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화성 창룡문서 가오리연 날려볼까, 광교박물관에서 박찬호 100승 사인볼 구경할까

수원/김성윤 기자 2023. 1. 14.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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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설 명절 앞두고 떠난
수원 화성&광교 여행
수원화성 동문인 창룡문 앞 잔디밭은 연날리기 명소다./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경기도 수원에는 신(新)도시가 2개 있다. 18세기 완성된 ‘수원화성’ 그리고 21세기 만든 ‘광교신도시’다. 수원화성과 광교신도시는 아버지와 아들 같다. 정조는 수원화성을 만들며 남녀노소 빈부귀천 모두가 행복의 길로 나아가는 도시를 꿈꿨고, 광교신도시는 정조의 꿈을 전승해 대한민국 신도시의 비전과 모델을 제시한다는 목표로 개발됐다. 계획도시답게 수원화성과 광교는 볼거리·즐길 거리·먹거리·편의 시설을 고루 갖춘 데다, 특히 서울에서는 지하철·버스로 어렵잖게 찾을 수 있어 다가오는 설, 가벼운 나들이에 맞춤하다.

◇”아름다움이 능히 적을 이긴다”

열 살 아들 손을 잡고 ‘화성행궁(華城行宮)’을 찾았다. 행궁은 임금이 나들이 때 머물던 별궁. 정조는 성곽 공사와 아버지 사도세자의 융릉 조성 점검 등 13번이나 화성을 찾았으니, 행궁이 필요했다. 왕이 머물지 않는 평상시에는 유수부(지금의 시청) 관청으로 활용했다.

행궁 앞 관광안내소 직원은 “아이와 걷기엔 평지 쪽 성곽이 편할 것”이라며 “성곽 동쪽 ‘창룡문(蒼龍門)’부터 남쪽 ‘팔달문(八達門)’까지 걸으면 괜찮을 것 같다”고 추천했다. 아들은 “화성의 정문인 ‘장안문(長安門)’부터 보고 성곽을 걷고 싶다”고 했다. 장안문이 정문인 건 어떻게 알았냐고 묻자, “정약용에 관한 그림책에서 읽었다”고 했다. 대개 성의 정문은 남쪽에 있지만, 장안문은 화성의 북문이다. 서울서 내려오는 임금을 맞기 위해서다.

수원화성 동북공심돈./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장안문은 행궁에서 약 900m로, 천천히 걸으니 15분쯤 걸렸다. 총 둘레 길이 5.7km로 서울성곽 4분의 1 규모인 수원화성은 동쪽 평지에 쌓은 평지성과 서쪽 팔달산에 걸쳐 쌓은 산성이 합쳐진 평산성(平山城)이다. 장안문에서 동쪽으로 걷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화홍문(華虹門)’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원천이 지나는 북수문(北水門)인 화홍문은 윗부분을 무지개 모양으로 만든 홍예문 일곱 칸 위로 돌다리를 놓고 누각을 세웠다. 아쉽게도 수문을 빠져 나온 물이 떨어지며 흐르는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아들은 “멋지다”며 감탄했다.

수원화성은 성곽 어디를 걸어도 아름답다. 정조의 남다른 미적 감각 덕분이다. ‘정조실록’을 보면 1793년 12월 8일(정조 17년), 화성 축성 공사를 앞두고 신하가 묻는다. “외적을 방어하기 위해 만드는 성을 굳이 아름답게 만들 필요가 있습니까?” 정조가 답한다. “아름다움이 능히 적을 이기느니라!” 정조는 “성을 웅장하고 아름답게 만들면, 적의 기를 꺾어 성을 지키는 데 도움 된다”고 부연했다.

◇연날리기 명소 창룡문 앞 잔디밭

화성의 동문인 창룡문 위로 가오리연·방패연 등 연 십여 개가 파란 하늘 높이 떠 있었다. 학 모양 연을 날리던 70대 남성은 “3년 전 수원으로 이주한 뒤로 연을 다시 날리고 있다”고 했다. “창룡문 여기가 연 날리기 그만이라. 넓게 탁 트이기도 했고, 바람도 좋고. 곧 설이니 더 많이 나오겠죠.” 정월 대보름에는 ‘액연(厄鳶)’이란 풍습이 있다. 액운을 연에 실어 날려 보낸다는 의미다.

아들이 “연을 날려보고 싶다”며 졸랐다. 창룡문 앞 ‘연무대(演武臺)’ 관광안내소 매점에서 연과 얼레를 합쳐 6000원에 팔았다. 아들이 아무리 애써도 연이 날지 않자 “아빠가 띄워달라”며 우는소리를 했다. 30여 년 만에 연을 날리려니 쉽지 않았지만, 간신히 성공해 체면을 세웠다.

창룡문 뒤에서 홀연 커다랗고 둥그런 물체가 두둥실 떠올랐다. 헬륨 기구 ‘플라잉수원’. 150m 상공에서 화성 전체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입장료는 1만4000원(미취학)에서 2만원(성인). 연중무휴로 운영되나 기상 조건에 따라 예고 없이 중지될 수 있다(031-247-1300). 연무대에는 ‘국궁 체험장’이 있다. 10발 2000원, 최소 인원 4명이라야 체험 가능하다. (031)228-2763

◇시립미술관서 만난 ‘에르빈 부름’

연을 날리다 보니 배가 고파졌다. 성곽 걷기는 창룡문에서 멈추고 ‘행리단길’로 향했다. 창룡대로를 따라 행궁까지 가는 길에 ‘수원화성박물관(031-228-4242)’이 있다. 정약용이 도르래 원리를 이용해 개발한 거중기 등 아이들 관심을 끌 만한 전시물이 많았다. 정조 탄생 270주년을 기념한 특별전 ‘독서대왕 정조의 글과 글씨’도 볼 수 있다. 책가도(冊架圖)를 조선 후기 유행시킨 주역도 정조임을 전시를 보고 알았다. 학문과 글을 사랑한 정조는 어좌 뒤에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 대신 책가도 병풍을 배치했다.

‘수원시립미술관’은 행리단길 초입에 있다. 행궁을 짓누르듯 보이지 않도록 아담한 규모지만 내용은 알차다. 특히 오는 3월 19일까지 열리는 기획전 ‘에르빈 부름’전이 볼 만하다. 오스트리아 조각가 겸 개념미술가로 2017년 베네치아비엔날레 대표 작가로도 선정된 에르빈 부름(68)의 국내 최대 개인전이다.

수원시립미술관 ‘에르빈 부름’ 기획전에 나온 작품 ‘사순절 천’. 높이 11m, 무게 610㎏짜리 초대형 스웨터다./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높이 11m, 무게 610kg짜리 거대한 스웨터가 벽 하나를 가득 채우며 걸려 있었다. “아이들이 뚱뚱해진다. 과거 조상은 왜소했지만 훗날 인류는 이 정도 크기의 옷을 입어야 할 것이다. 모든 게 커지고 있다. 경제, 산업, 문화…. 그러나 영원히 커질 수는 없다. 그건 암(癌)이다.” 부름은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사순절 천’ 제작 의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깊은 성찰과 날 선 비판을 담았지만 유쾌하고 유머러스하다. 그리고 ‘인스타그래머블’하다. 패션 브랜드 발렌시아가가 협업하자고 찾아올 정도로 대중적 인기가 높은 이유다.

아들은 2층 ‘1분 조각’을 가장 재밌어했다. 관람객이 1분 정도 몸을 움직여 조각이 되는 참여형 작품. 전시장에 놓인 의자, 세제통, 냉장고 등 사물마다 지시문이 딸려 있다. 지시를 이행하는 순간 조각이 완성된다. 작품 ‘아이스헤드’에 붙은 지시문을 읽은 아들이 냉장고에 뚫린 큰 구멍에 머리를 집어넣었다. “냉동 삼겹살은 이런 기분이겠구나”라며 깔깔 웃었다.

미술관 2층엔 ‘나혜석 기념관’도 있다. ‘한국 최초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1896~1948)은 수원의 이름난 가문에서 태어났다. 20여 점 남은 작품 중 5점을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한국은행 총재를 지낸 나혜석의 막내아들 김건이 기증했다. ‘자화상’ ‘김우영 초상’ 등 4점의 복제품이 전시되고 있다. 옥상 테라스는 화성행궁을 멋지게 조망할 수 있는 포인트다. 입장료는 1000원(미취학)~4000(성인). (031)228-3800

◇수원 하면 통닭? 행리단길 오세요

행리단길은 화성행궁 동쪽 오래된 주택가다. 몇 년 전부터 세련된 식당·카페·상점이 들어서며 ‘행리단길’이라 불린다. 수원 하면 통닭, 갈비만 떠오른다면 행리단길을 꼭 가봐야 한다.

이름난 카페들은 2층 건물인 경우가 많다. ‘행궁 뷰’를 즐기기 위해서다. ‘위해브투데이’가 대표적. 가로로 긴 창을 통해 보이는 행궁 기와 지붕이 작품 사진 같다. 대표 음료인 ‘위해브에이드’(6800원)는 리치를 넣어 달콤하고 상큼한 맛과 향이 훌륭했다. ‘올라메히꼬’는 문 열고 들어서면 멕시코에 입국한 듯 뜨겁고 활기차다. 음식도 현지 맛 제대로다. 대표 메뉴인 ‘타코’는 매콤하게 조리한 돼지고기인 초리소(8900원), 바삭하게 튀긴 새우(9000원) 등을 고수·다진 양파·매콤한 살사 등과 함께 옥수수 전병에 싸서 먹는다.

행리단길 카페 ‘위해브투데이’ 창문 너머로 화성행궁이 들여다보인다./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올라메히꼬 옆 ‘카자구루마’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 아버지의 김밥집으로 나왔지만, 실제로는 돈테키동(1만1000원)·치즈규동(9500원) 등을 파는 일본식 덮밥집이다. ‘로우파이브’는 오전 11시 30분 문 열기 전부터 줄 서는 브런치 카페. 옥수수피자(2만원)와 김치볶음밥(1만3000원)이 유명하다.

‘존앤진피자펍’은 피자 맛집이자 ‘성곽 뷰 맛집’이다. 클래식 치즈·하와이안·페퍼로니·존앤진 등 4가지 피자가 2조각씩 나오는 ‘스페셜 피자’(3만3000·4만5000원) 한 판이면 이 집 피자를 모두 맛볼 수 있다. ‘두유라이크쿠키’는 미국 소도시에 있을 법한 하얗고 예쁜 쿠키 가게다.

화교가 운영하는 오래된 중식당 ‘수원만두’(031-255-5526)는 오로지 이 집 만두만 먹으러 기꺼이 수원화성을 재방문하고 싶을 정도다. 만두소도 소지만 피가 훌륭하다. 밀가루 특유의 풋내가 없다. 부드러우면서도 탄력이 넘친다. 군만두·찐만두·고기만두·물만두(각 9000원) 두루 맛있지만, 만두피의 매력을 충분히 맛보려면 물만두를 권한다. 화교들이 집에서 먹는 물만두로, 피가 송편처럼 도톰하다. 군만두도 제대로다. 한쪽 면만 노릇노릇 구워서 바삭한 식감과 부드러운 식감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짜장과 짬뽕은 팔지 않는다.

◇광교 호수공원 산책하고, 왕갈비 뜯고

광교신도시는 녹지율이 41.7%로 국내 신도시 가운데 최고 수준, 인구 밀도는 68.9/ha로 최저 수준이다. 65만평 규모의 ‘광교호수공원’은 친환경 광교신도시의 랜드마크다. 겨울이라 을씨년스럽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얼어붙은 호수 위로 흰 눈이 쌓여 환하고 화창했다. 광활한 설원에 온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호수 주변 ‘어번레비(urban levee)’를 많은 시민이 걷거나 뛰거나 반려견과 산책하고 있었다.

광교의 랜드마크 광교호수공원. 언 호수에 눈이 쌓여 광활한 설원 같다./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어번레비는 ‘도시 제방’이란 뜻으로, 휴식과 모임의 장소인 저수지 제방에서 비롯된 공원 산책로다. 호수를 따라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가 마련돼 있다. 원천호수는 3km, 신대호수는 3.5km로 어디로 가든 원점으로 돌아오니 길 잃을 걱정 없다.

산책 후 식사하거나 음료를 마시며 쉬고 싶다면 공원과 맞붙은 ‘갤러리아백화점’이 편리하다. ‘정돈’(돈가스) ‘다운타우너’(햄버거) ‘노티드’(도넛) ‘미즈컨테이너’(양식) ‘카페꼼마’ ‘백미당’ 등 믿고 먹고 마실 수 있는 전국구 유명 맛집이 입점했다. 수원 명물 왕갈비를 맛봐도 좋겠다. ‘삼부자갈비’ ‘본수원갈비’ ‘본집갈비’ ‘신라갈비’ 등 수원 대표 갈비집들이 동수원에 포진해 있다.

◇현대사가 된 개인사 ‘민관식 컬렉션’

광교신도시를 조성하며 만든 ‘수원광교박물관’(031-228-4175)은 2014년 3월 개관했다. 신도시 개발 과정에서 출토한 유물과 함께 개인 수집품을 선보이는 기증 사료관이다. 소강(小崗) 민관식(1918~2006) 선생이 평생에 걸쳐 수집한 ‘민관식 컬렉션’이 핵심이다.

소강은 5선 국회의원, 문교부 장관 등을 지낸 우리 근대사의 주역. 1964~1971년 최장수 대한체육회장을 맡았고 태릉선수촌을 건립한 한국 체육 근대화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는 메모광이자 수집광이었다. 광교박물관이 기증받은 물품만 무려 2만9451점. 역대 대통령에게 받은 편지와 선물, 청와대 만찬 메뉴판과 좌석표 등 정·재계 활동을 하며 받은 물건들부터 사진, 만년필, 수험표, 노트, 졸업장, 국회의원 신분증, 여권 등 개인 자료까지 ‘어떻게 이런 것까지 보관했을까’ 경이롭기까지 하다.

민관식 컬렉션이 광교박물관에 오게 된 데에는 소강과 수원의 인연도 도움이 됐다. 개성 출신인 소강은 20대 초반 수원고등농림학교(서울대 농대 전신)를 다녔다. 1937년 수원 서호에서 친구와 함께 찍은 흑백사진이 ‘소강 민관식실’ 초입에 붙어있다.

수원광교박물관 ‘소강 민관식실’ 올림픽 기념품. 소강의 아내 김영호 여사가 만들어 자택에 전시했던 패널을 그대로 가져왔다./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소강 민관식실은 면적이 681㎡(약 206평)로 광교박물관 3개 전시실 중 가장 크다. 스포츠 관련 자료 87점이 핵심이다. 1964년 도쿄 올림픽부터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 올림픽까지 그가 수집한 역대 올림픽 기념품이 한쪽 벽면을 차지한다. 배지, 기념주화와 지폐, 출입 카드 등이 촘촘하게 붙어 있다. 개성 음식의 대가이자 민관식의 아내인 고(故) 김영호 여사가 만들어 자택에 전시했던 패널을 그대로 옮겼다.

선수들에게 기증받은 물품도 많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수의 복제 청동 투구, ‘아시아의 물개’ 수영 선수 조오련이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 딴 금메달, 박찬호 선수의 유니폼과 100승 기념 사인볼,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북 단일팀의 친필 사인이 담긴 라켓도 있다.

이승만부터 노무현까지 역대 대통령들의 선물과 친필 서한, 박정희 대통령의 지휘봉도 남아 있다. 박 대통령의 편지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소강이 대한체육회장으로 1970년 태릉선수촌에 이어 아이스링크와 수영장 공사를 할 당시 박 대통령이 육필로 쓴 “추진 중인 아이스링크와 수영장 공사 사정이 매우 딱한 줄 압니다만 많은 금액을 정부에서 염출하기 어려우니 명년도 예산에 반영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글과 함께 노고를 치하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광교박물관에는 ‘사운 이종학실’도 있다. 재야 사학자 사운(史芸) 이종학(李鍾學·1927~2002) 선생이 기증한 옛 서적·문서·지도를 전시한다. 특히 자료 수집과 연구에 주력했던 독도와 금강산 관련 자료, 수원 향토사 자료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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