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시들지 않는 장미’로 세상의 밤을 수놓은 남자
‘빛의 장미정원’ 만든 김용배
영원히 지지 않는 장미 2023송이가 서울 한복판에 피어났다. 지난달 17일부터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어울림광장을 밝히고 있는 ‘라이트 로즈 가든’. LED로 제작해 희고도 투명한 빛을 뿜어내는 장미정원에 놀라 발길을 멈춘 행인들은 꽃들 사이로 들어가 연방 사진을 찍었다. “진짜 장미보다 더 아름답다”는 탄성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서울을 비롯해 영국, 홍콩, 중국에도 장미정원을 만들어 히트시킨 주인공은 ‘팬커뮤니케이션’ 김용배(51) 대표다. LED 장미를 디자인하고 개발한 것은 물론, 설치 공간의 경사 및 면적당 최적의 장미 수 등을 고려해 ‘라이트 로즈 가든’을 탄생시켰다. 최근 DDP에서 만난 김 대표는 마케팅 전문가이지만 예술가 못지않은 창의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무역학을 전공하고 29살에 마케팅회사를 창업했지만 원래 꿈은 연극연출가. 한때 대학로 극단에서 활동했다는 그는 “연극은 내 깜냥으론 안 되더라”며 “대신 기발하고 창의적인 기획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사업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당시 시복식 등의 굵직한 행사가 그의 손에서 태어났다.
LED 장미를 개발한 건 2014년 일이다. 스위스 시계 브랜드 오메가가 ‘드 빌 버터플라이(도시의 나비)’라는 신제품을 출시했을 때 홍보를 맡은 김 대표는 “‘나비’라는 주제에 맞는 콘텐츠를 고민하다, 어두운 밤에도 나비가 찾아 날아올 수 있는 특별한 꽃은 없을지 고민했다”고 했다. 그때 떠오른 아이디어가 영원히 시들지 않는 장미였다.
인공 꽃이지만 실제 꽃과 최대한 비슷하게 만드는 게 관건. 그래서 나일론 소재를 겹겹이 둘러 꽃잎을 만들고 그 안에 LED 전구를 넣었다. 문제는 줄기. “철사로 하자니 딱딱하고, 플라스틱으로 줄기를 만들자니 힘이 없었어요. 고민 끝에 택한 것이 피아노선(강선)이었죠. 덕분에 바람에 휘어지지만, 쓰러지지 않는 장미가 태어난 겁니다.”
그해 10월 DDP에 2만송이의 장미정원이 조성됐다. 오메가 신제품 홍보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한 달 만에 100만명, 이듬해 4월 초까지 600만명 이상이 다녀가는 명소가 됐다. 폭발적 인기에 에버랜드 장미농원, 인천송도불빛축제, 서울시청 광장, 명동성당에도 ‘라이트 로즈 가든’이 등장했다.
그런데 왜 흰 장미일까. “붉은색 장미, 푸른색 장미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는데 꽃이 너무 화려하면 사람들이 싫어하더라고요. 꽃과 함께 사진 찍을 때 자신이 돋보이지 않아서 그런 것도 같고요, 하하!”
LED 장미는 해외로도 수출됐다. 2016년 홍콩에서는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9일간 타마르 공원에 2만5000송이의 장미정원이 조성됐다. 같은 해 중국 쓰촨성 청두시 IFS몰에도 장미정원이 설치됐다. 김 대표는 2019년 영국 런던 그로스베너 광장에 설치된 ‘영원히 시들지 않는 정원(The Ever After Garden)’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영국 왕립 마르스덴 암 자선센터에서 암 환자들을 위한 기금을 모을 방법을 고민하다 저에게 연락해왔죠. 그래서 10파운드 이상 기부하면 LED 장미가 한송이씩 광장에 심어지는 방식의 모금법을 고안해냈습니다.” 이후 2022년까지 피어난 장미는 총 2만송이. 3년간 25만 파운드, 한화로 3억8000여 만원이 모금됐다.
김용배 대표는 “광고를 위한 일종의 ‘장비’로 만든 LED 장미가 이렇게까지 사랑받을 줄은 몰랐다”며 “이 아름다운 꽃이 누군가에겐 설레는 사랑으로, 누군가에겐 추모로, 누군가에겐 따뜻한 위로로 다가가길 바란다”며 웃었다. 서울 DDP에 설치된 장미정원은 이달 31일까지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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