 강하다. 이용재 음식문화평론가는 “어릴 적 부모님이 퇴근길 종이 봉지에 싸안고 오신 붕어빵을 옹기종기 나눠 먹던 추억이 젊은 세대의 레트로 취향으로 이어진 것 같다”며 “붕어빵 어느 부위부터 먹는지를 가지고 그 사람의 성향을 가늠하는 ‘붕어빵 심리테스트’가 있을 정도로 한국인 삶에 친숙한 음식”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 한 중학교 앞에서 20년째 붕어빵 노점을 해온 강모(65)씨는 “학교만 파하면 쪼르르 달려오던 학생들이 어른이 돼 ‘붕어빵’으로 꼭 닮은 자기 아이 손을 잡고 찾아올 때 기쁘다”고 했다. 밤 9시까지 여는 강씨의 트럭엔 교복에 책가방을 멘 10대, 나이 지긋한 어르신, 중장년층까지 다양한 손님들이 찾았다. 6마리 이상씩 사가는 사람이 대부분. 문 닫았을까 싶어 헐레벌떡 달려온 조현(55)씨는 “대학교 1학년 딸이 하도 먹고 싶다고 해서 집에서 버스로 네 정거장이나 되는 이곳까지 일부러 찾아왔다”며 붕어빵 10마리를 품에 안고 총총 돌아갔다.

문득 정호승의 시 ‘붕어빵’이 떠올랐다. ‘눈이 내린다/ 배가 고프다/ 할머니 집은 아직 멀었다/동생한테 붕어빵 한 봉지를 사주었다/ 동생이 빵은 먹고/ 붕어는 어항에 키우자고 해서/그러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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