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천 마리 종이학
작년 11월 26일 ‘3천 명의 고아를 돌본 여인’이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썼습니다. 그 후 칼럼에 인용한 분들과 연락이 되어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 혼자만 알고 넘기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소개하고자 합니다.
목포에서 3천 명의 고아를 돌보았던 윤학자(일본명, 다우치 지즈코) 여사의 장남으로 일본에서 재일동포 노인들을 위한 요양 시설인 ‘고향의 집’을 운영하고 있는 윤기 이사장이 제 칼럼을 읽고서 마침 한국을 방문할 기회에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목포공생원과 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 총리와의 인연을 들려주었습니다.
오부치 총리는 1998년 10월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21세기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발표하며, 일본이 과거 식민지 지배로 한국 국민에게 커다란 피해와 고통을 안겨준 역사적 사실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함께 진솔한 사죄를 한 분입니다. 오부치 총리는 윤 여사에서 장남 윤기, 손녀 윤록으로 이어지며 운영되는 공생원의 사연이 일본 NHK TV에 다큐멘터리로 소개된 것을 보고 감동하여 윤록 공생원 원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꼭 한번 목포를 찾아 가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김종필 총리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환영 만찬에 윤록 원장을 초대하기도 하였습니다. 윤학자 여사가 작고하기 전 병상에서 우메보시(매실장아찌)를 먹고 싶다고 했다는 말을 듣고서 매화나무로 유명한 자신의 고향 군마현의 매화나무 묘목 20주를 목포공생원으로 보냈고, 공생원은 이를 윤학자 여사 기념비 곁에 심었습니다. 오부치 총리가 2000년 뇌경색으로 쓰러지자 공생원 아이들은 오부치 총리의 쾌유를 비는 마음으로 천 마리의 종이학을 접어 병상으로 보냈습니다. 오부치 총리의 부인인 오부치 지즈코 여사는 종이학을 병실 링거 거치대에 걸어 총리가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도록 해놓았습니다.
그러나 총리가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돌아가시자 오부치 여사는 천 마리 종이학을 관(棺)에 함께 넣었습니다. 여사는 공생원 아이들에게 “여러분이 보내주신 종이학은 남편을 천국으로 인도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언젠가 남편을 대신하여 여러분의 건강한 모습을 뵈러 가겠습니다”라고 편지를 썼습니다. 그후 오부치 여사는 2008년 목포공생원을 찾았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윤학자 여사의 원래 한자 이름은 학자(鶴子)가 아니라 천학자(千鶴子)이고, 오부치 여사의 이름도 천학자(千鶴子)입니다. 그리고 목포공생원 아이들이 접어 보낸 것도 천 마리의 종이학, 이래저래 신기하고 아름다운 인연입니다.
다음은 역시 칼럼에 소개했던 니시모리 시오초(西森潮三) 전 고치현 의회 의장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니시모리 의장은 윤학자 여사의 고향인 고치현에 윤학자 여사 기념비를 세우고, 고치현에 있는 안중근 의사 유묵이 한국에 반환되도록 노력하면서 한일우호협력을 위해 노력하는 분입니다. 그런데 칼럼을 쓴 며칠 후 자기가 대통령으로부터 표창장을 받게 되었다며 어찌 된 일인지 경위를 물어왔습니다. 알아보니 안중근 의사 유묵 한국 반환에 노력한 공적으로 히로시마 총영사관의 추천에 따라 주어지는 표창장이었습니다. 그분도 한국을 방문하여 표창장을 들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분은 제가 전에 부탁한 일, 고치현에 윤학자 여사 기념비에 이어 고치현과 인연이 있는 안중근 의사의 기념비를 세워달라는 부탁을 이행하는 것을 당신 여생의 마지막 과업으로 삼겠다고, 사뭇 비장하게 다짐하였습니다. 그래서 100세까지 사시면서 몇 가지 일을 더 해달라고 웃으며 부탁하였습니다.
마지막은 김영록 전라남도 지사께서 전화로 연락해오신 일입니다. 니시모리 의장에게 안중근 의사 기념비를 고치현에 세워달라는 부탁을 하였다는 내용을 읽고, 고치현과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전라남도로서도 돕고 싶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민간 차원에서 우선 추진해보고 혹시 전라남도의 역할이 필요한 경우 상의드리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관심이 고마웠습니다.
칼럼 한 편 덕분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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